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은 이 여행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오사카 유니버설스튜디오 재팬을 갔다. 일본 여행을 기획할 때 사랑이에게 다른 건 다 생략하고 유니버설스튜디오 재팬만 내세웠고 그래서 유니버설스튜디오 재팬은 사랑이가 일본 여행을 기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어 있었다.
가이드가 끊어준 표를 들고 설레하는 사랑이와 함께 줄을 섰다.
마침내 입장이 시작되었다. 가장 인기 있는 건 닌텐도 월드이니 제일 먼저 그것부터 보라는 정보를 들은 바 있기에 나는 들어서는 즉시 재빨리 방향을 잡아 닌텐도 월드에 줄을 섰다.
잘 한 선택이었다. 줄은 길었지만 입장이 시작되면 금방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남편에게 내 정보력과 순발력이 어떠냐고 잘난 척 뽐냈는데.....
결과적으로 말하면 나는 사랑이에게 닌텐도 월드를 구경시켜주지 못했다..
나는 반토막 정보만 들었던 것이다. 줄만 빨리 서면 되는 게 아니라 그 이전에 확약권을 받았어야 했었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당황하니 내 앞에 서 있던 한국 학생들이 자기들이 해주겠다며 내 핸드폰을 가져갔다. 한국인들의 친절함은 일본에서도 빛이 났지만 번갈아 가면서 열심히 애를 쓴 세 명의 여학생들도 결국 실패를 했다. 핸드폰의 와이파이가 터지지를 않은 것이다.
결국 어버버 하다가 닌텐도 월드는 들어가지 못하고 줄만 한참 서고 시간만 잡아먹고 포기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꼬임과 좌절과 체념의 유니버설스튜디오 재팬 여행은.
더위와 122센티의 벽 앞에서 비틀대는 사랑이
다음의 좌절은 닌텐도 월드만큼 인기 있다는 미니언 파크에서였다. 이것 또한 나는 반토막 정보만 알고 있었다. 인기 있는 존인 건 맞지만 놀이기구를 이용하려면 키 122센티 이상만 기능했기 때문이었다. 121센티인 사랑이는 문 앞에 세워진 키 재는 자에서 발을 멈춰야 했다. 내부 전시물도 볼만하다고 했지만 크게 실망한 사랑이는 놀이기구를 탈 수 없다면 아예 들어가지도 않겠다고 했다.
그곳만이 아니었다. 유니버설 내 어트랙션 키 제한은 대부분 122cm, 132cm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사랑이가 간절하게 타보고 싶어 하는 것들이었다.
그동안 사랑이는 자기 키가 120센티가 넘기를 얼마나 소원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 그 소원이 이루어졌고 그래서 자신만만 이곳으로 왔다.
그런데 도대체 왜 122센티냐고오!!!
한국에서는 120센티라고오!!
사랑이는 여성스러운 외모를 가졌고 얌전하고 말수 적고 수줍음을 많이 탄다. 그래서 사랑이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은 여자여자하다고 속기 쉽다. 사실 사랑이는 매우 액티비티 하고 겁이 없는 편이다. 아기 때부터 인형보단 자동차나 총이나 칼을 가지고 놀기를 더 좋아했고 구경하는 것보다는 자기가 몸으로 체험하는 걸 좋아했다. 만화도 여자 아이들이라면 다 좋아하는' 겨울왕국'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또봇 시리즈'나 '로봇 트레인', '꼬마자동차 붕붕' 같은 걸 더 좋아했다. 놀이터에서 놀 때도 소꿉놀이나 공주놀이보다는 피구나 덤블링하기를 더 좋아한다. 취미가 줄넘기라서 한 번에 200개 정도는 쉽게 넘기고 쌩쌩이라고 하는 두 번 뛰기도 30개 정도는 한다.
그러니 놀이동산에 가도 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는 성에 찰 리가 없었다. 사랑이가 만 5세 때 120센티가 되어 처음 탄 것은 롤러코스터이다. 사실 그때도 정확하게 재면 119센티 였는데 키를 재던 아르바이트생이 몇 번이나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통과시켜 주었다. 그러니 롤러코스터를 탄 사람 중 제일 작은 애였을지도 모른다.
사랑이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싶다고 했을 때 우리 식구들 모두 몇 번이나 말렸는지 모른다.
이거 어른들도 무서워하는 거라고, 뒤집어지기도 하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리는 거라고.
하지만 우리가 하는 엄포는 소용없었다. 사랑이는 자신의 머리 위에서 달려가는 롤러코스터를 보고 있었고 사람들이 질러대는 비명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래서 더 호기심을 가지고 투지를 불태웠다.
사랑이 때문에 나와 남편이 수십년만에 같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며느리는 거미만 봐도 기절할 만큼 겁이 많았고 아들은 작은 수술을 한 직후라 몸 상태가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롤러코스터를 탄 관광객 중 최연소이면서 최연장자 팀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롤러코스터보다 더 무서웠던 건 롤러코스터가 뒤집어질 때 내 옆의 사랑이가 안전 바에서 쑥 빠져 땅으로 떨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안전바가 사랑이의 작은 몸집을 다 잡아주지 못할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물구나무 서기나 덤블링을 즐기는 사랑이
그리고 지금 사랑이는 120센티를 넘어 121센티이다.
그런데도 1센티! 말 그대로 딱 한 끗이 부족한 것이다. 1센티 정도는 갸우뚱하면서도 통과시켜주는 사람은 유니버설 재팬 안에서는 없었다.
제한 키를 표시한 안내판 앞에서 매번 돌아서야 하는 사랑이는 눈에 눈물이 글썽이기도 했지만 입술을 꽉 깨물고 울음을 참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입 밖에 불평을 내놓지는 않았다. 자기를 이곳까지 데리고 온 할빠를 배려하는 그 속 깊음이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다행히 해리포터존에 아이들이 탈 수 있는 롤러코스터가 있었다. 그것도 나름 스릴 있었다. 나와 남편이 교대로 줄을 서서 그거라도 두 번 타게 해 주었다. 마법학교에서는 지팡이로 마술을 보여주는 마법을 보여주었는데 매우 흥미로워했다. 키 제한에 걸리지 않는, 조스가 나오는 유람선이나 쥐라기공원 탐험 같은 재미있는 곳들도 있었다.
그런데 날은 왜 그리도 더운지. 35도가 넘는다는 날씨에 쉴만한 그늘도 잘 보이지 않았다. 사랑이가 먹을 만한 음식도 찾기 어려웠다. 땡볕에 우왕좌왕하다 지쳐 쓰러져 죽을 거 같았다. 일찍 나가고 싶었지만 가이드를 오후 4시 반에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으므로 그때까지 122센티를 넘기지 않는 놀이기구를 찾아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간신히 시간을 보낸 후, 잔뜩 기대하고 들어갔던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을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는 얼굴을 한 사랑이와 함께 나왔다. 하지만 유니버설스튜디오 상징 조형물 분수에서 사랑이는 생기를 되찾았다. 돌아가는 지구본과 함께 사랑이는 돌고 돌고 또 돌았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통틀어 유일하게 신이 난 모습이었다.
이 여행은 실패였다. 그건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의 탓이 아니었다. 사랑이에게 초점을 맞춘 여행이었지만 즐기기엔 사랑이가 어렸고, 그럼에도 겁이 너무 없었고, 내 정보도 부족했다.
수년 후 사랑이가 132센티가 넘었을 때,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조기입장권이든지, 익스프레스권을 끊어서 다시 와야겠다. 기력이 여전하다면 말이다. 그때쯤엔 어딜 가나 확실한 최연장자 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