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에는 부산에서 큰 공연을 한다는 것은 가뭄에 콩 나듯이 드문드문했다. 부산에서 볼 수 없는 공연을 서울까지 올라가서 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던 시간이 있었다.
좋아하는 조승우 배우가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주연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티켓 예매를 위해 시간을 맞춰놓고 기다려 잽싸게 예매한 결과 무대 앞에서 4번째 자리를 선점할 수 있었다. 왼쪽 사이드 자리였지만 무대와 가깝다는 이유로 무조건 오케이!
2004년 초연이었던 [지킬 앤 하이드]에서 조승우는 그야말로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의 연기는 20대의 배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치를 끌어올린 듯했다.
공연의 실황 녹화본이 티브이 프로그램인 예술의광장에서 소개될 정도로 그 당시 큰 이슈였다.
부산에 사는 나는 기차를 타고 즐거운 마음으로 서울로 올라가 시골쥐처럼 두리번거리며 공연장을 찾아갔다.
코엑스 오디토리움은 나에게 신세계였고, 그곳에 공연을 보러 온 조혜련이 있어 다가가지는 못하고 "어머어머"하니 씩 웃으며 브이 해주는 그녀를 찰칵 담았던 추억이 있다.
아~서울 사람들은 티브이에 나오는 연예인을 크게 신경 쓰지 않구나 하며 신기해했던 시골쥐 같은 나였다.
공연이 시작되니 극진행상 지킬 앤 하이드인 조승우 배우가 왼쪽 무대를 거의 장악하고 있어 가까이에서 그의 얼굴표정까지 다 볼 수 있었다.
얼마나 집중했는지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렇게 나는 조승우에게 더 빠져버렸다.
내가 본 회차는 엠마가 김아선 배우였는데 더블캐스팅된 김소현에 묻혀 그녀가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에게 엠마는 김아선이었고, 루시는 최정원이었다,
그때 공연을 같이 본, 서울로 대학을 가서 막 새내기였던 제자가 어느덧 나보다 더 큰 어른이 되어, 지난겨울에는 좋은 소식을 물어다 주는 제비가 되어주었다.
이번에 부산에서 먼저 공연하는 [오페라의 유령]에 조승우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티켓팅 날짜까지 친절히 알려주어 1월부터 대기할 수 있었다.
1월에 예매하는 프리뷰 티켓은 실패하고 2월에 오픈된 본공연 티켓을 얻기 위해 손이 빠른 대학생 조카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1층의 자리를 예매할 수 있었다.
겨울에 예매해 놓고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꽃눈처럼 손꼽아 기다리느라 그 어느 겨울보다 길었던, 허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부산 사는 덕에 13년 만의 귀환인 [오페라의 유령]을 한국어 초연으로 먼저 보게 된 것이다.
그것도 조승우 팬텀으로 말이다.
조승우 배우가 [지킬 앤 하이드] 10주년 기념공연을 할 때는 아이를 막 낳아 작은 우주 속에 빠져 사느라 몰랐고, 이후 그의 공연을 챙겨 볼 여력이 없어 티브이나 영화 속의 그를 만나는 것에 만족하며 지냈다.
주말에는 일하느라 문화생활을 할 수 없는 나를 위하기라도 한 듯, 우리 이제 만나요 하듯이, 수요일 오후 2시 30분 낮공연이 있었다. 조승우의 후광으로 치열했던 티켓팅을 뚫고 잡은 1층의 뒤쪽 사이드에 앉아 그렇게 20년이 지난 후 이제야 뮤지컬 무대 위의 그를 다시 만난 것이다.
20년 전 지킬 앤 하이드였던 조승우가 팬텀이 되었고,
엠마였던 김아선이 마담 지리로 내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들의 지나온 20년이 오롯이 담긴 목소리에, 더욱 깊어진 몸짓에, 내 마음도 깊어져 공연 내내 그들의 목소리가 더 웅장하게 울렸다.
나의 [오페라의 유령]은 그렇게 20년 전 나의 시간과 맞닿아 잊을 수 없는 공연이 되었다.
화려한 무대 장치효과와 감동적이고 섬세한 선율의 음악과 노래보다 나의 [그들]이 있어 더 특별했던 [오페라의 유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