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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초지현 Apr 06. 2023

찬란하지 못했던 기억.

나이트, 클럽 하면 일반적으로 반짝이며 돌아가는 조명,  기분을 들뜨게 하는 음악, 거기에 약간의 술이 더해지면 흥이 솟아나는 곳인데 나에게 있어 그런 것들 소음었다.


95년도 새내기였던 우리 때의 나이트도 핫했다. 요즘은 나이트 하면 올드한 느낌이고 지금의 클럽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물갈이한다고 소문난  크고 유명한 나이트가 있었다.  물갈이란 흥이 최고조로 오르는 시간이 될 때쯤 센스 있는 옷을 장착하고 돈도 좀 쓰면서, 잘 노는 예쁘고 잘생긴 젊은이들로만 나이트의 홀을 채우는 것이다. 평범했던 새내기는  졸업한 선배들이 데려가주는, 물갈이 전의 나이트를 구경할 수 있었다.




대학 입학 후 과생활도 하고 동아리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동문이 가장 편했다. 같은 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있었기에 나를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었고,  함께하는  남자 고등학교의 여러 타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 수업 중간  빈 시간에는 동문파크에 가서 죽치고 앉아 있었다.

고등학교 때 교실에 앉아 공부하던 시간에 초록  눈부신 나무사이의 벤치에 앉아있는 것은 기분지  반짝게 하였다.

학기 초에는 그 기분에 사로잡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마냥 캠퍼스를 헤집고 다녔다.

 초록 기분으로  동문에서 개최하는 신입생 환영회를 참석하게 되었다.


신입생 환영회는 학교를 같이 다니는 선배들뿐만 아니라 졸업한 선배들이 참석하여 그들이 보태주는 찬조비로 회비가 두둑한 행사여서 마지막 코스가 나이트라고 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신세계를 경험한다는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선배들 뒤를 졸졸 따라 들어간 나이트는 정말 찬란했다.

음주에는 능하지만 가무에는 젬병이었던 나는 그저 손뼉을 치며 서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껴안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뒤돌아보니 졸업한 지 한참 된 선배였다.

얼굴도 처음 본 데다가 아저씨뻘의 선배가 덥석 껴안으니 순간 소름이 돋았다. 놀란 마음에 울 듯 그 자리를 빠져나가려니 동기라는 녀석이 귓가에 대고 " 대선배가  술이 많이 되어서 그런 거니 분위기 망치지 말고   참아~"

대선배 좋아하시네~그 말에 더 기분이 상한 나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춤추느라 몰랐던 다른 동기나 선배들까지도 상황을 다 알게 되었다.


그중 바로 윗 학년의 선배 한분이 나서서 내 기분이 상했을 거라고, 술이 많이 된 선배에게 얘기했다.

남자동기의 학교에 대한 정통성과 그들만의 자부심은 인정한다 치더라도  그 자부심으로 분위기 망치지 말라고 한 그 동기의 말은 아직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나중에 동문의 같은 기수끼리 갖게 된 술자리에서 귓속말했던 동기가 "네 기분이 그렇게 나빴을 줄 몰랐어" 라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렇게 동기들 사이에서 할 말 다하는 기센 여자가 되었고,  지금도 경우가 없는 남자에게는 쌈닭이 된다. 



나는  찬란한 나이트 대신에  선택적 쌈닭 자아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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