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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초지현 Mar 16. 2023

카스테라

안 먹어요.

우리 집 바로 옆에는 수제빵을 파는 유명한 제과점이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획일화된 맛이 아닌 장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향긋한 빵내음이 풍기는 곳이다.

늘 오전이 되면  담 넘어오는 빵냄새에 참지 못하고 지갑을 챙겨 집을 나선다.


제과점 입구에 들어서면 여러 종류의 빵들이 고소하고 달콤한 풍채를 뽐내며 나열되어 있다.

이름도 다양하게 <딸기를 품은 타르트>, <생크림 팡도르>, <부산 어묵빵>, <치즈가 듬뿍> 등으로 맛을 상상하게 한다.

어떤 맛일까 궁금해하며 시작되는 즐거운 빵 쇼핑 중 유독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카스테라 종류이다.




어릴 적 살던 동네에 카스테라빵 만들기가 유행했었다.

카스테라용 전기오븐을 공동구매라도 한 듯이 앞집, 옆집, 뒷집에서 같은 모양과 비슷한 맛의 카스테라를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 집도 예외 없이 카스테라를 만들었다.


엄마가 쉬는 일요일이면 온 가족이 부엌 식탁에 둘러앉았다. 엄마가 계란을 노른자와 흰자로 분리해 준다.

그럼 우리는 흰자를 받아 숟가락과 구멍 뚫린 기구를 이용하여 열심히 저어준다. 투명한 흰자가 하얀 거품이 되기 시작하면 설탕을 몇 스푼 넣고 또 힘껏 젓는다. 설탕의 단맛에 흰자가 녹아나듯이 하얗게 머랭이 만들어지면 숟가락을 들고 꾸덕하게 떨어지는 것을 확인받는다.

엄마가 "잘했구나~" 하면 우리의 할 일은 끝났다.


우리가 열심히 흰자를 휘젓는 동안 엄마는 밀가루를 고운 체에 걸러 노른자와 우유를 섞는다.

엄마가 만든 노란 반죽과 우리가 만든 흰 반죽이 섞여 파스텔풍의 노란색이 만들어진다.

파스텔 노란 반죽을 카스테라용 전기오븐에 넣고 가열하는 동안 엄마는 부지런히  식탁 위를 치웠다. 마냥 신난 우리는 언제 먹을 수 있을까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오븐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특유의 카스테라 향이 나기 시작했다.

띠리리~빵이 다 되었다는 종료음이 나면 엄마가 조심스레 꺼내주었다. 막 만들어진 따뜻한 카스테라는 갈색옷을 입고 있었고 그 안은 노란 속살을 가졌다. 퐁당거리는 감촉을 전해주는 갓 꺼낸 카스테라와 우유를 함께 마시면서 일요일 오후를 즐겼다.




카스테라를 처음 해 먹었을 땐 재밌기도 하고 맛있기도 했다. 그러나 매주, 카스테라 빵만 먹으니 크림 들어간 빵도 먹고 싶고, 딱딱한 바게트도 먹고 싶어 졌다.

그러나 엄마는 내내 카스테라만 해주었다.

카스테라용 전기오븐이 다 닳도록 말이다.


좋은 것도 매번 반복되니 그 느낌이 희석되어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카스테라는 잘 먹지 않는다.

평생 먹어야 할 카스테라를 유년 시절에 거의 다 먹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지금도 엄마와 함께한 오후의 그 시간이 오롯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 향은 기억 속에 스며들어 늘 기분 좋게 한다.

언젠가는 엄마와 함께, 내 아이와 함께 카스테라를 만들어봐야겠다.

직접 만든 카스테라는 조금 먹지 않을까 싶다.




사진출처 : Daum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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