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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초지현 Jan 26. 2023

역지사지

" 나 고생했다고 토닥해죠~"


명절라 인사드리고 싶은 분들께 선물을 전하러 여기저기 가야 해서 남편이 운전하였다. 남편과도 인연이 있는 지인들이라 함께 나섰는데  명절 앞이라 막히는 도로에서 1시간 넘게 운전하느라 지친 남편이 나의 애교 섞인 고마움을 바란 모양이었다.

그냥 고생했어요~라고 한마디 해주고 말면 되었을 텐데 그 순간 내 속에서 번쩍 "이게 뭐야" 는 생각으로 짜증을 내고 말았다.



나는 8년 넘게 왕복 2시간 거리를 출퇴근하는데 고작 1시간 넘게 운전했다고 힘들다고 하는 거? 이거 힘든 거였어?

정말 그 순간 그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는데 남편이 힘들다고 하는 순간 나는 왜.. 나의 힘듦을 어쩔 수 없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인 걸까. 나는 왜 그러고 살았던 걸까 하는 생각.




남편과 결혼 전 임신을 준비하고 있기도 했고 맞벌이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산에 집을 구하자고 부탁했다. 월세라도 좋으니 우리 둘 직장의 중간쯤이나 친정 가까이 사는 동생집 근처에 집을 구했으면 했다.

 

내가 아무리 얘기해도 그저 웃기만 하던 그는 그의 본가 옆으로 집을 사버렸다. 결혼 전 살던 친정에서 40~50분 거리의 양산이 그의 본가였다.

나의 직장까지는 1시간 넘게 걸리는 곳이었다.



나중에 그가 머뭇거리며 양해를 구한 것은 시아버께서 이 아프신 상태라 본가 근처에서 지내야 했다고 말했지만 그건 아이를 낳고 난 후에 들은 얘기였다.

그는 선녀옷을 감추고 아이 낳기를 기다린 나무꾼처럼, 그리하여 어쩔 도리없이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들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시아버지의 상태를 얘기해주지 않았기에 새댁이 되어서야 알았다.  남편이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상황이온 가족이 아버님의 건강에 신경을 쏟고 있지라 나 또한 우선적으로 아버님부터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다른 생각 없이 나는 왕복 2시간 거리를 운전해 가며  직장으로 출퇴근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받아들이고 아무 불평 없이, 아무 대가 없이, 누구 하나 고생한다 말해주지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그 시간을 보냈다.

어쩔 수 없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저 내 몸 힘든 것 하나만 잘 돌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나에게 1시간 넘게 운전했다고 오구오구 해달라는 남편을 보며, 아~그때 나 힘들다고 얘기해야 했구나. 나 고생한다고,  알아달라고 얘기했어야 했구나.

그때서야 억울함이 물밀듯 밀려들어와 나를 덮쳤다.


임신초기에도 운전을 하고 다녔고 만삭의 배로도 운전 아니라 그 긴 거리를 버스와 지하철을 환승해 가며 다니기도 했다.


태교는 차 안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하고, 창밖의 풍경 사계절 따라  변하는 색감으로 감상을 했다.

늘 뱃속 아이와 이야기를 하며 졸음을 쫓았고, 차 안에서 도시락 먹으며  뱃속 아이를 위해 끼니를 거르지 않고 챙겼다.





그는 나에게 투정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야 내가 그 시간이 힘들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 시간의 나에게 미안해졌다.

나 스스로를 챙겨주지 못한 것 같아서.

지금 나를 울리는 한마디는 그것이다.

"그땐 어찌할 수 없었잖아"



그냥 고생했다, 너 덕분이다. 이 진심 어린 한마디면 되는데 제일 가까운 가족이 그런다.

그땐 어쩔 수 없었잖아.



응, 나도 지금 어쩔 수 없눈물이 난다.

그 어쩔 수 없는 시간이 다양한 모습으로,  내 인생에 너무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photo by GG(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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