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할빠와 손녀의 두 번째 여행(24, 3,22~3, 26 베트남)
빈원더스 놀이기구에서 땀을 흘린 다음에 간 곳은 워터파크였다.
워터파크는 아이들이 놀기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넓은 규모는 아니지만 키 120센티 이하와 그 이상, 두 곳으로 분류되어 웅장하고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안전 요원들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120센티 이하인 곳은 물이 얕아서 아기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들이 그곳에 모여있었다.
120 센티 이상인 곳은 물높이가 사랑이 무릎 정도까지여서 안전했다. 굳이 지켜보고 있지 않아도 되었는데 안전 요원들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서 사고 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사랑이는 워터파크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엄청나게 높은 워터 슬라이드 높이를 보고 처음에는 겁을 먹은 거 같더니 시간이 지나니 도전의욕이 생긴 거 같았다. 뜨거운 계단을 밟고 한참 올라가야 했지만 그곳에도 안전 요원이 지키고 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사랑이는 몇 번을 회전하면서 신나게 타고 내려왔다. 보기도 무서워 보였지만 역시 액티비티 한 사랑이었다.
어디든 전체적으로 한산한 편이었다. 한국인들 모습이 많이 보였다. 사랑이는 또래 한국 여자애들을 사귀어 신나게 놀았다. 푸꾸옥에서는 한 번씩 헷갈린다. 한국인지 베트남인지... 사랑이는 안전요원 오빠들과도 친해져서 서로 잡기 하면서 놀기도 했다. 안전요원들은 체격도 작지만 어리고 순진한 인상들이라 내 눈에는 모두 귀여워 보였다. 내가 나이 든 탓인가.
사랑이는 부끄럼 때문에 앞에 나서기는 싫어하는데 어디 가나 사람은 잘 사귀는 편이다.
어른들이 즐길만한 곳도 있긴 했지만 많지는 않았다. 남편은 수영복을 입고 워터파크 안에 들어가 사랑이를 지켜보거나 어떤 게 있는지 찾아다니며 여기저기 기웃댔다. 나는 그늘에 앉아 사랑이 노는 것을 보았다. 여기저기 탐색하던 남편이 왔다. 같이 탈만한 곳이 있다고 했다. 튜브를 타고 내려오는 워터슬라이드였다. 멀지도 않은 거기까지 가는 동안 나는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폴짝폴짝 뛰어야 했다. 바닥은 쨍쨍 쬐는 햇볕으로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슬리퍼를 신지 않은 내 발바닥이 그대로 익어버릴 거 같았다. 손바닥만 한 그늘만 찾아 디디며 간신히 도착했다.
재미있어 보였다. 그런데 흐르는 물의 흐름에 따라 내려오는 거라 아무래도 젖지 않을 수가 없을 거 같았다. 수영복을 입지 않은 터라 망설였는데 튜브 안에 있는 거라 조심만 하면 크게 많이 젖지는 않는다고 안전요원이 말했다. 손님은 없고 기다리고 있자니 지루했는지 찾아온 우리를 무척 반기면서 어떻게든 태우려 하는 게 느껴졌다. 그들은 쾌활했고 친절했고 자신들의 일을 즐기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영어도 유창했고 한국말 단어도 제법 알았다.
몸무게도 쟀다. 너무 가벼우면 내려가질 못해서라는 말에 나는 내심 버럭했다. 눈으로 보면 모르겠냐고!!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걸. 세 명 이상이 타는 걸 권장하지만 두 명의 몸무게 만으로도 제한 규정을 통과했다. 그것이 내 덕이라는 확인 사살까지 기어코 받은 후에 튜브에 올라탔다.
재미는 있는데 내려오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 싶었다. 내 몸무게가 이인분까지는 안된다는 사실에 은근히 안심하는데 결국 중간에 걸려버렸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든 벗어나보려고 애를 썼다. 남편과 둘이서 몸부림을 치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튜브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안전 요원이 물길을 따라 걸어 내려왔다. 안전요원이 우리를 밀어주고서야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물이 튀긴 하지만 많이 안 젖으니 반바지 차림만으로도 된다고? 천만에!
마지막 순간 튜브는 작은 웅덩이에 풍덩 빠졌다. 그게 착륙 방식이었다. 튜브는 얌전하게 내려앉지 않았다. 뒤집어진 튜브에서 빠져나왔을 때 나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함빡 젖어 머리와 옷에서는 물이 뚝뚝 흘렀다.
사랑이가 있는 워터파크 쪽을 향하는데 쨍쨍 내리쬐는 햇볕으로 바닥은 더 뜨거워져 있었고 손바닥만 한 그늘조차 사라지고 없었다. 익어가는 발바닥의 통증에 나는 윽윽, 새어 나오는 비명과 함께 폴짝폴짝 뛰었다. 그 러는 동안 말라가는 옷이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어마어마한 높이의 워터 슬라이더. 남편은 그날 유일한 고객이었다.
심심했던 그들은 남편을 기어코 제일 위까지 올라가게 하고 말았다. 그러곤 모두 지켜보며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쳐주었다. 남편의 나이를 알았다면 오히려 말렸겠지. 덕분에 남편의 무용담 하나가 추가되었다.
점심은 워터파크 안에 매점에서 파는 신라면 컵라면을 먹었다. 실컷 놀고도 아쉬워하는 사랑이를 데리고 워터파크를 나왔다. 점심을 컵라면으로 때워서 다들 배고파하고 있었다. 다른 먹을거리도 있었지만 글로벌화되지 않은 두 사람은 아예 시도도 하지 않으려 했다. 여행을 다니면 현지식을 맛보아야 한다는 나와 달리 토속 입맛인 남편과 사랑이 때문에 식당 찾는 게 늘 문제였다. 특히 동남아의 향신료를 남편은 질색을 했다. 쌀국수도 못 먹는 두 사람을 위해 한식당을 찾아야만 했다. 미리 조사해 온 바로는 그랜드 월드에 한식당이 두 개 있다는데 후기가 좋았다.
사실 식사 때문에만 가는 건 아니었다. 내가 푸꾸옥 여행에서 제일 기대한 것은 바로 이 그랜드월드였다. 사파리 갔던 전날, 그리고 워터파크를 온 둘째 날 모두, 저녁에는 그랜드월드를 가는 게 내가 미리 짜온 여행 계획에 들어 있었다.
우리는 그곳으로 가는 무료셔틀버스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