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이 느린 자>

by 포니아빠

명절이나 다른 때에 고향에 내려가도 되도록 아버지나 아내와 시간을 보내는 걸 중요시 여기는 탓에 고향 친구들은 잘 만나지 않게 된다. 어릴 적 추억을 안주삼아 술 한잔 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공통의 관심사가 없다 보니 딱히 할 이야기도 없는.


그래도 어쩌다 시간이 맞으면 만나는 친구가 세 명이 있는데 그중 한 명에게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새해인사며, 건강상태며, 형식적인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다 문득 생각이 나서 물어보았다.


‘너 첫째가 몇 살이지?’


올해 22살이란다 세상에, 곧 군입대를 앞두고 있다고. 그래, 그 첫째가 갓난아기일 때 이 친구는 결혼을 했고 내가 그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었지. 스무 살 땐가 스물한 살 땐가. 둘째는 벌써 고등학생 이라네, 세월 참. 재작년 결혼에 골인해 갓난아이 딸을 가진 나와는 타임라인이 멀어도 한참은 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뭐든 빨랐던 것 같다. 이 친구는 내가 춤에 눈을 뜨기 전인 초등학생 때부터 춤을 잘 추기로 유명했다. 중학생 때는 함께 노는 무리가 되어 춤도 추고, 이리저리 비행을 일삼을 때도 머리를 탈색하는 것, 여자친구를 사귀는 것, 핸드폰을 가지는 것, 고등학교 졸업 후 차를 가지는 것 등등 뭐든 한발 빠른 친구였다.


생각해 보면 나는 뭐든 조금 느리다. 핸드폰을 가지는 것도, 군대도, 운전도, 결혼과 출산, 심지어 게임마저도 항상 철 지난 게임을 뒤늦게 격파하기 일쑤다. PS3가 나오네 마네 할 때까지 PS1을 주구장창 가지고 놀았으니. 아내와 걸을 때는 걸음이 느리다며 핀잔을 들을 정도니, 느린 것도 가지가지다. 민첩성이 특별히 떨어지거나, 두뇌회전이 느린 편은 아니다 보니 그나마 사람 구실을 하고 있는 셈.


뭐든 빠른 그 친구 놈은 결혼도 빨랐는데 이혼까지 빠를 일인지. 그런 건 좀처럼 뜻대로 안 되는 일이라 그렇다 치고. 친구의 간절한 부탁이니, 제발 저세상 가는 건 빠르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에서 만난 절친한 친구 한놈은 나 못지않게 결혼 타임라인이 느린데, 부모님도 두 분 다 안 계셔서 혼자 쉰내를 풀풀 풍기며 살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좀 짠할 때가 있다. 외모가 딱히 떨어지는 편도 아니고, 실제로 냄새가 나지는 않는데도 날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것도 역시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 닦달한다고 될 일이 아닌 건 알지만.


친구야, 정 어렵다면 해외로 눈을 돌려보는 건 어떻겠니? 진정한 사랑에 국경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니겠니. 동남아나 중국 쪽이 싫다면 스페인어를 배워보면 어떻겠니? 범용성이 매우 높으니까. 특히 중남미 여성은 매우 아름답지 않니? 왜 이렇게 질색팔색 하는 거니. 더 늙기 전에 뭐든 해야 하지 않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