면접을 봤다.
분위기는 좋았지만 합격 시그널은 없었다. 몇 번 보면 느낌이라는 게 생기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그나마 상냥함에 안심했다. 외모 지적과 압박 면접은 상처를 남기니까. 면접관이 작가고 사인본 책도 받았으니 한 시간 반을 투자해서 간 보람이 있는 걸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며,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백 번의 서류를 넣고 몇십 번의 면접을 보다 보면 떨어져도 타격감이 적단다. 아직도 난 한 번, 한 번이 기억에 남고 공포스러운데. 뭘 잘못했는지도 어떻게 해야 됐는지도 모르겠는데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넌 붕 떠 있는 것 같아.라는 말을 들었다. 오랫동안 나만의 세계, 이상 안에서 살았다. 사람들은 말했다. 넌 생각이 없구나. 머릿속이 하얗구나. 곰곰이 생각해본다. 내 머릿속은 복잡한 일들로 가득하다. 텅 비워놓고 산 적이 없었다. 난 특권자였던 걸까? 그래서 현실적이지 못하고 유유자적 살 수 있었던 걸까. 남들이 보기엔 철없는 아이 같았을지 모른다. 객관적으로 자기 인생을 정확히 볼 수 있다면 그건 저주나 마찬가지겠지. 고등학생 때 미술 입시를 하면서 학원 선생님에게 ‘어떻게든 되겠죠’라고 말하며 배시시 웃던 나였다. 너 그렇게 될 대로 되겠지 하는 마인드로 살다 간 큰일 나. 선생님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말은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현실의 나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까 견딜 수가 없었다. 선생님의 말은 여전히 귓가를 맴돈다. 너 그렇게 살다 간 큰일 나. 큰일 나.. 큰일 나...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사회에 적응하고 사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들은 나완 다른 생명체다. 한국에 태어나면 안 되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 한탄하다가 깨달은 건 이래 봤자 바뀌는 건 없고 나는 당장 내일 쓸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 이런 당연한 사실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니?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하며 나를 쪼아대는 건 다름 아닌 나다. 넌 하고 싶은 미술도 했고 선교까지 다녀오고 누릴 만큼 누렸으면서 또 바라는 거야? 편집자를 하겠다는 결심이 두렵다. 실패가 되고 흔적이 남는 상처가 될까 봐. 아직 젊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좋은 거니까 도전해보라고, 어깨를 두드리는 사람에겐 티 낼 수 없는 초조함이 있다. 난 원한다. 이도 저도 아닌 인간이 되지 않기를. 원하는 모습이 그려진 결과를. 그런데 원하는 걸 이루기엔 아침에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벅차다. 영원히 따라갈 수 없는 간격을 줄이고 싶지만 이미 마음속으론 포기해버린다. 손 내밀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을 땐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어 빌빌댔고 성숙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을 땐 자기 연민에 빠져 헤엄쳤다. 꿈을 꾸면 다른 내가 되어 있다. 어느 날은 괴롭힌 사람을 흠씬 패기도 하고 사랑을 너무 받아 어지럽기도 하다. 깨고 싶지 않은 날은 비몽사몽 한 상태로 다시 꿈에 파고든다. 어느 쪽이 현실인지 모르겠어 혼란스럽다. 다시 아침이 밝거나 더는 피할 수 없는 빛을 마주하면 눈을 슬며시 뜨고 만다. 네가 되고 싶어. 나는 네가 되고 싶어. 이루어질 수 없는 말만을 되뇌며 환상을 쫓는다.
반년 전 쓴 글 아까워서 차근차근 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