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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초지현 Jan 12. 2023

밀면이 너무 먹고 싶어

임신초기에 입덧이 너무 심했다.

부엌에서 누군가 냉장고 문을 열면  살랑 공기 넘어 전해지는 특정할 수 없는 음식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곧장 목구멍 가득 치밀어 올라오는 구역질이 되어 나를 화장실로 달려가게 한다.

거의 화장실 변기랑 친구 먹게 생겼다. 매일 끌어안고 있으니 말이다.

더 이상 게워낼 것도 없는 상태라 헛구역질만 한다.

칙칙 돌아가는 압력밥솥 소리에 안정되다가도 어느 날 그 고소했던 밥냄새가 또 헛구역질하게 만들었다.

구토의 연속이었던 그 시간을 겨우 먹을 수 있는 방울토마토와 흰 죽으로 견뎌내었다.



지하철을 타면 다양한 사람들의 체취에 우욱~

엘리베이터 안의 진한 향수나 화장품 냄새에 의해 생각지도 못한 우욱~좁은 그 엘리베이터 안에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이는 곧 어디 묻혀있을지 모르는 지뢰밭을 걷는 심정이 되어하던 일도 잠시 쉬어야 했다.

화장품도 무향으로 다 바꾸고 비누, 샴푸도 거의 무향을 찾아 인터넷 삼만리를 헤맸다.



거의 못 먹어 말라가고 있을 때 지인이 보내준 제주도 귤을 내 몸에서 '오케이~먹어도 돼' 허락한다.

너무 상큼해서 종일 귤만 먹기도 했다. 귤을 먹다 보니 천도복숭아가 너무 먹고 싶어졌다.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 딱딱한 천도복숭아)

그러나 한겨울에 천도복숭아를 어디서도 구할 수 없으니 먹고 싶은 맘은 더 간절했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과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며 먹을 수 있는 것을 하나둘씩 찾아가던 날이었다.




장대같이 비가  쏟아지는 날, 어찌할 수 없는 입덧으로 친정에 가있었다.

부모님은 모두 주무시는데 갑자기 밀면이 너무 먹고 싶어 지는 게 아닌가.

상큼하고 매콤한 밀면을 먹으면, 그 국물 한입이면 종일 부대끼던 속이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늦은 시간 퇴근한 남편이 막 들어오길래 "자기야~나  물밀면이 너무 먹고 싶어"


남편이 당황해하며 이 늦은 시간에 밀면집 문 열린 곳도 없고 밖에 비가 너무 와서 안된다고 조곤조곤 이유를 설명한다.

내일 아침에 먹자고 나를 토닥여 주는데.. 위로는커녕  오직 밀면 밀면 밀면 생각밖에 안 났다.

잔다고 누워 눈물 한 방울 또르르 하며 여동생에게 카톡을 보낸다.

" 나 밀면이 너무 먹고 싶어"

동생이 바로 톡을 확인하더니 답장이 온다.

"있어봐~내가 먹게 해 줄게!"



그러곤 잠시 뒤 동생이 전화 와서 나오라고 한다.

친정집 앞에 기다리고 있다고.(동생집은 친정집과 가까웠다)

12시가 다 되어가는 그 늦은 시간, 비 오는 밤에 제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24시간 문 여는 밀면집에 가서 물밀면 한 그릇을 뚝딱하고 왔다.

엄마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생내외를 보는데 어쩜 그리 반갑고도 미안하던지.(슬릉한다♡내 동생)



동생의 말에 의하면 임신 때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으면 평생 한으로 남는다고 한다.

그래서 언니의 말 한마디에 밀면집을 검색하고서 태우러 온 거였다.

늦은 밤시간이든, 비가 오든 상관없이 말이다.

동생은 임신한 언니를 이리도 챙기는데 나는 몰랐다.

동생도 임신했을 때 이리 먹고 싶은 것이 있었을 텐데, 이렇게 몸이 무거워지고 많은 변화들로 힘들었을 텐데.. 언니인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구나.




동생은 나보다 먼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조카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동생집을 드나들었다.

그 당시 갖고 있던 캐논 DSLR에는 온통 조카들 사진뿐이었다. 나는 그저 사랑하는 조카들과 놀기만 했다.

동생의 마음이 어떠한지 살펴보지를 못했다.

임신과  출산 과정을 몸소 겪어보니 내가 알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동생이 혼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어 짠했다.



그리 철없는 언니가 아이 낳으러 간다고 브이하고 나서는 모습을 보고 동생이 속으로 그랬다고 한다.

'애 낳을 때 많이 아플 텐데 좋단다~~ 아무것도 모르고 저리 해맑네'


나이는 내가 많지만 언니 같은 넓은 마음은 동생이 가진 듯하다.



밀면은 부산에서 여름철에 즐겨 먹는 찬 국수의 일종이다. 밀면은 부산 사람들에게는 여름이 되면 생각나는, 또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밀면의 종류로는 물밀면과 비빔밀면이 있다. 구포 국수, 돼지국밥 등과 함께 6·25 전쟁 시기를 전후하여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어 대표적인 피난 음식으로 꼽힌다.

부산 지역의 향토 음식이어서 타지로 확산되지는 않았고, 현재 국어사전에는 밀면이란 말이 없다. 다만, 백과사전에는 “밀가루와 전분을 넣고 반죽하여 만든 국수. 6.25 전쟁 때 만들어진 음식으로 부산의 대표적 향토음식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 부산역사문화대전 발췌




사진출처 :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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