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샨 Jun 17. 2021

중국과 나

단기 선교사로 살아봤습니다


스물셋, 남들은 졸업에 취업을 신경 쓸 나이에 나는 선교를 한답시고 중국으로 떠났다.



선교를 가기로 결심한 건 사명감 때문이 아니다. 2주간의 선교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언젠가 선교사로 거기서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교에 뜻이 있던 것도 아닌데 그랬다. 난 다시 여길 오게 될 거라고. 혼자만의 약속을 지키고자 결정한 건 3학년이 끝날 무렵이었다.


자취를 하면서 많이 외로웠던 것 같다. 누구라도 필요했다. 자존감은 땅 끝까지 내려가 있었다. 기독교 동아리를 하면서 오빠를 만났다. 애인이 있다고 했지만 밤에는 내게 전화를 걸었다. 손이 까졌다며 핸드크림을 사줬다. 밥을 사주고 매일같이 연락을 했다. ‘설마 나 같은 걸’ 이런 생각이었다. 나 같은 걸 좋아할 리 없어. 나 같은 애니까 접근한 거겠지. 나 같은 애니까 쉬웠겠지.


오빠는 동아리 회장이 됐다. 매력 있는 사람.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좋은 사람.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평가했다. 삐져나오는 마음을 잘라내려고 노력했다. 연락을 끊고 피해 다녔다. 동아리에서 그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스멀스멀 밀려오는 죄책감과 혐오감. 난 내가 혐오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쉽게 볼 수 있는 존재. 아무런 매력도 없는 존재. 이런 말들이 끊임없이 내 머릿속을 따라다녔다.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라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갈 거라면 지금이었다.



중국, 내가 있던 J시는 미세먼지 수치가 1000까지 올라가는 곳이다. 공기가 탁해서 기침이 계속 새어 나오는 곳. 어떤 언니는 J시의 공기엔 달콤함이 있다고 했다. 냄새로 공간을 기억하기도 한다면, 나는 때때로 한국에서도 J시의 공기를 느꼈다. 숨을 못 쉬게 만들지만 새로운 숨을 내뱉게도 만드는 곳.


대학생 선교에 온 초점을 맞췄다. 중국인 친구를 만들어서 한국 음식을 해주고, ‘예수 아이 니’를 불러줬다. 친구들은 예수님엔 관심이 없었다. 한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었을 뿐이다. 현지화가 되어야 한다며 옷을 사지도 화장을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내 몰골을 보고도 이렇게 말했다. ‘요샨 니 헌 피아오량.’(유선, 너 정말 이뻐) 경계심 없고 순수한, 그래서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선교사로 살면서 힘들었던 건 후원자들의 돈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모든 결정을 양심에 맡겨야 했다. ‘이렇게 비싼걸..’ ‘선교산데 이런 걸 해도 될까?..’ 매 순간 갈등해야 했다. 낮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고 밤이 되면 불안해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왔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다. 난 자격이 없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설 자리가 없다. 복잡한 생각을 하다 고단하게 잠들었다.


무기력 속에도 할 일이 주어졌고 할 일들을 해야만 했다. 뜻밖에도 이런 점이 날 조금씩 변화시켰다. 한국에선 내려놓을 수 있었던 일을 꾸역꾸역 해나가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편식이 심하던 내가 가지에 토마토까지 먹게 되고. 난 의외로 털털하고, 예민하지만 단점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온전히 나에게, 신앙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물론 힘들었다. 너무 힘들어서 가끔은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어쨌든 그 시간을 버텼다.



서쪽 지역으로 선교여행을 가고 소수민족을 만났다. 같은 나이지만 이미 아이를 둘이나 낳은 친구. 부유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누군가는 뿌리 같은 종교를 품고, 누군가는 예수를 믿기 위해 숨어 생활한다. 이 모든 게 엄청난 경험이었다. 내가 작게 느껴졌다. 그동안의 고민들이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무엇보다 좋은 건 낯섦이 주는 고요함이었다. 언어의 장벽이 주는 편안함이었다.


1년 6개월의 짧은 시간을 접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의 풍경을 바라봤다. 잊고 싶지 않아서. 시원섭섭한 마음에. 그동안의 시간들이 스쳐갔다. 눈물이 한 방울씩 나더니 방울방울 떨어졌다. 옆에 있던 사람은 이상하게 봤겠지만 뮤직 비디오를 찍으며 J시를 떠났다. 안녕. 고마웠어. 다시 돌아올게. 비행기 안에서 속삭였다.


한국에 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중국에서도 안 했던 물갈이를 하는 건지. 머리카락이 빠지고 살도 빠지고 몸이 약해졌다. 몸과 마음은 하나라고, 마음의 힘도 작아졌다.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것이라던 그리움이 희미해졌다.


그럼에도 문득 거대한 욕구가 나를 덮치곤 한다. J시의 공기, 사람들, 그때의 나. 파도와 같은 마음.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밀려온다. 당장 짐을 싸고 출발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돌아가면 내가 아는 모습으로 그 장소를, 사람들을 만날 것 같다. 하지만 이젠 잡을 수 없는 기억들을 슬며시 내려놓는다. 숨을 들이켜고 뱉는다. 아마 난 이 기억에서 영원히 도망가지 못할 것이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때, 답답함에 어지러움을 느낄 때면 그곳을 생각할 거다. 그곳은 끝끝내 내 안식처가 되어줄 것이고 도망을 허락하겠지. 그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기약 없는 약속을 하기로 한다. 여전히 J시가 내속에 머무를 곳을 마련하고 있을 테니 언제든 돌아갈 수 있을 것이므로.



매거진의 이전글 그 돈으로 옷을 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