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자의 중간고사
어른들을 위한 학교 더 라이프 스쿨의 시작은 아침 7시의 명상수업이다.
지난밤 지글거리는 장수 흑돼지의 향에 흠뻑 취한 우리는 그렇게 깊은 밤까지 사람과 이야기에 취해 비틀거렸었다. 하지만 아침에 오니 언제 그랬냐는 듯 삼삼오오 일어나 명상수업에 참가한다.
장수의 맑은 공기 탓일까?
좋은 식재료 때문일까?
늦게 자도 아침은 상쾌하다.
아침부터 일어나 명상 수업에 참여하라는 공지 따위는 없다.
인생학교에는 어떠한 규칙도 없다. 다섯 가지 핵심가치가 있을 뿐.
나의 행복은 나 스스로 결정한다
두근두근하는 마음과 장난기를 되찾는다
의미 없는 인내와 체면치레는 하지 않는다
자신과 주위에 더 친절해진다
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일 외에 다른 일에는 덜 심각해진다
'더 라이프 스쿨'은 다큐멘터리 <HAPPY>의 제작자로 유명한 시즈미 한 에이지가 2015년 시작한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현대인들은 왜 행복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을지. 그 고민들이 고스란히 이 다큐멘터리에 담겼다.
좋은 직장에 훌륭한 연봉에 부러울 것 없이 살던 엘리트 에이지는 좋은 양복을 입고 멋있는 모습으로 출근을 한다. 여느 날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평범한 날, 그는 행색에 초라한 한 노인을 마주하게 된다. 갑작스레 지하철은 흔들렸고 노인이 에이지 쪽으로 쓰려지려 비틀거리는 순간 그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감을 경험한다. 막 욕을 하려는 딱 그 순간이었다.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지, 지금 이러는 모습은 누구니? 이 사람은 누구니?
에이지는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그즈음 절친한 친구를 잃었고 그의 또 다른 친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행복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해
에이지, 우리 함께 하지 않을래?
그렇게 다큐멘터리 <HAPPY>는 탄생되었고 그는 영상 그 이상의 실질적인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어른들의 인생학교를 처음 만들었다. 2015년 일본에서 시작된 <더 라이프 스쿨>은 이 나라의 많은 혁신가들에 의해 2016년 9월 전라북도 장수 캠퍼스에서 열리게 되었다. 놀랍게도 이 프로그램의 파운더 에이지 한은 우리와 함께 2박 3일 내내 함께 했다. 같이 버스를 타고 같이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며 말이다. 이 뿐이 아니다. 라이프 스퀘어, 빅팜컴퍼니 같은 놀라운 기업들의 크루들과 회사의 대표님들은 한국판 더 라이프 스쿨을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최초의 것 그 이상이었으리라.
다큐멘터리 <HAPPY>의 제작자이자 <더 라이프 스쿨> 이 학교의 최초 파운더인 에이지는 말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얻었을 때, 갖고 싶었던 무엇을 성취했을 때, 어떤 특별한 이벤트가 시작되면 드디어 삶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이 순간이 삶이지요. 우리의 일상이 라이프입니다.
둘째 날 저녁 나는 많은 혼란과 마주해야 했다. 내가 그나마 알고 있던 정답들이 깨진 느낌. 10년을 이름만 대면 알만한 큰 회사에 다니며 좋은 강연들을 날마다 접했다. 그때마다 강사분들에게 치열하게 묻고 묻고 답을 찾던 나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질문해도, 아무리 연사의 경험치를 살려고 해도 그는 강사이고 나는 청중이라는 것을. 우리의 질의응답은 시간의 속성 그대로 너무 짧았고 한참 바쁜 그들은 다음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떠나 버렸다. 그것은 한 번의 예외가 없었다.
나는 좀 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데...
인생학교는 누가 연사인지 누가 학생인지 알 수 없었다. 언제나 그들은 내 옆에 있었고 함께 밥을 먹고 같은 숙소에서 잠을 잤다. 같이 탐험을 떠났고 똑같이 엉덩이 두 쪽 겨우 걸칠만한 의자에 앉았다. 모닥불에 앉아 그 모닥불이 다 타도록 그 안의 미처 꺼내지 못한 고구마가 검게 그을리다 못해 까만 재가되도록 우리는 이야기할 수 있다.
연사들의 강연은 그것이 목적이 아닌 한낱 장치에 불과했다. 나의 관심사를 연결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각과 정보를 주는 단순한 용도 딱 그만큼의 작은 몫이었다. 그들을 알아야 내가 가진 고민과 생각들을 가져다 붙여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간단한 강의를 듣고 이야기하고 이야기했다. 연사와 나는 함께 서 있었고 또 함께 앉아 있었다.
우리는 따로가 아니라 가깝다 못해 친구 같았다
아이들은 쉽게 친해지니까.
아이들은 명예도 지위도 학벌도 재력도 재고 따지지 않으니까.
둘째 날의 컬리너리 투어, 예술가 트랙, 기업가 트랙으로 나뉜 수업들은 연결을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언제나 유명 연사들의 강의는 가장 핵심이었고 나는 그것이 정답이라고 믿었었다.
이 곳에서 그 생각이 처음으로 깨졌다.
수많은 강의를 들었던 내가 진짜 원했던 것은 연결과 공유였다
이 곳에 오기 전 그리고 둘째 날 까지도 나는 많이 혼란스러웠다.
자꾸 답을 찾으려는 나. 세상의 기준에 빗대어 나를 생각하고 비교해 스스로를 취약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너덜너덜한 마음으로 들어온 새로운 세상.
내가 살던 세상과 너무 달랐기에 편안하고 따뜻한 위로보다는
에이지의 말처럼 우리의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니다.
특별한 것을 성취하거나
어떤 기준에 드디어 부합해 잘하게 되거나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만한 무엇을 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삶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저 이 순간이 지금이 우리의 삶 그 자체이다
갖지 못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갖고 싶은 것, 부족하고 아쉬운 것에 너무 집중하는 것일까?
이미 갖은것,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해서 이미 존재하고 내가 이미 가진 것들
나를 둘러싼 이 모든 것이 라이프가 아닐까
많이 비틀거렸던 인생학교의 둘째 날 검은 밤
이 멀리 빛 한 점 없는 장수의 학교까지 재즈 공연팀이 찾아 주었다.
드넓은 여백의 어둑한 공간을 가득 채운 악기의 선율이 가만히 내게 괜찮다 괜찮다 한다.
잠시 무리 속을 벗어나 조용히 방에 가 눕는다. 혼자서 창문을 통해 전해오는 음악과 간간히 새어 들어오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느끼며 일찍 잠을 불러온다.
인생학교에 오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며.
돈도 명예도 성공도 행복도 내 삶의 목적이 아니었다.
그저 이 삶을 사는데 그중 몇이 내게 필요했을 뿐.
가만히 혼자 드러누운 이 방의 나와 이 순간의 고독함, 동시에 전해지는 사람들의 따뜻함과 아름다운 음악.
그저 이것이 삶이고 라이프인데.
가장 흔들거렸고
그렇기에 가장 나와 많이 마주한
인생학교의 두 번째 날을 마친다.
실로 오랜만에 정말 달게 잤다.
어른들을 위한 인생학교 [2016 더 라이프 스쿨] 마지막 날 이야기로 곧 또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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