맙소사!

by 숨터

(딸이 어렸을 때 만든 인형. 지금은 손녀의 애착인형이 되었다.)



코로나가 4단계까지 격상되면서 나는 딸과 사위를 만나지 못했다. 미국으로의 여행과 피로연 준비라는 중요한 일들을 눈앞에 두고 의논할 일들도 많았지만 우리가 얼굴을 대면한 것은 인천공항에서였다. 어떻게 무얼 제대로 준비한 건지 염려도 되고, 미리 해줘야 할 말들도 많을 거 같은데 공항에서 만나도 이런저런 일로 좌충우돌만 하다가 끝내 진지한 대화는 나누지 못하고 비행기를 탔다. 어련히 잘 알아서 준비했으려고. 딸아이를 믿기는 하지만 리셉션 때 딸아이가 입을 드레스를 확인 못한 것은 마음에 걸렸다.


미국의 문화를 미리 알고 가려고 유튜브를 몇 개 본 적 있었다. 그때 미국의 결혼 피로연은 신랑 신부의 댄스로 시작된다는 걸 알았다. 신랑 신부의 댄스가 끝나면 다음에는 신랑 신부와 양가 부모가 교대로 춤을 추게 되어있었다

헉, 춤이라니!

로봇처럼 뻣뻣하고 삐거덕대는 내가 사위와 춤을 춘다고?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통나무 같은 남편은 또 어떻게 딸과 춤을 춘담. 상상만으로도 진땀이 났다.

속성으로 남편과 함께 댄스 교습이라도 받아야 하나를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해야 할 일은 또 있었다. 그날 입을 드레스였다.

결혼 리셉션에는 여자는 모두 드레스 차림이고 남자는 정장이었다. 남편은 딸의 한국 결혼식에 입었던 양복이 있으니 동대문 시장에 가서 와이셔츠만 새로 맞췄다. 남편은 쉽게 해결됐지만 내게 맞는 드레스를 찾아낼 수 있을지가 자신이 없었다. 허리 잘록한 원피스 입기를 좋아한 때도 있지만 이제는 감춰야 할 게 많아진 몸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아니라 신부였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신부가 아닌가. 면사포만 안 쓸 뿐 웨딩드레스에 준하는, 과하지는 않고 신부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그러면서 일회 용이 아니라 평소에도 입을 수 있는 그런 드레스가 어디에 있을까?


백화점에 같이 나가보자고 했지만 딸은 너무도 바빠 쇼핑하러 나갈 시간이 없었다. 한동안 자리를 비울 직장에 업무 차질 없게 해두어야 했고 미국 시댁으로의 첫 방문이니 그 준비도 해야 했다. 딸은 쇼핑의 시간을 끝내 내지 못하고 결국 인터넷 쇼핑을 통해 세 벌을 다. 입어보지도 못하고 산 옷이라 그중 가장 어울리는 걸 내가 골라주길 바랐지만 우린 마지막 날까지 만나지 못했다.

일이 바빠서 차일피일 미루던 중 코로나는 더욱 심해져 4단계까지 올라갔고 직계가족 포함 4인 이상 집합 금지라는 새로운 방역 수칙이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딸과 사위 직장에서는 코로나 수칙을 엄격하게 지켰고 두 사람도 직장에 피해를 주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내가 딸아이의 드레스를 본 건 미국으로 와서 피로연 당일이 되어서였다. 이미 내 의견을 반영할 시간은 지났고 가져온 드레스는 사위가 골랐다는 하얀 원피스였다.

차 안에서 꺼내 온 옷에는 상표 태그까지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태그는 지퍼고리에 매달려 있었는데 손으로는 떼어지지가 않았다. 질겨서 이빨로도 뜯기지 않았다. 나는 말했다.

"가위나 칼을 찾아봐. 내 힘으론 안 되겠다. 여간 질기지 않네."

그 단순한 말 한마디가 큰 낭패의 시작이 될 줄 어찌 알았을까. 딸아이가 드레스를 들고 돌아설 때 어떻게든 내가 떼겠다고 붙들었어야만 했다. 의당 가위를 찾아 태그를 때려니 무심히 보낸 것을 나중에 후회하게 될 줄 알았다면 말이다.

딸을 보내고 나는 혼주가 될 준비를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을 만한 곳이 없어 화장실에서 남편의 양복을 챙겨 입히고 나도 준비해온 드레스를 입었다. 우리들 치장이 끝나니 한 번도 보지 못한 딸아이의 드레스 매무새가 궁금했다. 갈아입은 옷들을 차에 넣는데 딸과 사위가 허둥지둥 달려오고 있었다. 사위는 예복을 입고 있는데 딸아이는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당연히 그때쯤에는 예쁜 신부로의 준비가 끝났어야 할 딸아이의 드레스는 사위가 끌어안고 두 사람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큰일 났어! 엄마. 지퍼고리가 빠져버렸어. 어떡하면 좋아."

태그가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가위를 구하기 여의치 않자 사위가 힘을 다해 당겼고 태그는 옷에서 떨어졌다. 태그가 달려있던 지퍼고리까지 데리고!


당황한 사위가 어떻게든 지퍼를 끼워보려 애를 쓰다 안 돼서 내게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었다. 딸이 자초지종을 말하는 동안 사위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고 뭉툭한 손가락으로 조그만 지퍼고리를 잡고 용을 쓰고 있었다.

사위는 덩치에 비해 섬세하고 손재주가 좋은 편이다. 무엇이든 뚝딱뚝딱 잘 만들고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

나도 무엇이든 내 손으로 만들기를 좋아한다. 한때 바느질을 취미로 삼은 적도 있었다. 집안의 이불이나, 소품들을 만들었고 아이들의 옷도 만들어 입혔다. 지금은 치마를 좋아하는 손녀에게 원피스를 만들어 주고 있다. 그러니 옷에 관해선 내가 나을 것이다. 또한 지퍼 고리가 빠져 애를 먹었던 경험도 있어 원리도 안다.

"지퍼는 빠진 곳으로 끼울 수 없어. 밑에서 꽂는 거야. 이리 줘 봐."

사위는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기고 조수석에 앉은 내가 원피스와 지퍼고리를 받았다. 드레스 엉덩이 부분에 있는 지퍼 끝은 예상대로 고리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단단히 꿰매어 있었다. 그것부터 풀고 지퍼고리를 끼우고 다시 꿰매야 했다.

그러려면 실과 가위가 필요했다.

실과 가위를 구하러 딸은 리셉션 준비로 한창 바쁜 안사돈에게 전후 사정을 말했고 안사돈은 연회장에 진작부터 와있던 시할머니에게 부탁했다.

시할머니는 성당 바로 옆 노인들 전용 아파트에 살고 계셨다. 시할머니가 황급히 연회장을 나가 아파트로 향했지만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연회장 안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사람들 소리는 우리들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연회 시작 시간 10분 전이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차 안에 있는 갖은 도구와 손톱, 이빨을 이용해 지퍼 밑을 봉한 실을 끊으려 애썼고 마침내 성공했다.

안에서 신랑 신부를 찾는 사회자의 소리가 들렸다.

"어떡해! 우릴 불러"

딸이 발을 굴렸다. 주인공 없는 잔치를 만들지 않으려니 나도 온몸에서 진땀이 났다. 몇 차례 실패 끝에 마침내 지퍼의 한쪽이 들어갔다. 온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했다. 8월 한 더위에 이게 무슨 고역인가.

방법을 알았으니 자기가 끼워보겠다는 사위에게 넘기고 얼굴의 땀을 닦았다. 사위가 나머지 한쪽까지 끼웠다. 그러는 사이 시할머니에게서 연락을 받고 바느질 세트를 받아온 딸이 끼워진 지퍼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 역시 솜씨 좋은 사람들 둘이 같이 하니 되네!"

이제 지퍼를 올리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올리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이게 아닌데?

지퍼는 끼우기가 힘들지 한번 끼워지면 한달음으로 올라가는 건데? 이상하다 싶으면 멈춰야 했다. 하지만 쫓기는 심정이던 나는 그런 판단력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낑낑대며 사위와 내가 번갈아 지퍼를 채우는데 딸이 소리쳤다.

"지퍼 앞뒤가 바뀌었잖아!"

맙소사. 급한 마음에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끼우는 데만 집중했던 것이다! 이미 시간은 6시를 넘긴 지 한참이었다. 하지만 입은 옷 그대로 오늘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날을 위해 비행기도 타고 많은 일과 시간들을 희생하고 찾아왔는데. 웬만해선 침착성을 잃지 않는 딸도 이 사태 앞에선 당황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는 딸의 눈앞에서

나는 그때까지 힘들게 끼운 지퍼를 빼버렸다. 그리고 고리를 뒤집어 새로 끼웠다. 끼우기는 힘들었지만 예상대로 이번에는 수월하게 올라갔다.

" 와아~"

딸이 환호성을 질렀다. 마침내 드레스를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젠 지퍼 끝을 꿰매 마무리만 하면 된다.

"다행이야. 식사부터 먼저 시작했어. 당분간은 우릴 안 찾을 거야."

연회장 상황을 엿보고 온 딸이 말했다.

여기에서 어떤 다급한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는 사돈 내외가 시간을 벌어준 거 같았다. 지퍼는 잘 잠겼다. 마침내 고비를 넘긴 건가?



불행하게도 아니었다.

급한 마음에 지퍼고리를 무조건 끼우기만 했더니 양쪽 길이가 맞지 않는 것이다.

지퍼를 잠그다 보니 옷이 일그러져 갔다. 딸은 이젠 정말 더 지체할 수가 없다며 어쨌든 옷이 잠기니 그런 상태로라도 입겠다고 지퍼가 터지지 않게 밑을 꿰매 달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이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신부의 드레스였다. 나는 그런 일그러진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힘으로라도 지퍼의 길이를 맞춰보려고 당겼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차라리 지퍼 끼우는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훨씬 시간을 절약했을 거 같지만 마음이 급하니 그런 이성적 판단은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서는 안 된다는 속담이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내 조급증은 그예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나는 사위에게 말했다.

"힘 좋은 자네가 당겨서 맞춰봐."

사위는 내가 시키는 대로 지퍼의 길이를 맞추기 위해 당겼다. 사위의 힘은 역시 셌다. 그러나 지퍼는 내가 원한 것처럼 길이를 맞춰주지 않았다. 대신 아예 터져 버리는 쪽을 택했다. 지퍼 이가 망가져 다시는 맞물릴 수가 없게 된 걸보는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시간이라

도 멈춘 듯했다.

이젠 수정 자체가 불가능하고 그 드레스는 아예 입을 수도 없게 되었음을 모두 알게 된 것이다.

사위와 딸은 얼굴색이 하얗게 질려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결국 딸은 입고 있던 옷 그대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게 된 걸까?

순간 내 머리는 빛의 속도만큼 빨리 돌았다.

" 옷 입어"

나는 말했다.

"입은 채로 꿰매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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