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하게 행동하면 강력하게 생각한다
"피청구인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이 인용되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긴장감을 반영하듯 뒷 머리카락에서 미처 헤어 롤을 빼지 않은 채 헌법재판소로 출근하는 모습이 하루 종일 포털과 SNS에서 공유되었다. 탄핵 발표 직후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는 박근혜 대통령을 17대 대통령에서 전 대통령으로 표기하는 발 빠른 모습을 보였다. 발표 직후 치킨을 시켜먹겠다는 사람들의 주문이 폭주하면서 배달앱의 서버가 폭증했고 직장인 또한 거리로 쏟아져 나와 평소 한산했던 식당들에 사람들이 넘쳐났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한숨뿐 아니라 눈물을 보였다. 발표 첫날 탄핵 반대 시위자 2명이 사망했고 수 십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읽기 거북할 정도의 욕설들이 종일 인터넷에 난무했다. 국민들은 드라마보다 더 비현실적인 극적인 뉴스에 몰입했고 그 긴 시간 동안 19회에 걸쳐 1500만 시민이 촛불 집회 참석을 위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태극기를 손에 든 태극 집회와의 마찰도 연일 일어났다. 헌법 재판소의 재판관 8명 모두 이제 논란을 끝내야 한다는 뜻을 밝혔으며 정치권에서는 입을 모아 이제 분열과 갈등을 끝내고 국민화합과 통합을 한 목소리로 내고 있다.
긴 92일간의 탄핵심판 과정이 끝난 대한민국의 역사적 선택의 순간.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것이 끝을 내는 선택이 아님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8명의 헌법재판관이 내린 만장일치 결론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대한민국은 헌법 제68조 2항에 따라 60일 이내 즉 오는 5월 9일까지 후임자를 선출해야 한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 후 첫 파면이라는 선택은 이미 현실이 되었고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선택의 순간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다가오는 5월,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매 주말 자발적 시민들의 참여로 모여든 촛불집회는 과연 이 선택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집회란 말이 무색할 만큼 유모차와 어린아이들, 수능 시험을 마치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비롯해 유독 정치에 무관심하다던 청춘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촛불집회와 그 뉴스를 매일 접한 사람들의 참여와 행동은 우리가 마주한 선택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무엇보다 과연 누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택될까?
민심을 한 사람 한 사람 셀 수 없으니 표본조사 기반의 여론조사 결과 추이로 짐작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처럼 보인다. 하지만, 선택과 관련한 심리학 연구의 유산을 놓고 보자면 여론조사를 동원하지 않고도 그 결과를 감히 전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탄핵 인용을 기정화하고 재빠르게 움직인 각 당의 전략을 이해할 수 있다. 궁금하지 않은가?
'생각이 행동에 영향을 줄까. 행동이 생각에 영향을 줄까’
이 질문은 '행복해야 웃을까. 웃으면 행복해질까’와 같은 범주의 질문으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의 촉발 우선순위에 관한 심리학 분야 가장 주된 연구 분야의 하나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사람마다 대답이 갈리지만, 오랜 연구 결과를 놓고 보자면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바로 행동이 선택에 더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행동을 하다 보면 그 행동이 늘게 된다. 특정 방향으로 계속 행동하다 보면, 그 이후에 행동이 영향을 받아 달라진다. 쉽게 말하면 행동이 생각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흥미를 위해 행동경제학 분야의 석학 엘렌 랭어(Ellen J. Langer)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시행한 '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를 먼저 소개할까 한다. 1979년 9월 외딴 시골 마을에서 수행된 놀라운 실험으로 70-80대의 노인들에게 타임머신을 타고 '딱 20년 전으로 돌아가라’는 주문을 하는 것이 핵심이다. 20년 전의 시간을 회상하라는 것이 아니라 20년 전의 그 모습 그때의 생각과 행동 그대로를 재현하라는 요청이었다. 노인들은 대부분 노인성 질환들을 앓고 있고 거동도 불편했으며 가족들의 도움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이 쉽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고립된 은둔처에서 실험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기적 같은 변화가 시작된다. 제대로 일어서기도 힘들어하던 노인들이 몸을 일으켜 음식을 나르고 토론에 참여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청력과 기억력이 향상되고 체중이 평균 1.5킬로그램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악력도 현저히 향상되는 등 명백하게 이들은 ‘더 젊어졌다’라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이들이 20년 전으로 돌아갔다고 마음을 먹자 실제적으로 그들의 육체 역시 영향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마음을 먹고 ‘행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변화가 일어난 것이었다.
처음엔 어색하고 부끄럽지만 이내 행동을 시작했고,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인들도 함께 그 상황에 동참하는 것을 보고 피드백 강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랭어 교수는 이것과 관련해서 전투기 조종 시뮬레이션 실험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사관후보생 19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시뮬레이터를 사용한 전투기 조종을 하도록 했고, 다른 그룹은 조종석에 탑승했지만 기계에 고장이 나서 부저 소리가 나고 있는 조종석 내부의 상황을 관찰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전투기 조종 그룹은 시력이 40%가 개선되었고 고장난 전투기 그룹은 변화가 없었다. 이 두 실험은 행동의 지배성을 밝히고 그 이후 행동에까지 미치는 영향력을 밝힌 것으로 사람이 어떤 상황에 참여를 시작하면 심리와 신체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였다.
한편, 서던 메서디스트 대학의 다니엘 하워드(D. Howard) 교수는 어떤 특정한 선택을 내리는 것이 그다음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가를 연구했다. 특히 사소한 긍정을 유도하면 사람들은 그다음 선택에 있어 선호율이 2배 이상 증가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행동 경제학에 있어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한데, 어떤 대상의 구매 수용률의 차이는 선택 순간 이전의 ‘Yes’ 행동을 했는지 안 했는지 여부와 관련 있다는 것이었다. 이 연구의 핵심은 참가자들의 생각을 조종한 것이 아니라 행동을 조정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사전의 작은 ‘Yes’가 이후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어 더 큰 ‘Yes’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작은 행동 변화가 복잡하고 고등한 인지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으로 체화인지(Embodied Cognition)이라 부른다. 맨하임 대학의 프리츠 스트랙(Fritz Strack) 교수는 단지 볼펜을 이빨 사이에 물어 일부러 웃는 근육을 사용한 것만으로도 시청한 만화를 더 재미있다고 느낀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런 입증된 연구는 수 없이 많다. 모두 생각의 변화에 의해 행동이 변하는 것에 더해 이전 행동 변화에 따라 생각 역시 따라 변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행동은 그 다음 행동에 반드시 영향을 준다.
탄핵 정국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난데없는 심리학 공부를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탄핵 정국 이후에 펼쳐질 사람들의 선택은 생각보다 이 연구들이 시사하는 바들이 크다. 대한민국 정치의 무능과 부패의 큰 축은 소위 사람들의 무관심과 냉대에서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느끼거나 무기력에 빠지면 그 대상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대신 외면하거나 부정하는 선택을 내린다. 자신감이 생기면 몸을 부풀리고 두려움이나 걱정이 생기면 몸을 웅크리는 동물적 본능과 유사하다.
권력의 부패를 시스템으로 견제하지 못할 경우 남은 대안은 국민들의 감시와 저항이다. 국민들의 선택이 곧 권력의 지형을 바꾸기 때문이다. 기득권의 전략은 그래서 언제나 국민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그들의 여론이 뭉치는 것을 갈라놓는 데 있었다. 지역 감정, 안보 불안, 국정혼란, 경제위기는 그래서 믿고 쓰는 최고의 무기기가 된다. 그래서 일까? 탄핵 인용이 발표되자, 이 모든 문제는 제왕적 권력 구조의 대통령제가 문제이니 개헌을 조기에 해야 국민 대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며 국민들의 선택을 또다시 위의 세 프레임에 가두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그 뜻은 위정자들의 속내처럼 생각대로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20년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 연기를 했던 노인처럼, 이제 우리가 권력을 견제할 수 있고 우리가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선택’을 내렸고 실제 그것을 경험하기 시작했으며 그것을 대세 감으로 한껏 자신감을 부풀리는 상황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신문 1면의 정치란을 무심코 넘겨 흘리지 않고 주의 깊게 읽는다. 바른 목소리를 내는 언론에 열광하고 집중하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곳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청춘들에게도 이제, 투표는 관심 없고 귀찮은 대상이라는 인식에서 투표를 하지 않는 사람은 찌질이라는 인식이 새롭게 새겨졌다. 전국의 연인원 1600만 명이 직접 거리로 나와 무려 19회 차나 개최된 촛불집회는 국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체화인지를 일으켰다.
대세 감은 어디로 이동하였는가?
이제 국민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이 관점에서, 다음 행동은 바로 5월의 대선이다. 이것이 투표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제 대한민국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의 선택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 흐름은 각 당의 경선 선거인단 참여도에 여실히 드러난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경선 선거인단 1차 모집 마감 결과는 무려 163만 명에 이른다. 그 결과에 고무된 민주당은 모집 기간을 연장하여 200만 명을 넘기려고 애를 쓰고 있다. 이것은 앞서 분석한 대로 이미 내린 선택은 다음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또한 200여만 명이 그들과 닿아있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인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관점을 생각할 때 상대당이 민주당의 대세감을 잡기에는 역부족으로 판단된다. 여기에 야당이 연합 전선을 공고히 할 경우 그 파괴력은 차기 대선 이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반 더불어민주당 연합 전선을 꾸리는데 더 골몰할 것이라는 점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는 지점이다.
확실한 것은 대한민국의 선택은 기득권이 제 아무리 노력해도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다. 행동을 하다 보면 그 행동이 늘고 이전 행동은 그다음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생각이 아닌 행동으로 이끌어낸 변화는 그 다음번 행동과 선택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것에 머물고 싶어 한다. 스트레스를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대세라고 느껴지는 것을 따라 선택하게 된다. 노동자들이 그들을 대변하는 노동자 관련 정당 대신 기득권을 대변하는 보수당을 지지하고,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에 몰리고 안정적인 교사직, 대기업에 몰리는 사회 현상이 그것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그 안정적이라 믿었던 익숙함 속에서 다른 것을 보고 경험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이 움직였고 시민들의 참여는 점 점 더 늘어났다. 친구를 따라, 도대체 뭐길래 궁금해서, 주변 사람들이 다 나가는데 나라고 빠지면 안 될 것 같아서 간 촛불집회일지라도 그 행동은 반드시 다음 행동에 즉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역사상 유례없는 국민들의 직접 선택의 순간을 우리는 오는 5월 마주할 것임에 분명하다. 또한 그 결과 역시 생각이 아닌 몸으로 행한 이전 행동에 큰 영향을 받아 선택될 것이다.
선택 칼럼니스트 이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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