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좋아하고,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것이 시아버지와꼭 닮았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나를 보면서 한 번씩 그렇게 말씀하신다. 정작 그 며느리는 결혼하자마자 임신을 하는 바람에 아버님과 맥주 한잔 기울이지 못했다.
시아버지에 대해 얘기하시는 시어머니의 눈빛에는 여전히 사랑이 가득하다.
옛날 사람들이 남편은 곧 하늘이다라는 생각으로 섬기듯이 어머님도 늘 아버님과 아들을 먼저 챙기셨다.
" 네 아버지가 살아생전에 얼마나 잘생겼었는 줄 아니?"
매번 반짝이는 눈빛으로 말씀하신다.
"노래는 또 어찌 그리 잘하는지~너도 한번 들어봤으면 좋았으련만"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있을 때 남편 어릴 적 사진 몇 장을 챙겨 오셔서 갓난아이와 사진을 번갈아 보며 닮았다 흐뭇해하신 아버님,
아들 똑 닮은 손주 보러 아들네 오셔서 며느리 불편할까 봐 아이 얼굴만 깻똥하고 바로 가시던 아버님.
어머님이 며느리 일 시킬까 봐 당신이 더 나서서 일하시고 우리 보고는 매번 그만 가라 손짓하시던 아버님.
그런 아버님께서 갑자기 호흡이 잘 되지 않아힘들어하셔서 다음날 병원을 가야 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날, 갓난아이를 데리고 아버님댁으로 갔다. 아버님옆에 아이를 눕혀놓으니 며느리 방귀얘기를 해주면서 웃으셨다.
아이와 눈 맞추며 웃으시는 아버님을 보면서 어머님께서 그래도 좀 낫나 보다 하시며 안심하셨던 그날 저녁, 그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다음날 오전, 집 현관문을 나서며 며칠 있다 보자 하시는 아버님 뒷모습에 아이를 안고 인사드리는데 눈물이 났다.
아이가 할아버지를 뵐 수 있는 날이 그날이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면서도 마음이 서늘해져 눈물로 맺혔던 것이다.
아버님은 그렇게 병원에 가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아버님을 뵈러 갔는데 이미 섬망증상으로 며느리인 나를 못 알아보시고, 애타게 손을 잡고서는 집에 좀 데려다주세요를여러 번 되뇌셨다.
곳곳에 호스줄이 달린, 너무 말라 앙상해진 아버님을 뵙고 오는 길에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걸을 수 없어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 후 며칠 뒤 아이의 100일 떡을 손에 꼭 쥐어보시고는 이 세상 소풍을 마치셨다.
입관식에서 아버님의 발을 만지며 인사하는데 그분께 닿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기어이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아이 봐주시기로 하셨잖아요.
맥주 좋아하는 며느리와 짠~한잔도 못하셨잖아요.
어머님 칠순 때 여행 같이 가시기로 하셨잖아요.
왜 홀로 그리 먼 길을 떠나시는 건가요..
장례식을 치르는 3일 동안 친정에 맡겨 두었던 아이를 데리러 갔더니 우리가 결혼한 지 딱 1년이 된 날이라며 동생이 축하한다고 케이크를 사주었다. 수척해진 형부와 언니에게 달달한 기운을 전하고 싶었던 동생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렇게 결혼하고 딱 1년 만에 아버님을 떠나보냈다.
그 후 남편은 결혼기념일 즈음이 되면 늘 우울해 보였고 그 마음이 헤아려져 기념일 같은 건 애써 챙기지 않게 되었다.
어느 해 결혼기념일에는 남편 없이 어머님과 둘이서 맥주 한잔 하기도 했다.
남편과 아버님 사이에 어떤 사연이 놓여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기분을 존중해 주기로 한다.
1년 정도 가족으로 지낸 나의 상실감도 이 정도인데 몇십 년을 함께한 남편의 상실감은 아마 내가 상상도 못 할 정도일 테니 말이다.
가끔 너무 속이 상하거나 슬픔에 잠식될 때면김필이 부르는 <청춘>을 목놓아 따라 부른다. 그렇게 부르다 보면 속상한 것들이 별게 아닌 게 되어버린다. 아버님도, 어머님도, 그들 청춘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셨을 테고 우리의 청춘도 그러할 테니살아있는 동안 여전히 푸르게 지내보자 싶다.
청춘(Feat. 김창완) -김필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