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샨 Jun 17. 2021

그 돈으로 옷을 사


쌍꺼풀 있는 눈, 동그란 얼굴. 빼놓고 보면 하나도 닮은 데가 없지만 그녀와 내가 함께 걸어갈 때면 누구도 자매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엄마, 아빠의 순해 보이나 묘하게 어두운 분위기를 빼다 박았다. 언니는 내가 만난 사람 중 특이한 사람 탑 10안에 든다.  


초등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언니는 학교를 싫어하는 어린이였다. 교문 앞에서 엄마를 붙들고 엉엉 울던 모습을 기억한다. 부모님은 그런 언니를 매사 걱정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릴지, 사회생활은 잘할지. 고등학생 때는 야간 자율학습을 견딜 수 없어 뛰쳐나왔고 음악을 배우겠다며 학교를 멀리했다. 어찌어찌 들어간 대학에선 적응하지 못하고 한 학기만에 휴학했다. 내내 잠을 자느라 온 과목을 낙제했다. 덕분에 스무 살 무렵 언니의 존재는 마음의 짐이었다. 4년 동안 다니던 미술학원을 한 번도 빼먹은 적이 없는 나는 저렇게는 안 될 것이리라, 나라도 잘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예상과 다르게 언니는 2년간의 휴학 후에 디자인과로 전향했고 장학금을 받으며 졸업했다. 엄마는 어렸을 적부터 언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했다. 그 예언이 실현된 격이다. 한 가지도 겨우 해내는 나는 언니의 재능이 항상 부러웠다. 혼자만의 세계에 있다가도 무엇이든 뚝딱 해내는 그녀의 손이. 우려한 대로 친구가 없지도 않고 사회생활을 못하지도 않았다. 우리가 보지 못한 시간 동안 언니 나름대로 사회화를 연습한 걸까.





함께 다이어트를 해왔지만 몸에 대한 혐오는 내가 더 심했다. 나는 답정너인 사람이다. 나 살쪘지? 란 질문에 아니 날씬해라는 대답을 원하는 사람. 쪘다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성질을 부리는 사람. 우리나라 여성복 사이즈는 왜 이렇게 작냐며 언성을 높인다. 언니는 그런 말은 원하지도하지도 않는다. 빅사이즈 쇼핑몰에서 옷을 시키고 입어본다. 혼자서 교환하고 환불한다. 모든 선택을 알아서 한다. 여자라서 억울하다거나 불공평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문명 특급'이란 유튜브 채널에서 '유교 걸'이라는 노래가 유행한 시절이 있었다. k-장녀의 설움을 폭로한 노래랄까. 댓글 창을 보면 이런 글이 있다. "k-장녀의 방은 현관문 앞이다" 우리 언니의 방도 그렇다. 언니는 한 번도 장녀라서 힘들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동생이라 누릴 수 있는 환대를 받으며 눈치를 볼 때도 그녀는 가만히 있었다.


아무런 불만도 없는 것인가. 언니가 이해가지 않는 순간이 수두룩하다. 페미니즘 이슈로 아빠와 말다툼을 할 때도 한숨을 쉬며 내게 말했다. 네가 그렇게 한다고 안 바뀌어. 사람이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모든 변화에는 타이밍이 있어서 목소리들이 모이고 쌓여가다 보면 흘러가듯 변화를 맞게 될 거라고 현자처럼 말했다.

우리 자매는 염세적이지만 조금의 차이가 있다. 끝없이 사람에게 기대하고 마는 나와 달리 언니는 인간에게는 의지할 구석이 없다며 냉정히 말하곤 한다. 차별이라는 둥,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둥 혼자서 열을 올리며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은 상상을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다 보면 내가 왜 이렇게까지 성을 내나. 무슨 의미가 있지. 하는 초연한 심정이 된다.


남몰래 같은 편이라고 여겼다. 언니는 여자고, 장녀고, 대중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우리가 받은 폭력이니까. 내가 말하는 의견에 기운을 복 돋아 줄 거라고 말이다. 내 기대는 번번이 무시된다. 언니는 무조건 찬성하고 동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쉽게 피해자라고 일단락하지도 않는다. 마치 나는 너랑은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섣불리 단정 지으려는 마음에 반기를 들고 사람은 단면만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난 실망하고, 생각한다. 언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언니가 바라는 세상은 뭘까.


뚜렷한 주장 없이 잠잠하게 서 있는 사람은 의미심장하다. 언니는 뭘 하든 그랬다. 시작부터 끝까지 주절주절 토해내야만 하는 나는 몰랐다. 모르겠다. 말 한마디 없이 무언가 저지르고 마는 언니를. 이제껏 그랬듯이 자신의 세계를 남몰래 구축하고 있겠지. 어림짐작 할 뿐이다.





이렇게 다른데도 한 가지는 변함없다. 우리가 여전히 서로를 꼭 붙들고 함께 서 있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지점에선 만나고 말 테니까. 일단은 한 걸음 뒤에서 각자의 삶을 바라보고 할 수 있는 만큼 지지할 뿐이다.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버팀목이 되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편집자 지망생인 동생을 가지고 있는 언니는 서점 구경은 좋아하지만 책 읽기에 진저리를 친다. 없는 돈 모아 책으로 탕진하는 나를 보며 말한다. ‘책 사는 데 돈 낭비 말고 그 돈으로 옷을 사!’ 언니의 잔소리에 나는 오늘도 웃어버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끝을 예감하는 마음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