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터 Mar 15. 2024

11, 이브의 뱀



                                                     (색 사인펜, 52개월, 도화지)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 에덴동산은 모든 것이 다 있고 행복한 곳이었어. 하느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주었지만 단 하나 선악과는 손대지 말라고 했어. 

근데 뱀이 나타나 선악과를 먹으면 하느님처럼 현명해진다며 이브를 유혹했어. 이브는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고 뒤이어 아담도 같이 먹었어. 그리고 아담과 이브는 에덴의 동산에서 쫓겨났지. 

사람들은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일해야만 먹고 살아갈 수가 있게 됐어.




사랑이가 갑자기 노란색 색 사인펜을 들고 식탁 앞에 앉더니 종이를 펼쳤다. 슥슥 하트 같기도 한 선이 단숨에 그려진다. 하트를 그리는 건가? 했는데 빨간색 사인펜을 들더니 알록달록 붉은 색동옷을 입혔다. 그리고 다양한 색을 가진 갖가지 모형들이 그 중간을 빼꼭하게 채워졌다. 

"뭘 그린 거야?"

"뱀이에요."

"뱀인데 왜 동그랗게 그렸니?"

"몸을 돌돌 말고 있거든요."

아, 그렇구나. 가만있으려다 한 마디 훈수를 뒀다.

"뱀이라면 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자 사랑이는 즉시 사인펜을 들더니 두 개의 점을 쿡쿡 찍었다.  하트가 뱀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더 욕심이 났다.

"뱀은 혀도 날름댄단다."

"그래요?"
설명이 필요할 줄 알았더니 사랑이는 내 말을 대번에 알아들었다.  초록색 사인펜을 들고 이번에도 단숨에 혀를 그려 넣었다. 거침이 없었다.

 나는 탄성을 질렀다.  하트가 예쁜 뱀이 되는 순간이었다.

"야아~ 멋지다!"

이걸 화룡점정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화룡점정이라는 고사 속의 용은 눈을 그리는 순간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사랑이의 뱀은 두 눈을 다 그려줘도 달아날 생각이 없는 거 같았다. 도화지 안에서 얌전하게 똬리 틀고  혀를 날름대는, 어디엔가 독을 숨기고 있는 거 같은 붉은 뱀. 그래서 더 유혹적이고 아름다웠다.


이브의 뱀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