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랜드의 블루 크랩

by 숨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오찬 겸 단독회담에서 해산물을 좋아하는 문재인 한국 대통령의 식성을 고려해 '메릴랜드 크랩 케이크'를 대접했다. 메릴랜드 크랩 케이크는 동부의 대서양의 체서피크 만에서 주로 나는 꽃게살을 이용하는 어묵과 비슷한 음식이다. 게살, 빵가루, 마요네즈, 머스터드, 계란 등을 섞어 볶거나 굽거나 튀겨 요리한다.......



이것은 2021년 5월21일자 우리나라 신문기사이다.

미국 와서야 알았지만 한국 대통령과 미 대통령과의 만찬에 등장할 만큼 메릴랜드 크랩은 유명했다. 우리가 낚시했던 체서피크 만에는 일반 낚시만이 아니라 크랩을 잡으러 오는 관광객들도 많다고 한다.

체서피크 만 주변에는 커다란 해산물 보관 창고들이 있었다. 낚시하고 배에서 내린 후 바깥사돈은 창고들을 몇 군데 찾아갔다가 돌아오며 고개를 내저었다.

"잡은 크랩들이 다 팔리고 없다는데."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어떤 종류의 크랩을 찾는 건지, 왜 그리 크랩을 찾아다니는지 몰랐고 우리에게 맛 보이고 싶어 그러는 건 알겠는데 얼마나 사려고 창고에서 찾나? 갸우뚱했다.

"크랩이 잡히기 바쁘게 나가나 봐요. 7, 8월이 피크인데 그때가 지나면 없거든요. 9월초인 지금은 막바지라 자칫하면 못 먹을 수도 있겠는데요."

"아, 네......"

안타까워하는 안사돈에게 안 먹어도 된다고, 나는 크랩류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말할 뻔했지만 지나친 겸손은 성의를 무시하는 거처럼 느껴질 수 있어 고개만 끄덕거려 주었다.


그런데 메릴랜드의 본격적인 크랩 먹방은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이었다. 여행이 끝난 후 우리는 조카집으로 갔지만 다음 날 크랩을 구했으니 먹으러 오라는 초대에 다시 사돈 집으로 갔다.

부엌의 커다란 찜통에는 구수한 냄새를 내며 사돈이 찾아다녔던 크랩들이 삶겨가고 있었다. 그 옆에는 커다란 박스 안에 살아서 꾸물대는 수많은 크렙들이 아직도 삼분의 이 이상 남겨져 있었다. 중간 크기 정도 되는 우리나라 꽃게 같은 크렙이었다. 등껍질이 사파이어처럼 파랗다고 블루 크랩이라고 불린다지만 우리나라 꽃게와 같은 종류가 아닌가 싶었다.

"이렇게 많이 샀어요?"

놀라는 남편에게 바깥사돈은 뭘 그 정도 가지고 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두 박스를 샀는데 좀 많은 거 같아서 한 박스는 친구들에게 줬어요. 박스로 사도 그렇게 비싸지는 않아요."

이걸 설마 한 번에 다 먹으려는 건 아니겠지?



사돈집 거실에 커다란 교자상이 두 개 붙어져 펼쳐졌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필수로 가지고 있었던 거지만 이제 한국에서도 점점 사라지는 교자상을 사돈은 미국에서 샀다고 했다.

신문지 몇 겹과 비닐 몇 겹이 그 위에 두껍게 깔렸다. 상위에는 숟가락과 조그마한 나무망치만 놓여 있고 접시나 음식을 담을만한 건 전혀 없이 휑하니 비워져 있었다. 바깥사돈이 찜통에서 막 쪄내 김이 무럭무럭 나는 게들을 쟁반에 담아 들고 왔다.

"사돈 앞에 너무 성의 없다 생각할까 봐 쟁반에 담아내지만 원래는 이걸 상위에 그대로 부어서 뜯어먹는 거랍니다. 그래서 비닐을 다 까는 거지요."

바깥사돈이 말했다.

비워진 찜솥에는 살아서 꿈틀대는 상자 속 게들이 다시 들어갔다. 상 위에 펼쳐진 게들만 해도 엄청난데 그보다 더 많은 양들이 앞으로도 계속 보충될 예정이라는 뜻이었다.


교자상 앞에 모두 앉았다. 잘 쪄져서 빨갛게 변한 등딱지 위에는 올드베이 시즈닝이 더께 져 앉아있었다. 올드베이 시즈닝은 미국에서 해산물 요리에 즐겨 쓰는 양념인데 게요리에는 필수라 했다. 게를 찔 때 듬뿍 부어 같이 찌면 특유의 비린내를 완전히 잡아주고 더욱 맛있는 게요리를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고춧가루, 후추, 파프리카 파우더, 샐러리, 소금이 주성분이라 맵고 짜므로 게딱지 위의 것은 털어버리고 먹으라고 했다. 먹으면 맵고 워낙 짜서 혀가 얼얼했지만 맵싸한 향이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게는 배를 보면 암수가 분명히 구분이 되는데 배를 보니 둥그스름한 모양이 전부 암컷이었다. 그런데 바깥사돈은 수게가 다 나가버려서 암게를 살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해서 나는 어리둥절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암게를 더 선호하여 값도 암게가 더 비싼데 여기선 수게가 더 속이 꽉 차 값도 더 비싸다고 했다. 실제로 게 뚜껑을 열어보니 알이 가득 차 통통한 우리나라 암게 같지는 않았다.

블루 크랩은 맥주와 어울린다며 멕주 캔도 상 위에 올렸다. 한국인들의 식사에 절대 빠질 수 없는 김치도 상위에 올려졌다.


전투가 시작됐다. 그랬다. 그건 전투였다. 와그작 , 부지직, 두두둑, 게의 단단한 껍질이 부서지는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지고 쾅쾅쾅~ 망치질 소리에 상이 흔들렸다.

게 껍질은 한국의 꽃게보다 더 단단한 듯 이빨로 잘 부서지지 않았다. 그래서 상위에는 게살을 파먹을 숟가락과 함께 개개인의 작은 나무막대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게의 단단한 집게다리를 부숴 속살을 먹기 위해서였다.

박스 안에 꽉 채워져 있는 게들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도 더 많은 양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계속 나왔다. 나는 다섯 마리를 먹고 나니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는데 사위는 끝없이 먹고 있었다.

게를 좋아한다는 말에 한국에서 내가 꽃게탕을 해준 적 있었다. 사위는 꽃게탕을 아주 맛있게 먹으며 게 살도 참 잘 발라 먹었다. 여기 와서 게를 먹는 걸 보니 그날 꽃게탕 안에 든 몇 토막의 꽃게 조각은 감질났겠다 싶었다. 자신의 고향에서 게를 많이 먹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런 정도 스케일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올드베이 시즈닝 양념한 블루 크랩은 사위에게는 음식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지 모른다.

노련하게 망치질하며 고향 메릴랜드의 향수를 뜯어먹고 있는 사위의 앞에는 게껍질들이 점점 산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사위만이 아니었다. 모두들 열심히 휘두른 망치질에 파편이 옷은 물론 얼굴에도 튀어 있었고 상위에는 바스러진 게껍질들이 너저분 늘어져 있었다. 우아하게 먹을 수 있는 만찬은 절대 아니었지만 격식을 내려놓은 메릴랜드 음식문화가 즐거웠다.

그리고 커다란 상자 속의 그 많던 게들은 상 위에 껍질들만 남겨놓고 어느새 사라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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