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회장 안은 mc의 분위기 띄우는 멘트와 디제잉의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흥겨웠다. 사람들의 식사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뒤늦게 들어온 내가 자리를 잡은 후 리셉션 식순이 시작되었다.
먼저 하객들 앞에 서서 사돈 내외와 우리 내외가 인사를 했다. 연회장 원탁 테이블을 채운 하객들이 박수로 우리를 맞이했다.
한국에서 결혼식은 했으므로 식은 생략하고 미국에서는 리셉션만 가지는 거라고 사돈이 상황을 설명했다. 벽에 걸린 대형 모니터에서는 한국에서의 결혼식 장면이 방영되고 있었다. 서울 역삼성당에서의 결혼이었다. 코로나 2.5단계의 결혼이었기에 성전이나 식당 모두 99명의 하객만 입장 시킬 수 있어서 신랑측 신부측 나누면 각각 50명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도와주러온 찬구들이나 일가 친척들을 빼면 사실상 지인들은 식사를 대접하기도 힘든 인원 수라 많은 고심을 했다. 그래서 식사를 하지 못하고 가실 분들을 위해 선물들을 준비하고 지방의 친척들에게는 먼길을 일부러 오실 필요는 없다고 연락했다. 섭섭해하실 수도 았어 많이 미안했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일년이 지난 뒤라 대부분은 이런 상황을 다행하게도이해해주었다. 그 바람에 일부러 찾아와 축하를 해주고는 대부분 식사를하지 않고 돌아가 부족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99명의 식사 자리조차 오히려 남았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에서 치르는 결혼식 리셉션날이었다.
나는 아직도 정신이 먹먹했다. 하객들의 축하 말들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드레스 지퍼가 회생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아득했든가. 신부 드레스를 입지 않은 신부라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결혼 리셉션이었다. 그 순간 나는 최후의 방법을 선택했고 입은 채로 꿰매 지기 위해 딸은 서둘러 드레스를 입고 내 앞에 섰다. 그때서야 나는 처음으로 리셉션 드레스를 보았다. 리셉션 후에도 입을 수있는 원피스 스타일이었다. 영화에서보는 것 처럼 어깨를 드러내거나 치렁치렁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갈하고 예뻤다. 사치스럽지 않던 딸의 성품이 드러난 옷이었고 또한 내가 바라던 스타일이었다. 나가서 쇼핑할 시간이 없어 인터넷 쇼핑으로 샀다기에 은근히 걱정 했는데 잘 어울렸다. 하지만 옷을 감상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이미 연회는 시작되었다.
남편은 먼저 들어가 신부 측 자리를 채웠고 하객들은 식사부터 하고 있었지만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상하다 여길 것이다. 정작 그날의 주인공들은 물론 신부 엄마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니. 먼저 들어간 남편과 사돈 내외도 어떻게 되어가는지 몰라 손님 접대를 하면서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옷을 입힌 채 꿔매려면 차에서는 할 수없었다.
드레스를 입은 딸과 실 바늘을 챙겨 든 나는 사람들 눈에 뜨이지 않는 구석진 계단으로 갔다.
딸은 한 계단 위에 서있고 나는 그 뒤 한칸 아래에서 지퍼 부분을 꿰매기 시작했다.
딸이 어렸을 때 인형을 만들어 주길 즐긴 적 있었다. 천에 동물이나 사람모양의 본을 뜨고 잘라 박는데 뒤쪽이나 안 보이는 곳에 트임은 남겼다. 솜을 넣을 구멍이었다. 뛔맨 천을 뒤집어 트임구멍에 솜을 넣고 손으로 잘 꿰매면 인형은 완성되었다.
이때 트임구멍을 엉성하게 꿰매면 솜이 삐져나오고 모양이 흉해지므로 나는 재봉틀로 박은 것처럼 꼼꼼하고 매끄럽게 꿰매려 애를 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정성을 다해 만들어 준 인형에 별 흥미를보이지 않았다. 내가 인형을 만들 만큼 바느질이 능숙했을 때 딸은 이미 인형이 필요한 나이가 지난 뒤였기 때문이었다. 그 인형들은 오랫동안 창고에서 잠을 잤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난 지금 그때 만들었던 많은 인형들은 지금은 손녀의 애착인형들이 되었다.
하지만 젊은 시절 가졌던 내 바느질 취미는 어쩌면 이 날을 위해 준비되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인형 대신 딸아이의 뒤트임을 꿰매고 있는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고 긴장하고 있었다. 창문이 없어 바람도 통하지 않았다. 차려 입은 내 드레스 등줄기에 진땀이 흘러내렸다.아득하게 들리는 연회장의 음악소리가 바늘을 든 나를 압박해 왔다.
빨리. 그러나 꿰맨 티가 나지 않게 깔끔하게. 내 손은 잰 편이지만 딸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바느질 시간은 길고도 길었다. 견뎌내고 있는 딸의 초조함이 바늘 끝에 느껴졌다.
참고 참던 딸이 결국 재촉했다.
"대충 해 줘. 옷을 입을 수만 있으면 돼. 제발 빨리만 좀 해줘요.
딸의 심정은 알지만 급해도 듬성듬성 꿰맬 수는 없었다. 그러다 이음새가 터져버리면 정말 돌이 킬 수 없었다.
마침내 마지막 실밥을 끊어내는 것으로 바느질은 끝이 났다. 겉으로 보기는 표가 나지 않게 매끄럽게 된 거 같았다. 내게서 풀려난 딸은 용수철 튀듯 계단을 내려갔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사위가 총알처럼 달려와 딸아이의 손을 잡았다. 잰걸음으로 연회장을 향하는 딸아이 등 뒤에 대고 나는 소리쳤다.
"허리 굽히거나 하지 마. 등에 실밥 터져!"
이 무슨 코미디같은 상황이람
봉제인형으로 만든 딸이라도 된것 처럼 나는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바느질 세트를 차 안에 넣어 두고 뒤따라 연회장으로 갔다. 진땀을 깨나 쏟았으니 일껀 꾸민 머리 모양이 다 망가졌을 거 같았지만 그 생각은 연회장 안을 들어가 자리에 앉은 후에야 떠올랐다.
하지만 새삼 내 모습을 챙기러 나오기엔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연회장에서 하객들의 식사는 대 충 다 끝나 있었다.
나는 내 옷매무새만 정돈하고 남편에게 머리가 흐트러진 않았는지 물었다.
"괜찮아"
지나치게 소탈하여 그다지 믿음을 주던 남편의 눈썰미는 아니었지만 그때는 위로가 되었다. 엉망이 됐다고 해도 달리 방법도 없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