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청구서>

by 포니아빠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다. 다친 것도 아닌데 갑자기, 무작정 찾아오는 무릎 통증. 걷기도 힘들고, 무릎을 굽히기가 어려워 단기간 꽤나 불편해지지만 나는 알고 있다. 물리치료 한 번과 3일 치 처방약만 있다면 금세 낫는다는 걸.


항상 다니던 정형외과가 있던 동네에서 이사를 오는 바람에 오늘은 다른 정형외과를 찾았다. 체외충격파, 값이 꽤 나가는 비급여 치료인데 이게 효과가 좋다 해서 처음으로 시술을 받아 보았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 했던가, 눈물이 찔끔 날 정도의 통증을 견디고 다른 물리치료까지 끝내고 나니, 거짓말같이 빠르게 차도가 느껴진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신 선생님이 묻기를, 운동하시냐며. 관절에 별다른 이상이 안 보이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염증이 도지는 건 특이한 경우라고 한다. 바쁜 의사 선생님께 내 인생 서사시를 줄줄 읊을 순 없으니 대충 둘러댔지만, 이것은 일종의 청구서라고 볼 수 있다.


중학생 때부터 나는 춤을 췄다. 힙합을 사랑하는 소년, ‘비보잉‘이라 명명되는 땅바닥을 쓸고 다니는 그런 춤을 이십 년 가까이 춰왔다. 중간에 쉬기도 하고, 근 이삼 년 동안은 거의 못했지만 이십 대의 일부는 이게 풀타임 JOB 이였을 정도로 전문적으로 추기도 했었다. 재능이 하찮고 게으른 탓에 큰 성취는 이루지 못했지만.


’ 스트레칭은 개나 줘라 ‘ 무슨 힙합병에 걸린 건지, 연습실에 가면 짐을 집어던지자마자 냅다 바닥을 뒹굴기 일쑤였다. 몸은 춤을 추면서 푸는 거라며. 스트레칭 같은 건 해본 적도 없는 놈이 학생들을 가르치며 수업을 했으니 참, 지금 생각해 보니 자격 미달의 선생이었다.


트릭용 자전거인 BMX를 주행용으로 쓰며 바니홉을 뛰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며 하루에 수백 번씩 알리를 연습하고 다치던 과거까지 더해지니, 무릎이 성한 게 오히려 이상하다. 그렇게 젊은 시절 몸을 혹사시켰던 나는, 나이를 먹고 청구서를 받아 들기 시작한 거다. 대략 2, 3년 전부터.


무섭게도, 청구서는 그게 끝이 아니다. 보험은 다 사기라며, 나같이 일 년에 병원 한두 번 갈까 말까 한 사람이 왜 보험료를 다달이 내야 하냐며 고집을 부렸던 과거의 나도 노쇠해 버린 나에게 청구서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어릴 때 실비 하나 정도는 들어둘걸. 가난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었는데.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 된 나는, 가족력 때문에 암이나 심혈관 관련 보험은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실비 보험은 이 나이에 들려하니 보험료도 만만찮고, 이리저리 제약이 많아서 손이 가지 않았다. 아직도 보험료는 아깝다고 생각하는 탓도 어느정도 있겠지만.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치료비로 거금 7만원을 쓰고 말았다. 옛날부터 보험료를 계속 내왔다고 가정했을 때, 내가 낸 치료비 보다 보험료가 훨씬 클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지만, 내 인생은 오늘이 끝이 아니니까. 앞으로는 병원신세를 지는 일이 아무래도 더 많을 테니까.


어린 시절엔 재밌는 것들이 많았다. 그로 인해 여러 가지 서사를 쌓았고, 제법 괜찮은 청년 시절을 보낸 것 같다. 한때는 인생의 전부였으나 결국 뒷전으로 밀려나 버린 춤을 추었다던지, 없는 돈을 모아서 보드나 BMX를 산 것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챙길 수 있는 부분도 챙겼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스트레칭은 개 줘버린 치기 어린 시절의 나, 보험의 순기능을 애써 무시해 오던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한대 쥐어박아버리고 싶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