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있어 종교의 시작은 필연이었다. 지능이 갓 깨어난 인류에게 번개, 지진, 죽음 같은 미지의 공포는 생존을 위협하는 적이었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음으로써 그 공포를 해석하고 견뎌내는 것, 그것이 곧 생존이었다 하겠다.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토속 신앙에서 유일신 종교로, 다시 통치 수단으로 발전한 과정은 인류 문명의 운영체제(OS)가 고도화되는 과정과 같았다.
오늘날의 도덕과 윤리도 그 뿌리는 결국 종교적 훈육에 있다. 집단생활로 인해 이타심이 생긴 인류에게 행동양식을 정립해 준 게 종교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크리스마스가 어떤 날인지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종교는 그렇게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꼭 법의 테두리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도덕규범을 지키며 살아가게 만들었다. 법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정치보다 먼저 인류를 다스려 온 게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 믿음 체계가 아예 없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보자. 사자가 초식동물을 사냥할 때 암컷의 임신 여부와 수컷이 먹여 살릴 처자식을 생각해 주나? 한 마리의 힘센 수컷이 수많은 암컷을 거느리며 씨를 뿌릴 때 도덕이나 윤리가 작용하는가? 인간 세상도 그렇게 동물적 본능에 더 가깝지 않았을지. 당연히 자연의 동물보다 지능이 높으니 이성이라는 게 존재하지만, 지금보다 좀 더 잔인한 약육강식의 세계가 되지 않았을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것은 지능과 상상력이며, 그 부산물이 바로 종교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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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믿던 믿지 않던, 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살아간다.’ 나는 그 말을 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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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누군가 종교에 대해 쏟아낸 냉소를 보았다. 나 또한 어린 시절엔 종교에 대한 반감이 심했다. 하지만 세상을 겪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종교의 폐단을 비판하는 것과, 종교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옛 현인들의 철학적 사고도 물론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철학은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종교는
주입된다. 그게 옳던 그르던, 그 작동 방식이 인류 문명을 다스려 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종교로 인해 발생한 수많은 전쟁들, 마녀사냥, 교리의 정치화 등등 종교의 나쁜 점을 말하는 건 수도 없이 봐왔다. 반대로, 인류 탄생부터 함께 해온 종교와 신앙이라는 행동제약이 가져온 것들에 대해 논하는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나카 요시키의 명작 ‘은하영웅전설’에서는 우주로 나간 인류가 지구를 숭배하는 교리로 파생된 ‘지구교’라는 종교가 가져온 비극들을 설명한다. 주된 내용은 아니지만, 돌이켜 보면 결국 모든 곳에서 종교가 작동하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반대로 스타워즈에서는 보이지 않는 질서(포스)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제국과 그 믿음을 유지하려다 타락한 집단(제다이), 그리고 영웅의 등장으로 질서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은하영웅전설은 한없이 냉소적이고, 스타워즈는 지향점을 말한다. 어릴 적엔 은하영웅전설이 좋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스타워즈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가는 건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에 온기가 더해지는 과정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논쟁적 의견이 될지 모르지만, 나는 종교가 없는 인간세상은 지금보다 더 끔찍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냥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정황상 그렇게 보인다. 지능은 발달하는데, 보이지 않는 제약이 없는 인류는 정당화에 더욱 능숙해지고 그에 따라 더 나쁜 선택을, 더 많이 하지 않았을까. 질서가 잘 유지되어 온 것보다 질서가 깨진 쪽이 머릿속에 더 남는 법이니까. 비종교인의 관점에서, 아기 예수 탄생 시점이 기준인 서력의 한 해가 저물어 갈 때 즈음, 종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