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할빠와 손녀의 두 번째 여행(24, 3,22~3, 26 베트남)
빈원더스는 아기자기 잘 가꾸어져 있었지만 규모도 작았고 놀이기구도 많은 편은 아니었다. 사람도 많지 않아 오래 줄 안 서고 놀이기구를 이용할 수 있어서 신나게 즐길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런데 큰 벽에 부딪혔다. 대다수의 놀이기구들이 키 130센티, 혹은 140센티 이상 이용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에겐 키 제한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아직 살아있는데, 손녀와의 첫 여행인 일본 유니버설스튜디오 재팬에서 였다.
한국에서 사랑이가 타고 싶어 하는 놀이기구는 거의 120센티 이상이었다. 액티비티 한 놀이를 좋아하고 모험심도 강한 사랑이는 얼른 자라 자신의 키가 그 놀이기구를 이용할 수 있는 120센티가 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모른다.
121센티가 된 작년, 희희낙락 떠났던 일본의 유니버설 재팬 여행에서 새로운 기준의 키 제한이 발목을 잡았다. 그곳에서는 기준이 122센티 이상이었다. 사랑이는 1센티의 벽에 막혀 타고 싶어 한 놀이기구 앞에서 눈물을 삼키며 돌아섰다. 122센티가 된 지금, 베트남이 훨씬 더 높은 벽을 사랑이 앞에 세워놓고 있을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기준은 그 어느 나라보다 높았지만 규모가 작다 보니 130센티 이하의 어린아이가 이용할 수 있는 다른 놀이기구는 별로 없었다. 빈원더스는 적어도 초등학생 고학년이 되어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구경거리는 여러 가지 있었으니 여성여성한 성격이었으면 즐길만한 것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눈보다는 몸으로 놀기를 좋아하고 120센티가 채 되지 않았을 때 한국에서 이미 롤러코스트도 마스터한 사랑이의 직성에 찰 리가 없었다.
사랑이 때문에 온 곳인데 사랑이 때문에 입구에서 번번이 돌아서자 사랑이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한 마디도 불평은 하지 않았다. 입술만 꼭 깨물고 있었다. 눈에 물기가 언듯 비쳤지만 눈을 깜박여 소리 없이 눈물을 삼켰다. 차라리 투정이라도 하면 달래든지 나무라든지 할 텐데 그러질 않으니 눈치만 더 살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날은 왜 이렇게 더운지.
그때였다. 입구에 적힌 키 제한 숫자만 살피며 다니던 우리들 눈앞에 멋진 것이 나타났다. 외줄다리 타기, 통나무 건너뛰기, 집라인, 등등 다양한 장애물을 지나가는 유격훈련장 축소판 같은 건데 모험심 강한 사랑이에게 딱 적당한 것이었다. 난이도 높은 그것의 키 제한은 놀랍게도 120센티이었다!
이건 다른 나라에서는 본 적 없는 베트남에서만 처음 보는 신기한 놀이기구였다. 안전요원은 처음 출발할 때 안전 규칙을 알려주고 일단 한번 시작하면 돌아갈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는 점도 주지 시켰다. 안전요원이 해주는 것은 안전신발을 신겨주고 허리에 안전바와 연결된 쇠고리를 채워주는 게 전부였다. 출발한 후부터는 이동할 때마다 고리를 스스로 바꿔 끼워가며 다양한 방식의 유격훈련을 모두 스스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높이도 아이들이 충분히 두려움을 느낄 만큼 높았다. 그래서인지 사랑이 앞에 초등학교 6학년 정도의 체격으로 보이는 남자애들 두 명 이후 하고자 하는 아이들은 보지 못했다. 그 아이들도 무척 겁을 먹고 간신히 끝을 냈다.
사랑이가 줄 위에 올라서자 왜 120센티 이상인지 알 수 있었다. 사랑이의 손에 닿은 줄은 사랑이가 팔을 힘껏 펼쳐야 닿을 수 있는 최대치였다. 120센티 이하면 그 줄을 잡을 수도 없었다. 상대적으로 사랑이에겐 전혀 여유 없는 높이에 팔을 뻗고 해야 하니 키가 큰 아이들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힘들어했냐고?
물론 힘들어했다.
그래서 두려워했냐고?
천만에!
사랑이는 이 유격훈련을 매우 신나 했다. 그래서 한 번 더 했다. 세 번째 또 하려는 건 우리가 말렸다. 점심도 먹어야 했고 땡볕을 고스란히 맞으며 20분 가량 걸려 완수하는 이 놀이는 아이를 발갛게 통닭처럼 익히고 있었다. 줄을 잡은 손바닥도 물집이 생기기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