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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려원 Oct 29. 2023

헤어지기 좋은 시간

김재진 신간 시집(2023.10)

김재진 신간 시집 헤어지기 좋은 시간(2023.10)



압셍트를 마시며 고흐가 말했다.

별이 아를에서만 빛나는 건 아니야.

론강에 비치는 별은

별이 아니라 폭죽이지.

슬픔과 절망이 뒤섞인 함성 말이야,

그건 하늘에서 작렬한 내 인생 같지.

내 귀에는 들려. 폭죽처럼 생이 터지는 소리가.

그건 눈에 보이는, 그러니까 붉은 포도밭이나

사이프러스 나무 같은 것과는 달라.

나는 지금 압셍트를 마시지만

때로는 통째로 영혼을 마시기도 해.

화가의 영혼은 언제나 둘이지.

하나는 론강을 비추는 저 별 같은 이고

다른 하나는 물감으로 그려낸 지폐 같은 것이야.

나는 다시 돌아올 거야.

뭔가를 그린다는 것은 어딘가로 돌아간다는 말이지.

별이 어디에서 빛나건

그것이 카페 테라스에서 빛나건

고갱의 머리꼭대기에서 빛나건

빛나고 있는 한 돌아올 거야.『김재진 신간 시집. 헤어지기 좋은 시간. 김재진 고흐의 별 전문.P24』 

 



김재진 시인은,

그림을 그리며 시를 쓰는 시인 이면서 화가다. 언어의 화가라고 불려도 넘치지 않을 정도 로 그는 40년이 넘는 시간을 지금까지 시인과 화가로 살아 간다. 임종을 앞둔 병상의 어머니로 인해 화가로 변신한 계기가 되었다. 온종일 벽만 바라보고 누워 있던 어머니가 문득 벽 위에 입을 하나 그려달라는 부탁을 했고, 어머니의 그 말 한마디에 사무치는 고독을 직감해 그 길로 그림울 그려 어머니께 보여드렸다. 사람의 입이 아니라 모이를 물고 오는 어미새를 바라보는 아기새들의 부리. 그것을 보고 좋아하는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시인은 그날부터 매일 서툰 솜씨지만 그림을 그려 병석에 누워 계신 어머니께 보내 드렸다. 그렇게 시작 하던 그림을 어머님이 떠나고 난 뒤에도 여섯번의 개인전을 열고 페이스북에서 독자들과 소통을 이어오며 지금은 화가로 변신한 계기가 되었다.




김재진 시인의 신간 시집 『헤어지기 좋은 시간』은,

인생과 사랑과 욕망으로부터 떠나가야 하는 이별의 시간을 노래한 책이다. 현재를 벗어내고 떠나는 이별에 대한 예고 없는 시간을 불러 냈다. 태어나 사람은 누구나 한번의 영원한 이별로 가지만 그 길로 가는 것이 결코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헤어지기 좋은 시간』은 나와 타인 또는 나와 나 사이의 이별을 아름답게 가꿔 주는 존재다. 이별에서 저별로 가기 위해 그때 만날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 바람 건드리지 못한채 깊어 지는 가을 고요한 문장들로 독자들의 마음을 책속에 묻어 두기에 마음 흐트러짐 없을 것이다.


시가 지니고 있는 문장에서,

깊은 사유를 이끌어 내는데 충분한 언어들이 가득 담겨 있어 감상 뒤에는 고개를 들고 상상을 하게 되는 묘한 기분이 든다. 그 이면에는 고흐라는 별이 머릿속을 자꾸 훤히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고흐는,

 파리를 떠나 아를르에 정착해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까지 격동하는 내면의 감정을 불타는 듯한 붓놀림과 소용돌이 치는 구성을 통해 자신만의 확고한 화풍을 완성해 냈다. 깊은 푸른색 위에 보색인 황색으로 빛나는 별과 달과 빛의 무더기가 환상적인 그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에> 처럼 김재진 시인의 시집 『헤어지기 좋은 시간』은 순수한 영혼을 반영했다. 그가 그림으로 그리고 나타내는 고흐에 관한 이야기가 군데 군데 문장속에 살고 있다. 그는 평소에도 고흐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 내며 글로 표현해 낸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은 고흐를 만나듯 그의 존재감을 더한다.


이 책에 대해 정호승 시인은,

"김재진 시인은 언어의 화가다. 화가의 영혼은 언제나 둘 (「고흐의 별」)인 것처럼 김재진 시인의 영혼도 언제나 둘이다.그는 시인이면서 화가이고, 화가이면서 시인이다, 그는 인간의 사랑과 고통 분노와 상처, 술픔과 기쁨의 색채를 언어의 유화로 그린다. 이 시집은 그의 시집이면서도 동시에 화집이다."라고 말한다.


이 가을 누구라도 『헤어지기 좋은 시간』을 펼치며 위로 받고 마음 따듯해 할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김재진 시인은...』

조선일보와 영남일보 신춘문예 작가세계 신인상 등에 단편 소설, 시,중편소설이 차례로 당선되며 40년이 넘는 시간 글을 썼다. 시를 쓰면서도 시단과는 멀리 있고, 세속에 있으면서도 세속과는 거리를 두는 은둔자로서의 삶을 추구해 왔다. 어린시절, 우연히 듣게 된 첼로 소리에 끌려 첼리스트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음대에 진학하고 방송하 피디로 일하는등 분주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40대 초,욕망의 삶에환멸을 즈껴 홀연 직장을 떠나 바람처럼 떠돌며 인생의 신산을 겪었고,명상과 마음공부에 전념해 여러 가지 수행범과 프로그램을 설렵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할때」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산문집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바람에게도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 어른이 읽는 동화 「잠깐의 생」. 장편소설 「달세뇨」 외 다수의 출간 책들이 있다.




네가 나의

심장인 줄 알던 날은 두근거렸다.

뚜껑을 들썩이며 끓고 있는 라면처럼

세상 모든 것이

증기기관차 내달리듯 입김을 뿜고

황혼이 좋은 날엔 자전거를 타고

황혼의 심장을 향해 달렸다.

네가 나의 심장이 아니라

일몰의 그림자라는 것을 알았을 땐 슬펐다.

헤어지고 싶은 날엔 편지를 쓰고

모서리 돌아서 안 보이는 곳까지

자전거도 타지 않고 걸어서 갔다.

세상이 나의 심장이라 믿는 날은 벅찼지만

세상은 언제나 부정맥이라

멈추어 선 기관차처럼 레일을 벗어났다. 『김재진 헤어지기 좋은 시간.2 전문. P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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