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에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로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방이나 겉옷을 머리 위에 두고 뛰기 시작한다.
갑자기 만난 비로 당황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보슬거리는 비를 여유롭게 맞고 가는 사람도 있다.
아, 저 비는 산성비에 황사비일 텐데.. 가까운 편의점에 들러 제일 싼 비닐우산이라도 사서 쓰고 가지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어떤 일을 마주하게 될 때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 상황을 온전히 느끼고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나 역시 예상치 못한 일을 마주하게 되면 그저 비를 맞는 사람처럼 그렇게 상황에 적셔진다. 다른 이를 바라보면 우산이라도 사서 쓰지 하면서도 정작 그 상황이 되면 나도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것이다.
지나고 보면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나에게 있어 안 좋은 일은 보슬비가 아닌 장대비로 내려 꼼짝달싹 못하게 하거나 그 속에서 완전히 흠뻑 젖게 만들었다.
추위에 떨다 보면 감기에 걸려 온몸이 아프듯이 그렇게 마음이 아파온다. 왜 그렇게 맞고만 있었는지.
그렇게 겨울에 내리는 비도 있고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주는 소나기도 있듯이 봄을 부르는 비도 있다.
내 인생에서 만난 비는 겨울비 같았다. 지난 몇 년간은 추운 날내리는 비와 같은 일들로 춥고 아파 마음에 서리가 생겨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서리는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나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으니 한여름의 열기가 다가오기 전에 서서히 봄을 맞이해 본다. 한여름의 열기는 한꺼번에 내 속의 서리를 녹여내어 흘러넘치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마철의 비처럼 지겹도록 공기 중에 가득 머물러 있는 물기가 아닌, 봄을 깨우는 따뜻한 입김을 부는 비를 어제 만났다.
언 땅을 녹여 겨울잠 자던 개구리와 뱀을 깨우고, 나무의 꽃눈을 톡톡 건드려 이제 봄이 왔으니 피어도 된다고 알려준다. 먼저 피어 이른 봄향기를 느끼게 하는 목련이 하얀 꽃잎을 뚝뚝 떨어뜨려 땅과 만나 갈색으로 변하며 자연으로 돌아갈 즈음 개나리가 바통을 받아 노랗게 번져가고 있는 봄이다. 매화가 피어나고 이어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 벚꽃이 피어나며 봄이 진해진다.
봄비에 작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벚꽃을 보며 진해진 봄 한가운데 꽃눈 같은 내 마음도 꺼내어본다.
내 속에 있는 있는 이 꽃눈도 톡톡 건드려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어제에 이어 오늘 오전까지도 굵은 빗방울로 봄비가 내렸다.
어젯밤 아이반의 반장엄마가 "봄비처럼 설렘을 안고 부담 없이 볼까요?" 하며 반 엄마들의 단톡방에 문자를 남겼다. 학교 총회 때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에서 처음 만난 후 문자로만 인사하고, 아직 얼굴을 모르는 분도 계셨다. 그래서 대뜸 저요! 하고 손을 들었던지라 아이와 한 반에서 공부하는 반친구의 엄마들을 볼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아침에 일어났다. 서둘러 집을 나서며 아직도 비가 오네, 봄비 같은 그녀들을 만나길 바라며 종종걸음을 했다.
투명 우산을 쓰고 비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니 미리 꽃망울을 터뜨렸던 벚꽃이 비에 꽃잎을 실어 보낸다.
우산 위에 살포시 앉은 벚꽃 잎을 보니 봄비가 하얀 벚꽃과도 같다.
비가 너무 내려서 인지 만나기로 한 장소에는 반장엄마와 나 둘 뿐이었다.
비슷한 나이에 공감 가는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그녀가 나 같고 내가 그녀 같았다.
그래서 어쩜 우리 이리 비슷한가요 하며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비가 그쳐있었다.
셀렘과 함께 온 비가 그치고 나서 아쉬운 작별을 하며 이제 자주 봐요~진한 봄을 약속하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