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수사는 교토시 청수산(淸水山) 중턱에 있는데 이름 그대로 ‘맑을 청’(淸),‘물 수’(水), 즉 맑은 물이 흐르는 산이라는 뜻이다. 보물로 지정될만큼 일본이 소중하게 여기는 절인데 유네스코에도 등록되었다. 빨간색 건물도 독특하고 아름답지만 못을 사용하지않고 끼워 맞춘 건축양식도 유명하다.
그런데 내가 청수사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한 것은 이 청수사도 동대사와 마찬가지로 도래인 백제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말을 듣고 나서였다.
집에 와서 찾아본 자료로 서울신문, 24, 9,20 일자의 기사가 있는데 그대로 옮기면
'8세기 후반, 백제 계통의 도래인 출신으로 일본 역사에서 최초로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이 된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라는 인물이 있었다. 어느 날 다무라마로는 사슴사냥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아름다운 물소리를 듣게 되었고 그 소리가 나는 곳을 찾고 있었다.
마침내 물소리가 시작된 샘물을 찾았는데 그곳에서는 연진(延鎮)이라는 이름의 스님이 불경을 외우고 있었다. 다무라마로는 연진스님을 통해 살생을 뉘우쳤고, 2년 동안 연진스님과 함께 절을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청수사’(淸水寺·키요미즈데라)라고 전해진다.'
청수사가 세워진 건 778년도라고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모습은 아닌거 같다. 창건 이후 몇 차례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에도시대 초기인 163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령에 의해 재건된 것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보이지 않아서 찾아보니 여기서 반쯤 기절해있었다
청수사 본당 아래로 내려가면 청수사의 기원이 된 샘물이 떨어지는 ‘오토와노타키’를 만날 수 있다. 이 폭포수 줄기는 세 갈래로 나누어져 아래로 떨어지는데 왼쪽부터 학업성취, 사랑과 결혼, 건강과 장수에 효험이 있다하여 이 물을 마시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세가지 다 놓칠 수없는것들이 아닌가. 뭐든 빠지지않는게 우리 여행의 철칙이니 그 물을 마시려고 근 한 시간을 기다린거 같다. 반은 땡볕이라 쉬고 있다가 차례가 되면 오라고 아무리 말해도 사랑이는 끝까지 나하고 같이 줄을 섰다. 천진한 아이의 마음에 뒤늦게 들어오는게 새치기처럼 여겨져 마음이 편하지 않은 거 같았다. 남편은 한발 떨어져 서있었다.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기다렸는데 그 중 하나의 물만 마셨다. 셋 다 마셔보자고 하니 사랑이가 한사코 싫다고 했다. 줄 선 사람들 보니 얼른 비켜줘야 할 거 같은 압박감을 느끼는거 같았다. 나는 아쉬웠다. 학업, 연애, 건강 다 사랑이에게 선물해주고 싶은데....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세 가지 모두 마시면 오히려 불행이 온다는 미신이 있다고 했다. 욕심부리다 큰일날뻔 했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나는 내가 얼마나 지나친 욕심을 부리려했던 건지 깨달았다. 나는 '사랑이'라는 행운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남을 배려하는 사랑이의. 마음, 그건 그 모든 물을 다 마시는 거보다 더 크고 귀한 축복이었다.
청수사를 나오면 아래로 향하는 언덕길을 따라 기념품과 간식들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길 양쪽으로 즐비한데, 이 곳을 키요미즈자카라고 했다. 그곳에서 아이스 크림하나 먹고 힘을 내서 다시 길을 내려갔다. 그 길을 따라 더 내려가면 100년 이상 된 에도시대 목조건물들이 즐비한 길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길을 ‘삼년판’(三年坂·산넨자카)와 ‘이년판(二年坂·니넨자카)’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 길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이 길에서 넘어지면 3년 동안 또는 2년 동안 재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삼년고개라는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비슷한 거같다.
그런데 교토는 여름에 여행할 수없는 곳이라는 말을 들은 적있는데 다니는 내내 그 말을 정말 실감했다. 살갗을 태울 거 같은 땡볕에 한증막 같은 습기라니....
그런 날씨 속을 아직 어린 사랑이와 함께 밥먹을 때 외엔 다리 한 번 쉴 틈없이 돌아다녔다. 더위에 지쳐서 가는 코스마다 탈락자들이 한 명 두 명씩 나타났다. 하지만 나와 남편은 일단 여행을 나서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보자는 주의이고 사랑이도 그 모든 코스에 동참해주었다. 인내심을 키워주는데는 이만한 극기훈련도 없을 것이다.
사랑이는 우리가 다니는 곳의 가치를 알 리 없을 텐데 힘들어 하면서도 불평없이 따라다녔고 나아가 가이드 뒤를 늘 바싹 따라다녔다.
어른들도 힘들어하는 강행군을 보채는 일 한 번 없이 따라다니니 일행들도 늘 방글대며 가이드 뒤를 바짝 쫓아다니는 사랑이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봐주었다. 그중 사랑이를 각별하게 챙겨주고 상냥하게 말을 걸어주는 한 젊은 여자분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면 사랑이는 내가 아니라 자신을 예뻐해주는 그 분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여행에서 배우는 것은 새로운 곳에 대한 역사나 지식뿐만 아니라 이런 인내심과 사회성이 아닐까. 사랑이는 이런 힘든 시간들을 통해 인내심과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며 사람들 속에 스며드는 법을 자연스레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