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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려원 Sep 30. 2023

구름의 허리를 잡고



미련함이 가끔은 나를..

어머님의 기침 소리에 마음 편하지 않았다. 환절기 탓인지 편도가 부어올라 열을 앓아 내셨다고 한다. 그동안 나는 어머님께 몇 날을 전화도 못 드리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아프시면 전화하시라고 했는데 왜 혼자 아프고 계셨냐는 물음엔 이제 다 낳았다며 괜찮다 하시는 어머님 말씀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내 바쁜 것만 일이 아닐 것인데 어머님을 향한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어머님 잘 보살펴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던 아버님께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미련함이 가끔은 나를 우울하게 할 때도 있다. 하지 않으리라던 후회가 또 하나 건너던 어머님댁에서의 추석전날 밤이었다.



고부간의 갈등은..

아버님이 안 계신 아홉 번째의 추석을 맞았다. 제사도 없는 명절날 어머님은 늘 많은 음식을 준비하신다. 우리를 먹이기 위한 당신의 희생과 사랑 이시다.  해가 바뀔수록 어머님의 손맛도 변해 가끔은 평상시와 다른 요리가 나올 때도 있다. 어머님이 해놓으신 양념 갈비가 하얗고 싱거워 보여 진간장과 올리고당을 더 섞어 물을 붓고 끓였다. 어쩌다가 그렇게 나온 요리가 다들 갈비가 부드럽고 맛있다고 했다. 어쩌다 가끔 나도 모르게 맛있는 요리가 완성되어 나올 때가 있는데 바로 그날이었다. 어머님의 양념이 골고루 잘 묻어 있던 이유였다. 지금껏 고부간의 갈등 없이 잘 살고 있는 이유도  나의 부족함에 눈감아 주시고 어머님의 사랑 같은 양념이 밑바탕에 골고루 잘 배어 있는 이유에서 일 것이다.



이해를 하기도, 낳기도..

여느 때와 다르게 형님네가 먼저 오고 여느 때와 같이 형님네가 먼저 짐을 챙겼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어머님댁에서 더 머물다 어머님의 손이 더 가지 않도록 뒷일을 모두 마무리하고 온다. 시아주버님의 직장이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방에 있다. 형님네가 친정에 들러 집으로 내려가야 하니 시간이 빠듯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보통은 명절 전날 우리가 먼저 도착해 일을 해 놓는다. 명절 당일날은 친정을 먼저 들렀다 오는 형님네와 아침 식사를 한다. 그런 형님네를 우리는 지금껏 이해하며 살아간다. 


결혼을 하면서 우리는 어머님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았다. 그런 이유 인지 집안의 일이 생기면 어머님은 늘 내게 먼저 전화하셨고 아버님이 병원에 계실 때도 둘째인 우리를 먼저 찾으셨다. 우리가 아버님과 병원에서 더 긴 시간 보낼 수 있던 이유였기도 하다. 


이해는 낳아 키우기도 하며 가끔은 하기도 한다. 내가 조금 더 낮아지면 어떤가. 서로의 이해는 오해를 없애 주는 평탄함을 유지해 주기도 하는 사람 관계의 필요성에 있기도 하다. 작은 며느리이지만 큰 며느리로 살면 좀 어떤가. 그것이 정해진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서로 높여 가는 자존심은 빈구석의 쓸모없는 마음만 가득일 것이다. 



구름의 허리를 잡고..

어머님댁에 다녀오면서 늘 남겨 두고 오는 말이 있다. 아프시거든 언제든 우리 집으로 오시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언제든 우리 집에 오실 어머님. 그 마음은 나의 위안이며 언제든 우리 집에 오실 어머님을 늘 곁에 두고 있는 마음 같기도 해서다. 그 말에 익숙해진 아이가 이번엔 나를 대신했다. "할머니 아프시면 안 되니까 혼자 계시지 마시고 언제든지 우리 집으로 오세요"라고 전했다. 아이의 어깨를 두드리는 어머님 손이 감기라도 다 나으신 듯 힘 있어 보였다. 구름같이 보드라운  어머님의 하얀 미소가 보였다. 구름의 허리를 잡고 온종일 바람의 방향으로 흘러가던 날이었다.


사진자료: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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