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요즘 뭐하냐?"
"나? XX이라고 아냐?. 모를걸 그냥 중소기업 다닌다."
누가 어릴때부터 중소기업을 다니고 싶다고 말할까? 좋은 직장, 많은 돈, 아름다운 배우자를 원하는건 대한민국 뿐만아니라 인류의 꿈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게도, 대다수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 대한민국 직장인의 80%가 중소기업을 다닐만큼. 많은 이들이 바라지 않지만, 어쩔수 없이 다가온 현실. 그것이 중소기업 직장인이다.
중소기업 직장인의 삶을 이야기 하기 전에 '나'의 이야기를 잠깐 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초등학생의 어린티를 한참 벗어나지 못한, 8살 시절. TV에서 나오는 디지몬 어드벤처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도 선택받은 아이들 처럼 재밌고, 흥미 진진한 인생을 살고 싶었다. 실제로 그런일이 생각보다 쉬울거라는 막연한 믿음도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듯이 어린시절 우리들이 주로 보는 애니메이션은 하나 같이 꿈과 희망을 알려주는 내용 위주였으니까. 포켓몬스터, 디지몬, 원피스 등의 애니메이션을 보다 자라는 많은 어린아이들은 나와 비슷한 꿈을 꾸었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꿈은 꿈일 뿐...
현실은 잔인하다는걸 깨달은 건 군대를 가고난 이후 부터였다. 애니메이션 감독이라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대학에 입학했고 1년을 보냈지만, 군대에서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현실적인 삶을 바라고 있었다. 어떤 이는 사업을 하다 들어온 이도 있었고, 정치활동 하다가 구치소에 수감되다 군대 온 이도 있었다. 또 어떤이는 룸살롱 직원 출신이기도 했으며, 평범한 직장인 생활을 하다 군대에 온 이도 있었다.
살면서 고향 땅 안동을 제외하고, 대학교 근처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그들과의 만남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매일 대학 동창들과 미래의 꿈을 생각하며 술을 마신 그 순간이 모두 부정당하는 기분으리라. 그들과 만나면서, 내가 얼마나 상식과 현실을 모르고 사는지 깨달았다. 나의 첫 번째 현실 팩트폭격이었다.
두 번째는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찾아왔다. 2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허리디스크이다. 2019년 12월. 집에서 홈트레이닝을 하다 "뚝"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지고 나서, 생애 처음으로 앰뷸런스를 탔다(당시 나의 나이는 27세 만으로 쳐도 26세였다) 나는 고통을 잘 참고 둔감한 편에 속했는데, 디스크가 터진 그 당시는 조금만 움직여도 신경이 부서지는 고통이 들어 비명을 도저히 참지 못했다. 마치 바늘 바닥에 허리를 문대는 기분이랄까?(뭉특한 바늘이 아니다. 공장에서 막나온 아주 날카롭고, 뾰족한)
4일간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차차 걷게 된 뒤부터 매일같이 재활운동을 시작했다. 빠른걸음으로 걷는건 물론이고, 최대한 침상에 누워 안정을 취했다. 그렇게 1달 여간이 지나자 겨우 잠깐 앉을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10시간을 앉는건 무리였고, 심지어 20분을 앉다가도 다리가 저려, 일어설 수 밖에 없었다. 진짜 피카츄가 10만 볼트를 내뿜으면서 내 하반신에 뒹구는 것처럼 전기가 다리를 감싸고 돌았고, 차라리 몸을 기계로 바꿀 수 있다면, 당장 하고 싶을만큼 고통이 가득했다.
매일 같이 우울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평소에도 수면장애가 있었지만, 그 시절에는 잠들려고 누우면 최소 1시간을 설칠만큼 불면증이 날 놔주지 않았다.(진짜. 너랑 나랑 이제 좀 헤어지자)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당시부터 코로나19가 대한민국에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최초의 확진자가 나온 시기였고 아직까지는 한 자리수 감염자였지만, 메르스 사태를 봤을때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을 만큼 심각했다.(그때는 몰랐다. 이놈의 코로나19가 이 글을 쓰는 12월까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할줄은. 진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말자 코로나...)
몸도 아프고, 코로나19도 사회에 퍼지기 시작하고 내외적으로 우울한 일들 투성이니, 자살 충동이 일렀다.
"하.. 왜사냐 진짜. 그냥 죽으면 편할텐데"
하지만 죽는게 두려워서인지, 쉽사리 목을 맬 생각은 하지 못했고, 누군가한테 화풀이만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친구들한테는 못하니, 내 서러움을 여과없이 받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어머니한테 밖에 할 수 없었다.
"몸은 좀 괜찮니?"
"괜찮긴 똑같지."
"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덜 아프고 그럴거다."
"무슨 소리야? 엄마. 그거 알아? 병이 생기는 원인의 80%이상은 유전이야. 유전자가 좋으면 몸을 혹사해도 디스크는 안생겨."
-------------------실제로 이런 느낌으로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소위 말하는 패륜짓을 해버린 셈---------------
어머니는 나의 패륜적인 말에도 힘내라는 말만 거듭 말하셨다. 정말 난 몹쓸 자식이었다.
이대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제로 사회생활에서 배제된거 같은 기분이 들더라도, 스스로 포기해버리면 정말 끝이니까.
그렇게 나는 중소기업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