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하지만 불러야 할 이름이 있습니다. 제가 불러야 할 이름은 ‘김OO’님입니다. 늘 부르던 호칭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니 정말 어색하네요. 누군지 궁금하신가요? 바로 제 아빠의 이름입니다. 평소에 아빠가 주인공인 책은 많이 보지 못했는데, 그래서 이 책이 더 와닿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는 저의 아빠를 떠올리기 충분했습니다.
아빠, 하고 불러봅니다.
저 멋쟁이였네요...ㅎㅎㅎ
아빠,
얼마 전 책을 읽었는데, 책 제목이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요.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읽어봤답니다. 작가는 ‘아버지’라는 주제로 어떤 글을 썼을까? 이 책 보면 우리 아빠도 생각이 날까, 하면서요.
책의 내용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어요. ‘빨치산’ 아시죠? 책 속 딸의 아버지는 빨치산입니다. 때문에 친인척이 불합리한 일을 당하고, 딸 스스로도 ‘빨치산의 딸’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 싶어 해요. 빨치산의 딸로 살게 해서 미안하다는 아버지의 사과를 듣길 원하고요. 저는 그 세대가 아니지만, 부모든 자식이든 각자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가 되었답니다.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는 사이지만, 싫고 못마땅한 부분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딸에게 아버지란 빨치산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버지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합니다. 그들이 이야기 속에서 아버지의 다양한 순간들이 존재하고 있었답니다. 빨치산에서 알 수 있듯 목숨을 걸고 신념을 지키려는 모습, 개개인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음을 헤아리고 덕을 베풀고 받는 모습, 사람의 도리를 다하려는 모습. 딸도 알고는 있었지만 그런 모습들을 좀 더 선명하게 확인하게 됩니다.
또한 빨치산이었던 아빠가 아니라 평범한 아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나의 아빠, 가족을 사랑하고 다정한 아빠. 남자, 남편, 아들, 형제 등의 너무도 당연했지만 인식하지 못했던 역할들도 보입니다. 이렇듯 아버지는 죽음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이는 딸이 아버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지요.
우리 아빠 사진 찍는 거 은근히 좋아하심. 소심한 브이!
책의 스토리에 흠뻑 빠져 읽은 후, 역시 아빠가 생각났습니다. 특히 아빠가 옛날 일을 즐겁게 들려주실 때가 떠올랐어요. 언제인지 아세요? 아빠가 고등학생 때와 20대 초반 시절의 이야기랍니다. 한참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넓혀간 그 시기가 제일 기억나시나 봐요. 그 이야기 속에서 아빠는 학생도 되었다가, 청년도 되었다가, 가끔은 나의 아빠가 되기도 합니다.
학생이 된 아빠는 친구들과의 추억을 되짚어보고, 청년이 된 아빠는 배를 타고 이곳저곳을 누비던 때로 돌아갑니다. 나의 아빠가 되어서는 동생과 제가 어떻게 자랐는지 이야기해 주시고요.
지금의 저보다 더 젊었을 적의 아빠를 상상하면 참 멋지기도 하고, 아빠가 그 시절을 많이 그리워하신다는 마음이 느껴져요. 아마 책 속 아버지도 아빠처럼 한 시절을 견디고 혹은 즐기며 보내지 않으셨을까요? 아버지로서 늘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인생길을 걸으며 쌓은 자신의 추억과 아버지로서 딸과 함께한 시간은 아빠와 비슷할 듯하여 더 공감이 갔어요.
아빠는 저와 매일 통화할 때마다 친구 댁에 가셨거나, 점심을 드신다고 하시지요? 그 말씀에
"아빠, 남자끼리 매일 무슨 얘기하세요? “
라고 묻자 그냥 논다고 하시잖아요. 어제는 친구분과 함께 점심으로 시락국을 드시러 간다고 하셨는데 맛있게 드셨어요? 저도 나중에 집에 내려가면 아빠랑 같이 먹고 싶어요.
사람의 인생 시계는 멈추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아빠의 시계도 멈추겠지요? 그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엄마의 시간도요.
아빠의 시계가 멈춘 날, 아빠의 추억 속 사람들이 모두 오시면 좋겠습니다.
그분들이 제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궁금해요. 책 속 아버지의 이야기처럼 저도 아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며 아빠를 떠올려보면 좋겠습니다.
"암튼 건강해야 한다."
저와 아빠와의 마지막 대화는 늘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제가 해야 할 말을 아빠께 매일 듣고 있답니다. 그럴 때마다 부모는 항상 자식 걱정뿐인가 싶기도 해요.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아빠에게 짧은 편지를 써봤습니다.어색하지만, 불러야 할 이름이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