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속과 영등포>

by 포니아빠

코로나 역병으로 인해 막혔던 하늘길이 다시 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23년 여름, 현 아내이자 전 여친과 나는 여름휴가로 방콕을 다녀왔다. 총각시절 친구들과 놀러 다니던 곳을 아내가 될 여인과 함께 오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왕궁, 일일투어, 쇼핑몰 구경 등 방콕에 처음 온 아내를

위해 필수 코스에 가까운 일정들을 소화하는 도중,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의 숙소는 시내 중심가인 아속역 근처였는데, 아속역 사거리에 위치한 거대 쇼핑몰 터미널 21 건너편엔 ‘소이 카우보이’라는 곳이 있다. 아고고 골목, 아고고란 무엇이냐.


기본적으로 스테이지를 향한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는 곳인데, 업장 가운데엔 스테이지가 있고 그곳엔 반 나체로 춤을 추는 수많은 여성들이 번호표를 달고 있다. ‘마마상’이라고 불리는 관리자에게 마음에 드는 여성의 번호를 부르면 그 번호에 해당하는 아가씨가 착석을 하고, 비용은 그 여성이 먹는 술값인 레이디 드링크로 지불하는 식. 보통은 칵테일 한잔 사주고는 ‘웨얼 알유 프롬?’ ’하우 올드 알유?‘ ‘킹살처럼 보여?’ 같은 시답잖은 이야기나 하다가 스테이지로 돌아가게 된다. 사실은

그게 다 그 이상의 무언가로 이어지는 빌드업 같은데, 나와는 먼 이야기다.


소이 카우보이란, 그런 업장이 신당동 떡볶이집 마냥 줄지어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내 기억 속 그곳은 음침하거나 퇴폐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고, 휘황 찬란한 조명들 아래 세계 각국의 관광객과 남녀노가 어우러지는 그런 곳이었던 것.


’한번 가볼래?‘


아내도 익히 알고 있는 내 친구들과 총각시절 방콕에 오면 뭘 하고 놀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왜?) 그렇게 아내와 나는, 방콕에서 가장 불경스러운 그곳 ’소이 카우보이‘ 골목에 입성하게 되었다.


옛날엔 맨유 멤버들과 박지성이 커다랗게 박혀있는 빛바랜 맥주 광고판이 골목 초입에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젠 없구나. 비키니 차림으로 호객을 하는 여성들,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모여 축구를 보는 펍,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는 펍을 지나 거기서 가장 유명한 ‘바카라‘라는 업장에 들어갔다. 친구들과 다닐 때는 보통 ’오니상~’ 또는 ‘니하오~’ 같은 인사말들을 헤치고 들어갔어야 했는데 역시 여성과 있는 남자에게는 호객을 하지 않는구나. 그렇게 바카라에 들어간 우리는 한 병에 대략 150~200밧 하는 맥주 한 병씩을 마시고 나왔다.


‘신기하다~이런데가 있네‘


수많은 아가씨들이 헐벗은 채로, 스테이지에서 반쯤 영혼이 빠진 표정으로 몸을 흔들고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신기할수 밖에 없다. 처음 가본 아내에게도, 불타는 욕망이 제거된 상태인 나에게도 그리 큰 임팩트는 없었지만 그냥 소소한 이색체험? 정도가 된 것 같다. 아내에게는 그 공간 자체가 이색적이었을 테고, 나는 그곳을 아내와 함께 갔다는 사실 자체가 재미있는 경험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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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 년 전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일을 할 때인데, 건물 외벽의 계단으로 빠져나오면 아래쪽으로 사창가와 슬레이트 지붕의 건물들이 훤히 내려다 보였었다. 비까 번쩍한 대형 쇼핑몰 안에 위치한 나는 그 광경에 묘한 위화감을 느꼈었는데, 지금은 사창가도 영업을 안 하는 걸로 알고 있어서 저녁이면 내려다 보이던 붉은 조명도 안보일 테고, 슬레이트 지붕의 건물들도 어느 정도 정비가 되었으려나.


터미널 21 건너편의 소이 카우보이, 영등포 타임스퀘어 건너편의 사창가. 방콕의 아속역 일대와 서울의 영등포역 일대는 그렇게 닮은 구석이 있다.


대형 인프라가 세워지는 곳=교통의 요지=사람이 몰리는 곳=놀거리와 먹거리=환락가


인위적으로 개발된 곳 말고, 오래된 상권에서는 정형화된 패턴이지만, ‘사람 사는데 다 비슷하다’라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사실을 몸소 느낀 순간이었다. 아내를 처음 만난 곳도 타임스퀘어였으니 특별한 기억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