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구른다고 피해지지 않아>

-유다희 양이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들.

by 포니아빠

소울라이크, 일본의 중견 개발사인 프롬소프트웨어의 ‘다크소울’ 시리즈를 필두로 한 액션 게임 장르를 통칭하는 말이다. 높은 보스전 난이도, 유저들이 패드를 집어던지게 할 방법을 연구하는 듯한 개발자들의 악의가 느껴지는 게임들. 엘든링의 출시로 인해 컬트적 인기를 넘어, 범대중적인 인기로 확장된 바 있다. 아마 소울 게임을 해본 적은 없어도 ‘YOU DIED’라는 검붉은 문구는 밈처럼 사용되고 있어 익숙한 이가 많을 것이다.


올해 3월, 야심차게 PC를 구매한 이유는 엘든링을 해보겠다는 의지 하나였다. 아내가 메이플 스토리를 한다던지, 비트코인 셀프 커스터디, 풀노드 구축 등 PC 구매의 의의가 여러 가지 파생되긴 했지만, 실상 내 소울게임 플랫폼으로써의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그 후 지금까지 약 9개월간 엘든링과 DLC, 다크소울 트릴로지를 격파하고, 후배의 집에서 노는 PS4를 빌려 블러드본을 격파하기에 이른다.


십수 년에 걸쳐 출시된 게임들을 단기간에 끝냈기 때문인지, 아침부터 운전을 8시간이나 한 탓에 체력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인지, 얼마 전에는 ‘세키로’의 아시나 겐이치로를 격파하고 난 후 급격히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어차피 다 깰 건데, 이 짓을 왜 하고 있지?’


마치 결말을 뻔히 아는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시간이 아깝다거나, 어려워서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도저히 깰 수 없을 것만 같던 그 어떤 보스도 패턴을 학습하고, 끊임없이 죽어가며 도전하면 결국은 클리어할 수 있다는 사실마저 이제는 너무 익숙한 감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매너리즘은 디아블로 3 대균열 40단계를 넘어갈 때쯤, 클래시로얄의 카드레벨 제한이 상향될 때 느꼈던 그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다. 디아블로 3와 클래시로얄은 그 느낌을 느끼자마자 손을 놓아버렸지만, 내 소울라이크 여정은 아마도 계속될 것 같다. 전자의 게임들은 끝없이 반복될 뿐이지만, 소울라이크는 명확한 종착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본가의 소울류 게임이라 하면 세키로와 태초의 소울 게임인 데몬즈 소울 밖에 남지 않았다.


1월 중순 출산이 예정되어 있기에, 아마도 세키로를 클리어하고 나면 당분간은 게임을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사실상, PS5 독점작인 데몬즈 소울 리메이크 만이 남게 되는 셈. 아마 그걸 하고자 할 때쯤이면 중고 PS5의 시세도 많이 내려가 있을 테니 그 또한 개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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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게임을 클리어해 낸 타임라인과는 반대지만 가장 최근 출시된 게임은 ‘엘든링 DLC:황금나무의 그림자’이다. 극악의 난이도로 논란이 있었지만, 개발사인 프롬소프트웨어의 고민이 강하게 녹아있었다. 엘든링 이전의 소울게임은 고인물에게는 재밌는 게임이지만, 신규 유입 유저에게는 악마 같은 게임이었다. 그 괴리를 좁힌 게 보스난이도를 한껏 올렸지만, 각종 전투시스템과 오픈월드 형식을 차용해 자체 난이도 조정이 용이한 엘든링이고, 엘든링은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며 GOTY를 휩쓸게 된다.


많은 이들이 생각하기를, 이제 더 이상 고인물과 신규유저를 모두 열광하게 하는 신작이나 새로운 IP가 만들어지기는 힘들지 않을까. 새로운 프로젝트의 소식이 들리긴 하지만 역시, 전통적인 소울라이크 게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장르의 한계, 끝도 없이 어려워지는 보스는 신규 유입 유저들의 앞을 가로막고, 난이도가 낮아지면 기존 팬들은 실망할 수 밖에 없다. 엘든링의 두 번째 DLC인 ‘밤의 통치자’는 그냥 다른 장르로 봐도 무방하니 논외로 한다.


경영권 문제가 생긴다던지, 소울의 아버지인 미야자키 히데타카가 갑자기 노망이 든다던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프롬소프트웨어가 어거지로 비슷한 종류의 게임을 찍어내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회사라면 애초에 다크소울 같은 희대의 명작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 전 세계의 겜돌이들이 블리자드에게 바라던 것을 일본의 프롬소프트웨어가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나뿐일까. 따라서, 엘든링:황금나무의 그림자가 아마도 소울라이크 팬에게 주는 본가의 마지막 정통 선물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훗날 아이가 다 크고 데몬즈 소울을 클리어하게 되면, 국내산 ‘P의 거짓’이나 중국산 ‘검은 신화 오공’을 플레이하게 될 것인가. 짝퉁, 아류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나는 아마도 그 친구들을 플레이하기보다는 본가 게임들을 계속 반복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매너리즘이 오면 잠시 놓았다가, 손맛이 그리워질 때면 다시 패드를 집어 들고, 그러지 않을까. 새로운 IP나 더욱 발전된 시스템을 보여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없다 해도 아쉬워하지 않기.


매일 한 시간씩, 4박 5일에 걸쳐 잡아낸 다크소울 3의 ‘어둠을 먹는 미디르’


밥 먹는 시간 빼고 장장 9시간을 트라이해서 잡아낸 ‘미켈라의 칼날 말레니아’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키보드+마우스 조합을 패드로 바꾸게 만든 ‘약속의 왕 라단’


방패 없는 회피 플레이 원툴이였던 내게 가드와 패링을 강제한 ‘세키로‘ 까지.


‘이걸 깨라고 만들어 놓은거냐?’ 에서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겠군’ 으로 바뀌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뻔드러진 말이지만, 나는 이 게임들에서 인생을 배웠다. 인생이란, 게임과 다르게 끝없이 도전한다 해서 모든 걸 극복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극복할 수 없다. 올 여름,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치르게 된 운전면허 시험을 네 번이나 떨어졌어도 마음이 꺾이지 않았던 건, 그 도전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 끝없이 도전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