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피로연 준비

by 숨터



비행기 도착 시간은 한 밤중이었는데 공항에는 뜻밖에 사돈 내외가 각각 차를 따로 몰고 마중 나와 있었다. 우리가 예정된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아 많이 당황했다고 했다. 환승 비행기를 놓치고 다음 비행기를 우리를 기약없이 기다리느라 얼마나 초조했을까. 먼길 일부러 나와준 배려가 고맙고 비행기 놓친 사실을 알리지 못해 마냥 기다리게 한 것이 미안했다.

사돈 내외는 몰고 온 두대의 차로 우리를 버지니아 조카 집에 데려다주고 밤 한시가 넘어 먼길을 되돌아갔다. 딸과 사위는 다음 날 사돈이 남기고 간 한대의 차로 사돈댁이 있는 메릴랜드로 가고 남편과 나는 조카의 집에 머물렀다.

잠시 한국으로 나가 비어있던 조카의 집은 모든 살림살이가 그대로 있어서 내 집에 들어온 듯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멀지 않은 곳에는 커다란 규모의 한인 슈퍼도 있었다. 한국에서 보던 대형 마트의 물건들이 모두 다 있었고 대개는 한국보다 더 저렴하고 더 풍성했다.

고춧가루, 고추장, 된장, 멸치. 한국에서만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던 한국 음식 재료들이 한국 상표 그대로 진열대에 놓인 것이 한국의 어느 마트를 보는 듯했다. 쌀은 한국 것 만이 아니라 전 세계 것이 다 있었다. 근데 바다 건너왔을 경기미가 한국보다 훨씬 싼 건 무슨 조화 속일까?


2021년도의 미국에는 영화 '미나리' 같은 풍경은 없었다. 남편이 직장일로 미국에 홀로 산 적 있었던 1989년도와도 달랐다.

1989년, 남편이 체류하던 그때는 일반 미국인들은 코리아라는 이름을 대부분 몰랐다. 그나마 아는 사람은 6.25를 겪은 가난한 후진국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였다.

이제 세계는 대한민국을 공식적으로 선진국이라고 발표했다. 2021년도에 다시 방문한 미국에서 나는 주류사회로 입성하여 당당하게 우리의 문화를 내세우며 살고 있는 한인들을 만나고 선진국이 된 한국의 위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피로연 날이 됐다, 남편과 메릴랜드로 간 나는 안사돈이 미리 예약해둔 미장원으로 갔다. 한글로 쓰인 간판이 즐비한 건물 이층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미장원이었다. 그곳에서 딸과 나, 안사돈이 함께 머리를 손질했다. 미용사나 내부 풍경, 한국말 수다 등,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라 내가 미국에 온 게 맞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결혼 피로연 장소는 한인 성당 강당이었다. 300명 정도 수용 가능하다는 넓은 공간에 음향시설은 물론 싸이키 조명시설까지 갖추고 있는 훌륭한 연회장이었다. 대여비도 저렴한 편이었다. 한국에선 성당에서 그런 장소를 빌려주는 경우를 들어본 적 없어 신기하면서 신선했다. 교민들도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이런 행사 장소가 있어 기꺼워한다지만 새어 나오는 소음 때문에 기도시간을 방해받게 되어 반대하는 신자들도 있다고 했다.


테이블 세팅, 의자 장식 리본. 테이블 네임카드 등. 연회장 치장을 거의 다 안사돈이 직접 꾸몄다고 우리보다 이틀 먼저 사돈 댁으로 가서 일을 거들었던 딸이 전했다. 음식은 전문 출장뷔페에 맡겼고 꽃장식은 지인의 며느리 작품이라고 했다.

뷔페의 음식들은 풍성하고 먹음직스러웠는데 미국이 아니라 여느 한국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보던 익숙한 잔치 음식들이었다.

손님들이 하나 둘 들어오자 바깥사돈은 사위 친구들과 함께, 오는 축하객들을 사진 촬영하여 즉석에서 인화해 준비해둔 액자에 넣어주는 서비스도 해주고 있었다. 종종 대며 안사돈을 도와 연회장 마무리 작업을 하던 딸과 사위는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자 그날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자리를 떴다.

딸은 어떤 드레스를 준비했을까?

아직 딸이 준비한 결혼 리셉션 드레스를 한 번도 보지 못한 나는 신부의 아름다은 순백의 드레스를 기대하며 탈의실에 들어간 딸을 기다렸다. 비자 사건, 비행기 환승 사건에 이은 또 하나의 황당하고 어이없는 시트콤을 또 다시 찍게 될 줄 그때까지는 모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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