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남자 친구에게 청혼을 받았다.
남자친구는 재미교포 2세대인데 부모들이 모두 미국 메릴랜드에서 살고 있었다.
텔레비전 연속극 속의 연인들을 보면 결혼까지 가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다. 주인공 남녀 사이의 오해나 갈등이 먼저 펼쳐지고 그 과정을 넘어서고 나면 집안과 집안의 문제, 혹은 경제력이나 환경 차이, ‘내가 네 애비다’ 같은 출생의 비밀 그런 것들이 암초처럼 박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시청자들은 엇갈리는 그들의 사랑을 때로는 안타까워하고 때로는 응원하며 지켜보다가, 넘어지고 좌절하고 그러다 다시 일어나 마침내 사랑을 이루는 것을 보며 같이 기뻐한다. 그런저런 난관들을 모두 극복한 연인들은 마침내 평생을 같이 하기 위한 약속으로 결혼식장에 선다.
이야기들은 이렇듯 대개 정해진 패턴이 있어 더러 식상할 때도 있다. 실력 있는 작가들은 다른 각도로 비틀어 시청자들의 눈을 붙들어 주곤 하지만 어쨌든 사랑의 암초는 써먹을만한 소재는 다 써먹은 건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2020년, 상상하지 못했던 새롭고 강한 난관이 나타났다.
코로나 19!
코로나는 정이 오가는 자리에 침투하는 잔인한 바이러스였다. 우리가 그동안 알던 격언과는 반대로, 뭉치면 위험하고 흩어져야 안전하고 명절에 부모를 찾아보지 않는 게 효도가 되었다. 많은 모임들이 취소되고 사람들은 만나기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혼식이란 건 가까운 사람들에게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을 받고 그들의 새 출발을 알리고 싶은 자리가 아닌가.
처음 코로나 사태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잠시만 피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조만간 상황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축복을 받고 싶은 많은 부부들이 결혼을 미루었다. 3월이 6월이 되고 6월이 9월이 되고....... 결혼식이 밀리니 혼인신고부터 하는 부부도 있었고 동거생활부터 먼저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그러지는 결혼 일정 때문에 갈등이 생겨 헤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축복받아야 할 새 출발이 코로나에 밀려 삐거덕 댄 2020년의 신혼부부들과 가족들. 그런저런 사연들을 볼 때 참 딱하게 되었다고 동정을 했다. 우리가 그 딱한 사람들 속에 속하게 될 줄은 모르고 말이다.
어차피 할 결혼, 코로나와 상관없이 밀고 나가기로 했다.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로 결혼식을 미루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건 앞선 시행착오들을 통해 충분히 학습했다.
결혼식 날짜는 우리가 아니라 식장이 선택했다. 다행히 양쪽 집 모두 성당 결혼식을 원했는데 인기 있는 성당은 한 해 전이나 정해진 날 추첨을 통해 원하는 날짜를 예약하게 되어있었다. 두 사람의 사주를 맞춰 좋은 날을 택일받는 경우도 많지만 우린 결혼 당사자가 편한 날이 가장 좋은 날이라 생각했기에 그런 절차는 생략했다. 딸과 예비사위는 여건이 맞는 성당을 골라 아무도 예약하지 않아 비어있는 날을 찾아냈고 그날이 결혼식 날이 되었다.
하객 수 예약도 우리가 아니라 코로나의 허락이 더 중요했지만 워낙 변덕스러워 완전히 맡길 수도 없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사람들은 가급적 경조사에 참석을 피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하객 수를 적게 잡았다가 당일 날 코로나 상황이 좋아져 하객이 많아지면 식사도 못하고 돌아가는 하객들이 생길 거고 그렇다고 넉넉하게 잡아두자니 많은 음식을 버리게 될 거 같고......
코로나 사태가 터진 후 1단계부터 2.5단계까지 거친 그동안의 결혼식 선례들을 살펴보니 난감한 경우들이 많았다.
결혼식 당일에 2.5단계로 격상되는 바람에 본의 아닌 얌체 짓을 했다고 하소연하는 신혼부부도 있었다. 한 공간에 50명만 동시 입장이 허락되는데 그 수는 가족과 필수인원만으로 다 찰 인원이었다. 그 바람에 찾아온 하객을 부조금만 받고 밥 한 끼 먹이지 못하고 그대로 돌려보냈다고 했다. 다른 곳에서라도 식사하라고 식대를 넣은 봉투를 준 곳도 있었다. 5~ 10만 원 내외의 돈 봉투와 3만 원 내외의 돈 봉투와 바꾼 셈이니 생각해보면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나마 밥 한 끼 대접도 못하고 돌려보낸 경우보단 나은 건가 싶기도 했다. 근래에는 식사를 못하고 가는 하객들에게 답례품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 어린 시절, 누군가의 결혼식을 다녀온 부모님 손에 대개는 색깔 고운 찹쌀떡이나 수건들이 들려 있었는데, 코로나가 세월을 과거로 돌려보내고 있는 건가.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차적인 문제였고 가장 큰 문제는 우린 아직 상견례도 하지 못했다는 거였다. 미국에 사는 예비사돈들은 결혼식을 맞춰 한국에 올 예정이었다. 딸아이는 일 년 전 잠시 한국에 나왔던 예비 사돈과 인사를 나누었던 터라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결혼은 혼인 당사자만이 아니라 두 집안 간에도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는 자리였다. 일반적인 경우는 먼저 상대 부모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합의하에 결혼식 날을 잡아야 했다.
그런데 결혼식 날은 잡혔지만 예비사돈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한국에 오면 기본적으로 14일간의 자가 격리 기간을 거쳐야 하니 자칫하면 우리는 예비사위 부모를 결혼식장에서 만나 첫인사 나누게 될지도 모르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누구인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고 한강의 기적도 이룬 정보통신의 강국 대한민국 국민들이 아닌가.
우리는 상견례를 했다. 각자 자기 집 안방에 앉아 인사를 나눈 화상 상견례였다.
이미 재택근무로 화상에서의 만남이 익숙해졌고 줌을 통한 회의, 온라인 학교 수업, 화상 회식까지 본 적은 있었다. 코로나가 바꿔가는 일상들이 참으로 놀랍지만 결혼 상견례까지 화상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시차와 서로의 일정을 고려해 미국은 새벽 6시, 우리는 저녁 8시로 약속 시간을 정했다. 딸과 예비사위가 와서 세팅을 했다. 그들은 방에서, 우린 거실에서 각각의 노트북 앞에 앉았다. 화상 상견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 기계를 통한 대화여서 소통에 자칫 오해가 생기지나 않을까? 식당에서 만나면 대화가 막히면 음식이나 다른 것에 화제를 돌릴 수도 있는데 이건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이야기해야 하니 얼마나 어색할까?
시작하기 전까지 별별 걱정이 다 되었다.
마침내 화면이 열렸다. 화상이고 각자의 집이지만 모두 정장을 차려입고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화면은 세 개로 분할되어 예비사돈 내외와 예비사위 동생, 우리 내외와 아들 내외, 딸과 예비사위가 한 장면씩 차지했다. 하지만 화면은 사람 두 명을 잡기도 빠듯해서 예비사위 동생과 아들 내외는 거의 화면 밖으로 잘려 보이지 않았다.
예비사돈은 이 첫 만남에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역력했다. 두 사람 뒤쪽에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는데 두 집안의 만남을 축하한다, 반갑다는 등의 구호와 글씨와 그림을 배경으로 만들어 두고 있었다.
이야기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잘 진행되었다. 혼수, 예단 같은 것들은 모두 생략하기로 한 결혼이라 갈등의 여지도 없었다. 나이들도 들만큼 들었고 사회생활 시작한 지도 제법 된 성인들이니 결혼 당사자들에게 전적으로 맡기자는 데에는 양쪽 집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중간중간 손녀가 침범하여 이야기 흐름을 끊기도 했지만 손녀의 재롱이 자칫 어색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 역할이 되기도 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렸을까. 미국이라는 거리감은 전혀 느끼지 못했고 익숙한 내 집에 앉아 나누는 대화이니 오히려 마음 편하기도 했다. 코로나 19라는 공동의 적을 앞에 둔 우리는 동지애를 가지고 서로의 건강을 챙기는 덕담으로 화상 상견례를 마쳤다.
코로나 단계가 내려가기만 기다렸다. 하지만 2021년이 되어도 확진자 수는 늘기만 했고 숙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2.5단계에 결혼식을 치르게 되었다.
사돈내외도 미국에서 왔다. 하지만 오는 즉시 14일 자가격리부터 해야했다.
제한 인원이 한 때 49명까지 축소되어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99명까지 허용되었다.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양가 혼주들과 도와주는 분들을 빼고 양쪽 집이 반 나누면 실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 식사도 대접하지 못하고 돌려보내게 될 거 같아 고민되었다. 차라리 미리 결례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지방에 있는 분들에게는 전화를 해서 일부러 먼길 오시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받아도 섭섭하고 안 받아도 섭섭하다는 게 결혼식 청첩장이 아닌가. 그런데 청첩장은 보내 놓고 오지 말아 달라고 했으니 내심 괘씸타 여겼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받아야 할 결혼식에 오히려 오지 말아 달라고 해야만 하는 우리들 마음은 더 안타깝고 힘들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 날이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왔지만 코로나가 터진 지 일 년이 되어 사람들은 이미 코로나 사태 중 결혼식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었다. 식사인원 제한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서 대부분 준비한 작은 선물을 받고 그대로 돌아갔다. 나중에 보니 식당이 텅 비어 오히려 99명의 식사 인원도 다 채우지 못했다.
다행이었다. 사람이 남는 거 보단 밥이 남는 게 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