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겨울, 스며드는 감정의 온기
나의 여행에는 책 한 권과 술은 필수다. 한동안 트레킹에 빠져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만나는 풍경에 잠시 멈추어 휴식을 취하며 맥주를 마시곤 했다. 또 어떤 날은 가벼운 반주를 즐기거나 숙소에서 책을 읽으며 한 잔 하는 것이다. 책과 술의 종류를 고르는 것도 여행길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되기 시작했다. 장소를 정한 후계절과 날씨, 감정에 따라 어떤 날은 시를 고르고, 어떤 날은 소설을 고르고, 또 다른 날에는 산문집을 고른다. 그렇게 어떤 날은 시원한 맥주를, 어떤 날은 분위기 있는 와인을, 또 다른 날에는 구수한 막걸리나 달고도 쓴 소주를 곁들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혼자만의 여행길도 외롭거나 쓸쓸하지가 않았다.
그와 함께 여행을 다닐 때는 조수석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마시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술을 즐기지 않는 그는 처음에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여행에서 카메라와 사진이 빠지지 않는 것처럼, 내게는 책과 술이 그러한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먼저 술을 챙기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이번에도 새로 출시된 맥주를 미리 사놓고 있다가 여행길에 챙겨 와서는 내게 건네주는 것이다. 익숙함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맛집을 찾지 않는다. 배가 고플 시기에 지나는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거나 편의점을 들를 때가 더 많다. 우리의 여행 취향이 같아 가능한 일이다. 그 대신에 여행지의 특색 있는 서점이나 북카페, 혹은 양조장 한 군데쯤은 꼭 방문하는데, 이것은 나에 대한 그의 배려라는 것을 알고 있다.
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겨울을 맞이한 영양 두들마을은 아기자기한 시골 마을이었다. 이문열 작가의 어린 시절과도 인연이 있는 곳이라 그의 책이 가득하다. 인스턴트커피가 잘 어울리는 곳이라 종이컵에 따른 각자의 차를 가지고 책 한 권씩을 꺼내어 자리에 앉았다. 한갓진 오후의 시간이 잘도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