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신혼여행

by 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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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가르는 바람이 상쾌했다. 크지 않은 배지만 선실에는 레이더도 있었다. 모니터에는 바다 밑에 움직이는 고기들의 모습을 점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선장과 선원 둘만 있는 전세 낚싯배인데 선장은 레이더만이 아니라 육안과 경험을 이용해 고기떼가 많이 모이는 곳을 찾아 배를 움직이고 있었다.

사돈 내외와 우리 내외, 그리고 딸과 사위와 나선 3박 4일의 여행길이었다. 우리는 모두 사돈의 차를 타고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사돈의 차 현대 페리세이드 대형 SUV는 6명 모두 다 타도 넉넉했다. 사돈 내외는 이 여행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해놓고 있었다. 아이스박스까지 챙겨 온 3박 4일간의 짐은 만만치 않았지만 차 뒤에 트레일러를 매달아 해결했다. 차량이 많고 도로 폭이 좁은 한국에선 시도하기 쉽지 않은 일이라 트레일러 매단 차를 타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운전석에 앉은 바깥사돈이 핸들을 놓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어서 잠시 놀랐는데 알고 보니 자율주행차였다. 뉴스나 광고에서만 보던 자율 주행차를 직접 타고 가는 기분은 꽁무니에 매달린 트레일러만큼 신기했다. 하지만 이 신기함은 그동안 등장했던 많은 것들과 같이 얼마 있지 않아 익숙함으로 바뀔 것이다. 신제품 받아들이는 속도가 워낙 빠른 한국인들이니 한국의 도로에는 곧 자율주행차가 대세가 될 테니.

중간에 휴식을 취한 후에 사위가 교대를 했다. 바깥사돈이나 사위가 워낙 운전을 잘했고 자율주행차이기는 했지만 트레일러를 달고 하는 운전은 쉽지 않아 보였다. 길이는 길어졌지만 별개의 차체라서 코너를 돌거나 후진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난이도가 매우 높았다. 달리는 중에도 덜컹대는 소리가 뒤에서 들리면 내색은 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 졸이곤 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체스피크 만이었다. 북반은 메릴랜드 주에, 남반은 버지니아 주에 속하는데 인디언 어로 '큰 하천의 부근'이라는 뜻이라 했다. 사돈 내외가 미리 예약해둔 숙소에 짐을 풀었다. 부부마다 방을 차지하고도 방이 두 개 더 남을 만큼 큰 곳이었다. 한국 음식재료를 구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생각한 안사돈이 준비해온 식사 재료는 족히 한 달치는 될 거만큼 풍성했다. 김치는 아예 한국 마트에서 박스로 사 왔는데 상당히 맛있었다.

다음 날 낚시를 하러 나왔다.

"당신들 바나나를 가지고 있진 않죠?"

배를 타기 전 선원이 물었다. 뜬금없이 바나나라니? 어리둥절해하는 우리들에게 선원은 다시 확인했다.

"바나나를 가지고 있으면 배를 탈 수없어요. 그게 우리들 규칙이에요."

뱃사람들에게는 많은 징크스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 속에서 인간은 한없이 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그중에 바나나도 포함된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딸은 즉시 구글링을 했는데 실제 배안에서 바나나가 있으면 고기를 거의 잡지 못하거나 운이 나쁘면 배가 난파한다는 속설이 있었다.

구글도 그 이유까지는 정확하게 알려주지 못했다. 바나나를 따라온 벌레 때문에 그렇다고도 하고 운송 중 쉽게 상해서 다른 식료품까지 상하게 해 선원들을 병들게 해서 그렇다는 여러 설들만 적혀있었다.

파선된다거나 고기를 못 잡는다는 말은 낚싯배 종사자에게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없었다. 그래서 생 바나나만이 아니라 말린 바나나, 바나나로 만든 건 모두 다, 심지어 바나나 로고가 붙어도 안 될 만큼 엄격했고 다른 많은 금기들처럼 정확한 유래도 모르고 합리적인 이유는 찾을 수 없지만 선원에게는 꼭 지켜야만 하는 것이 되었다.


세계 어디에서건 뱃사람들에게는 금기가 많다. 바다는 바다를 터전으로 사는 사람들을 어머니처럼 다정하고 따뜻하게 품어주기도 하지만 한순간에 돌변하여 거센 파도와 풍랑으로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그러니 뱃사람들은 바다가 노하게 하지 않으려 애를 쓸 수밖에 없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바다가 무엇 때문에 노하는 건지 알지 못해 더욱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역의 상황에 따라 이런저런 금기가 많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에도 바다에 대한 금기이야기가 있다. 조선 초기 신숙주가 일본에 통신사로 갔다가 일본에서 포로로 잡햐있던 사람들과 돌아오는길에 거센 풍랑을 만났다. 그런데 배에는 임신한 여자가 있었다. 배에는 임산부를 태우지 않는다는 금기가 있었기에 뱃사람들은 바다신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임산부를 물에 던지려고 한다. 하지만 신숙주가 이를 막는다.

"사람을 죽여 삶을 구하는 것은 나로선 차마 못할 짓이다"

자신의 삶과 죽음을 두고 다투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임산부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다행히 얼마 뒤 태풍도 멎고 풍랑도 잠잠해져 가엾은 여인이 제물로 바쳐지지 않고도 배는 무사히 조선으로 올 수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우리나라 큰 포구에는 풍어제가 지금도 지역의 축제처럼 열린다. 이는 많은 고기를 잡게 해 달라는 기원과 거센 풍랑을 일으키지 말고 뱃사람들이 몸성히 돌아오도록 해달라는 축원을 담아 바다에 바치는 제사이다.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진 것도 용왕을 달래 풍랑을 잠재우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만큼 뱃사람들에게 바다란 두려운 존재였다.

그리스 신화는 이러한 바다애 대한 공포로 반은 사람이고 반은 새인 사이렌이라는 마녀를 탄생시켰다.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하여 배를 파선시키고 사람들을 잡아먹는다는 무시무시한 사이렌의 이야기는 그리스의 유명한 고전 오디세이아에도 나온다. 엠블란스나 경찰차 등에서' 앵앵' 울어대며 경고하는 사이렌 소리는 바로 이 마녀의 이름 사이렌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가 바나나 비슷한 것도 소지하지 않았음을 확인한 선원이 배에 준비해준 것은 트롤링낚시였다. 미끼를 달아놓고 배가 달리면 수면 가까이 있는 고기들을 잡는 방식이었다. 갑판에는 낚싯대를 세워두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어 우리가 계속 잡고 있지 않아도 되었다. 선원은 미끼를 끼운 낚싯대를 다섯 개를 세웠다. 사람은 여섯인데? 그래서 우리는 가위바위보를 해서 고기가 잡히면 낚싯대를 당기는 순서를 정했다. 선원에게 고기가 물리면 낚싯대와 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떻게 잡아끌여야 하는지를 배웠다. 처음은 한참 동안 낚싯대가 조용했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배운 대로 낚싯대를 잡아보나 하염없이 찌를 지켜봤다. 그러는 동안 선장은 고기떼들이 있을만한 곳을 찾아 이리저리 배를 이동시켰다 배의 꽁무니에 하얗게 일어나는 포말과 파도를 따라 길게 드리워진 낚싯대의 줄을 쳐다보는 것이 점점 지루해질 무렵 찌가 흔들렸다.

처음은 남편이었고 두 번 째는 사위, 내가 세 번 째였다. 남이 할 땐 잘 몰랐는데 고기가 미끼를 물고 있는 낚싯대는 드는 것 자체도 힘들었다. 릴을 감고 감아도 고기는 얼굴도 보여주지 앉았다. 팔이 아파 감당이 안돼서 사위에게 도움을 청했다.

"큰 놈인 거 같아요. 힘든데요."

릴을 감으며 사위가 말했다. 마침내 고기가 수면에 얼굴을 드러냈다. 기다리고 있던 선원이 줄을 잡아당겨 어망으로 건져냈다. 작을수록 금방 수면에서 얼굴을 보여주는데 큰 놈일수록 힘이 좋아 수면에 얼굴을 드러내는 시간이 늦은 걸 그때야 알게 되었다. 그동안 잡은 것 중에는 제일 큰 고등어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고등어 비슷한 생선이었다. 선원이 말해주는 이름을 구글에서 찾아보니 고등어였을 뿐 내가 알던 고등어와는 조금 달라 삼치와 고등어 중간쯤 돼보였다.

첫 낚시질에 대어를 잡았다고 으스댄 건 잠시, 기록은 그 이후 계속 깨어졌다. 낚싯대는 쉬지 않고 흔들렸고 사돈 내외, 딸, 모두 지치도록 고기를 잡아 올렸다.

대부분 고등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다랑어도 마구 올라왔다. 헤밍웨이가 지은 바다와 노인에서 노인이 잡은 것보다야 한참 작겠지만 두 손으로 들기도 벅찰 만큼 큼 큰 다랑어들이었다. 그리고 볼락도 잡혔다. 또 다른 고기도 있었지만 선원이 말해주는 고기 이름을 한국어로는 찾을 수가 없어서 끝내 이름을 알지 못했다. 크기가 작아서 바다로 되돌려 보낸 것도 세 마리나 되었다. 바나나가 없었던 덕인지 대 수확이었다.


사위가 미국에 온 직 후 이곳에서 낚시를 한 적 있었다. 친구 여섯 명과 고등어 여덟 마리나 잡았다고 자랑을 했었는데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선원의 말로도 다랑어가 이렇게 많이 잡힌 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라고 했다.

사위 빼곤 다들 생초보라서 생각보다 힘이 들어 예약한 두 시간 반을 채우기도 힘에 벅찼다. 선원은 잡은 고등어를 익숙한 솜씨로 회를 쳐주었다. 살과 뼈를 발라내고 살을 저미는 솜씨가 아주 능숙했다. 미국인들이 회를 먹을 리 없고 한국인들이 그만큼 많이 왔다는 이야기겠지. 메릴랜드는 한국인이 많은 주이니까.

고등어는 성질이 급해 잡히자마자 죽어버려 회로 먹기 쉬운 생선이 아니다. 나는 회를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제주도에서 고등어 회를 처음 맛보았을 때는 그 고소한 맛에 반했다. 요즘은 양식 기술이 발달해 서울에서도 고등어 회를 맛볼 수 있는데 제주도에서만큼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야말로 막 잡아서 먹는 미국 고등어 회 맛은 어떨까? 신선도로 치면 최고인데 싶어 잔뜩 기대했다. 하지만 제주도나 서울에서 만큼의 맛은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초장을 준비해 가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제주도 고등어만큼 고소한 맛은 분명 없었다.

잡은 고기들은 모두 미리 준비해 간 아이스박스에 담아서 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메뉴는 내가 음식 솜씨를 발휘한 김치 고등어찌개였다. 내 솜씨 덕인지 한국 마트에서 산 미국 김치 덕인지 싱싱한 고등어 덕인지 식구들은 모두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며 배불리 먹었다.

완전 미국식 입맛을 가진 이민 2세대 사위까지 조금 먹었다.




고등어찌개를 안주삼아 맥주잔도 부딪혔다. 나는 사돈 내외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이런 멋진 경험을 하게 해 줘서."

안사돈이 말했다.

"고마워요. 제 버킷리스트를 실현시켜줘서."

안사돈은 사돈들과 여행하는 게 버킷리스트라고 말한 적 있었다.

나는 딸과 사위에게도 말했다.

"고마워, 너희들 신혼여행에 우리들을 끼워 줘서."

딸과 사위가 하하하, 밝게 웃었다.

한국과 미국, 결혼을 두 번이나 했지만 두 사람은 아직도 신혼여행을 가지 못했다.

코로나 상황이라 여행이 어렵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한국에서는 결혼식을 치른 직후 바로 자가격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질병본부의 방침하고는 관계없이 사위의 직장에서 요구했었다. 결혼식 때 사람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었다. 14일 후 직장으로 복귀한 딸은 결혼식이나 자가격리 등으로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많이 바빴다. 그리고 미국으로 오게 되면서 여행 준비와 한동안 자리를 비워도 업무를 차질 없도록 해놓느라 또 정신없이 바빠야 했다.

그러니 두 사람이 결혼 후 처음으로 하는 이 여행이 곧 신혼여행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양가 부모들하고 같이 하는 신혼여행이라니.

화상이라는 비대면 상견례부터 시작해서, 자가격리 후에야 결혼식에 참석할 수있었던 사돈 내외, 결혼식을 치르자 즉시 자가격리한 신혼부부, 예전 같으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받으려 했을 텐데 인원 제한 때문에 결혼식장에 가급적 오지 말아 달라고 일부러 지인들에게 전화했던 결혼식.

코로나 시대에 결혼한 신혼부부들만이 겪고 있는 새로운 풍속도가 조금은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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