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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려원 Jun 14. 2023

생각을 펴요

오래전 인터뷰를 위해 오천 원과 오만 원권의 초상화를 그리신 이종상 화백님을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초상화를 그리게 된 과정과 이에 얽힌 내용을 듣던 중 지폐의 구겨짐에 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한번 접으면 그냥 접는 것이지만 두 번 세 번 접는 것을 반복할 때 그것은 접는 것이 아니라 구겨지며 꼬깃해 지는 일이라는 말씀이다.


이런 구겨짐으로 인해 선생님의 작품이 담긴 지폐는 가급적이면 반지갑이 아닌 장지갑을 사용하거나 책 속 어딘가에 펴진 그대로 놓아둔다는 것이다. 선생님의 작품의 국가 보물이 되었으니 더욱 그러함과 접히고 구겨지는 것은 사물만이 아닌 내 마음과도 같은 일이라는 말씀을 들려주셨다.


마찬가지로 자기 안에서 구기고 펴는 것은 들락날락할 수 있는 나의 마음이고 사람의 말이며 글과 자기 생각이다. 그러나 어느 대상의 마음 안에 내가 들어가 마음대로 그 마음을 구겼다 폈다 하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앞세워 이미지를 접는 일과도 같은 일이다. 


내 마음을 맘대로 할 수는 있는 건 자신이지만 상대의 마음 안에 들어가 내 마음대로 휘젓는 일은 그 마음을 구기는 일과도 같다. 가끔 상한 마음을 안고 되돌아 서는 이들은 그들의 잘못이 무엇이기에 자신이 주지도 않는 마음을 안고 되돌아 서야 하나. 상대가 안 좋아할 마음은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일이다. 넘어져 깨진 무릎의 상처는 살갗이 찢어진 사람만이 바르는 것만이 아닐거다. 반드시 치유의 연고를 발라 삐뚤어진 마음도 회복해야할 일이다.



PEOPLE TODAY.이종상 선생님께서.


나는 오늘 어디에서 구겨졌다 펴지고

누구의 마음을 구겼다 폈다를 하며,

누구의 마음안에서 구겨지고 펴지기를 하는가.

글은 내 마음속에 있어,

나를 구기기도 하고 펴기도 해.

마음을 접었다 펴는 건 어느 감정에서 오는 것일까.

작가는 소설 속 주인공을 구겼다 펴고

시(詩) 심은 어느 곳이나 날아가서 앉을수 있네.

글은 어딘가에서 구겨지거나 펴진 채로 있기도 하고,

궂은날 우산을 펴는 일은 내가 비에 젖지 않기 위함일까.

구름이 하늘을 가리는 건 왜일까,

그건 내 마음이 아닐건데. 

바람은 불어서 늘 같은 방향으로만 가지 않네,

인연과 인연사이에 부는 바람은 무엇일까.

새는 날아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파도의 접힌 물살은 내가 펴야지.

어떻게 펴는지는 바다에게 물어봐야지.

바다가 하는 말에 나의 귀가 닫혀 있네.

나의 내면이 잠자고 있는 일이야.

내 마음이 어두운 것이야.

마음을 펴야지.

글을 펴야지.

생각을 펴야지.

오늘 내 하루를 펴야지.

구겨진 인생 말고 내 삶을 펴야지.


오늘 내 마음이 아닌 마음은 구겨넣기로 해요.

버려야 할 마음은 버리고 담아야 할 마음만 담기로 해요.

요즘 세상은 너무 구겨져서 환하게 펴졌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접시꽃 (당신)처럼 활짝 펴졌으면 해요. 이렇게 하면 내가 도종환 시인을 펴주는 일인 걸까요.

20230614095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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