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한 인천공항)
의외였다. 미국행 델타항공은 거의 만석이었다. 코로나 땜에 국내조차 꼭 필요한 일 아니면 자제해왔던 그동안이 무색한 비행기 안의 풍경이었다.
미국행을 결정한 뒤에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얼마간 염려도 있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후 미국에서 연일 쏟아졌던 수많은 코로나 환자 소식, 자신만이 아니라 남을 위해라도 마스크를 쓰는 한국인과 달리 개인의 자유를 더 소중히 여기는 미국인들의 마스크 기피 문화들. 수시로 터지는 총기사고, 근래 부쩍 심하다는 동양인을 향한 증오범죄들. 또한 한국에서 이미 잡혀있는 개인적 일정들의 취소 문제 등등...
하지만 남편과 나는 반드시 가야 했다. 딸아이의 결혼식 피로연이 있기 때문이었다. 결혼식은 한국에서 치렀지만 재미교포인 사돈은 미국 친지들에게도 알려야 했다. 자식의 결혼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축복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한국의 부모나 미국의 부모나 매 한 가지가 아니겠는가.
코로나 시대의 결혼은 우리는 물론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새 출발을 축복받고 싶은 결혼과 사람들과의 만남을 경계하는 코로나 바이러스와는 처음부터 이해관계가 상충되니 말이다.
우리는 거기에다 재미교포와의 결혼이라는 특수한 상황까지 덧붙여 예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던 새로운 경험들도 해야 했다.
미국의 사돈 가족과는 화상으로 상견례를 했고 결혼식을 위해 한국에 도착한 사돈들이 14일 자가격리까지 마치고 풀려난 이후에야 정식으로 얼굴을 마주할 수있었다. 이미 14일이라는 시간을 허비한 사돈은 결혼식이 끝나자 수년 만에 온 한국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이내 미국으로 출국했다. 사업을 하기 때문에 긴 시간을 동시에 자리를 비운적 없었다던 사돈 내외로서는 감수해야만 했던 14일의 격리기간은 너무 긴 시간과 금전적 희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미국을 갈 차례였다.
사돈이 살고있는 곳은 메릴랜드였다. 주지사 부인이 한국인 유미 호건이고 코로나가 처음 터졌을 때 한국에서 진단 키트를 도입해갔다는 곳이지만 사위의 고향이 그곳이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미국의 수많은 주 중에 하나였던 메릴랜드에 대해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가 미국으로 갈 거라는 소식을 들은 조카가 자기 집이 비워져 있으니 차와 같이 쓰라고 연락을 해왔다.
조카는 미국에서 살고 있었는데 아기를 출산한 후 재택근무가 가능한 제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와있던 중이었다. 그동안 아르바이트생을 구해 집 관리를 맡겨 두었다는데 그 호의를 받아들이기에는 미국은 너무나 넓지 않은가.
그런데 운이 좋았다. 구글링을 해보니 메릴랜드에 거주하는 사돈 집과는 차로 한 시간 거리였다. 서울 시내도 웬만하면 한 시간 이상이 넘는데 이 정도 거리라면 미국 체류 시 충분히 이용할 수가 있었다. 미국에서 내 집과 차가 준비되어 있다니 마음이 편해졌다. 한국에서 일정들도 있고 해서 원래는 결혼식 끝나고 곧장 돌아오려고 했었지만 나와 남편은 의논 끝에 한달은 머물기로 했다. 미국을 제대로 보고 느끼려면 그정도의 시간은 필요할 거라는 생각에 비행기표도 비꾸었다.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비행기표도 끊었고 국제 운전면허증, 비자도 받았다. 백신 접종이 시작된지 오래되지 않았고 수급도 원활치 않아 우여곡절이 얼마간 있었지만 백신 2차까지 받는데 성공했다.
이로서 돌아와도 자가격리 2주는 면제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코로나 시대 해외여행에는 예전과 다른, 그러나 여권만큼 중요한 또 다른 필수서류가 있었다.
72시간 이내에 검사한 영문으로 된 코로나 음성 확인서였다. 코로나 음성 확인서는 비행기를 타는 데도 반드시 필요한 서류지만 현지에 도착해서도 필요한 중요 서류였다. 미국은 각 주마다 자가격리 기준이 다른데 72시간 이내에 검사한 영문으로 된 코로나 음성 확인서가 있으면 면제되거나 격리기간이 단축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행히 우리의 행선지인 메릴랜드는 자가격리 면제였다.
몇 군데 병원을 검색해보니 검사비와 시간이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우리는 그중 우리에게 제일 맞는 병원을 찾아 검사를 했다.
처음으로 해보는 코로나 검사였다. 콧속으로 워낙 깊이 들어갔다 나온 면봉 때문에 한참 동안 콧속이 얼얼했다. 출국 전 날 병원에 다시 가서 영문 음성 확인서를 받는 데 성공했다.
이제 준비는 끝났고 나는 코로나가 바꿔 놓은 세상을 향해 날아오를 것이고 미국에서의 결혼식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