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언덕에, 두 도시’와 영화 ‘미드소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모든 외국어 명칭은 정발판 및 정식 자막을 기준으로 하였습니다.
1. 포폴락과 포투예보
클라이브 바커의 단편 소설 ‘언덕에, 두 도시’의 등장 도시, 혹은 등장인물인 ‘포폴락’에는 먼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왔다는 한 가지 전통이 있다. 바로 1년에 한 번씩 이웃 도시 ‘포투예보’와 ‘거인 경기’를 하는 것이다. 사실상 두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일 년 내내 정성껏 준비하여 참여하는 이 행사의 내용은 간단하다. 마을 주민들이 서로의 몸을 엮어 두 개체의 거인을 만들고, 이렇게 탄생한 포폴락 거인과 포투예보 거인이 서로 합을 겨루는 것이다. 설명만 들으면 수많은 사상자가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전통처럼 보이지만, 작중 묘사에 따르면 그 정도로 큰 사고는 전혀 발생하지 않는 모양이다. 적어도 포투예보를 오랫동안 다스렸던 지도자가 죽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일어난다. 오랜 지도자를 잃은 포투예보의 시민들이 준비 과정에서 저지른 몇 가지 사소한 실수로 인하여 포투예보 ‘거인’은 경기 중 고통을 호소하다 못해 결국 무너져 내리고 만다. 망가진 포투예보는 더 이상 거인이 아닌, 그저 노끈과 천으로 서로를 연결한 채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일 뿐이다. 포투예보의 리더격 인물은 시체로 가득한 들판을 거닐며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을 확인하지만 그의 의도는 삶이 아닌 죽음에 있다. 도시가 멸망했으니 더 이상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는 듯, 그는 생존자들을 전부 총살한 후 마지막 한 발의 총알로 자신의 머리를 쏘아 버린다.
그렇다면 아직 살아남은 형제, 포폴락은 어떤가? 포투예보의 죽음에 당황한 포폴락의 리더격 인물도 도움을 청하러 가던 길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큰 충격을 받은 데다 지도자까지 잃어버린 신세인 포폴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있다. 노끈과 천으로 묶인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빠져나가고 싶다거나 죽을 것 같다며 불평을 호소하지 않는다. 발을 지탱하던 건장한 남성들 중 대부분이 죽었지만 남은 이들은 묵묵히 거인의 무게를 감당할 뿐이다. 관절에 묶인 유연한 사람들도, 입 안에서 ‘이빨’을 형성하고 있는 머리숱 없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포폴락은 여전히 걷고, 파괴하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시민들 중 일부는 죽었지만 포폴락 그 자체는 분명 살아 있다는 의미이다. 지도자를 잃은 포폴락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포투예보의 간접사인은 ‘지도자의 상실’인데, 같은 처지의 포폴락은 어떻게 살아남은 것일까?
2. 호르가
아리 애스터의 장편 영화 ‘미드소마’의 주요 배경이 되는 작은 공동체 ‘호르가’에도 포폴락과 포투예보의 거인 경기만큼이나 기이한 전통들이 존재한다. 그 전통의 절정에 있는 하지 축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이미 호르가 주민들의 일상생활이 온갖 전통과 미신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은, 영화를 본 시청자라면 누구든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72세가 넘은 노인들은 자연의 순리에 따르기 위해 자살하고, 특별한 행사마다 산 제물을 바치며, 마을이 나아가는 방향은 선천적 기형을 가진 인물의 ‘예언’에 의존한다. 그리고 마을 주민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여러 사람의 앞에서 격한 감정을 드러내면 나머지 주민들은 그 감정에 ‘공감’하듯 감정의 주인이 내는 소리를, 그 소리가 비명이건 울음이건 신음이건 간에 고스란히 따라한다.
마을 주민들 중 이 전통에 저항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늙었으니 죽어야 한다는 판정을 받은 노인들은 기쁘게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외국에서 머물던 청년들은 우정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 외지인 친구들을 유혹해 제물로서 데려오고, 몇 사람은 심지어 스스로를 산 제물로 바치기까지 한다. 살해당한 외지인들은 전부 나름의 방식으로 이 전통에 저항하지만 결국 끝까지 살아남는 건 유일하게 전통을 받아들인 주인공 ‘대니’ 뿐이다. 전통에 반발하고 마을에서 탈출하려던 ‘코니’와 ‘사이먼’도, 전통에 무관심하던 ‘마크’도, 마을이 숨기고 싶어 하던 전통에 엮인 진실을 들춰내려 하거나 의도치 않게 보고 만 ‘조쉬’와 ‘크리스티안’도 영화가 끝나기 전에 전부 죽는다.
아홉 사람이 죽었지만 축제는 계속된다. 제물로 바쳐진 이들의 비명 속에서, 그리고 그 비명을 따라하는 마을 사람들의 광기어린 소음 속에서 영화 ‘미드소마’는 막을 내리지만, 영화 속의 미드소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호르가는 여전히 굳건하다. 그렇다면, 평범한 주민들이 아닌 지도자격인 인물들이 죽는다면 호르가는 어떻게 될까? 미드소마를 이끈 ‘시브’나 예언자인 ‘루빈’, 혹은 두 사람 모두의 죽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태연할 수 있을까?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미 지도자 없이도 전통을 착실히 따르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고 홀로 울부짖는 대니의 곁에 모여든 젊은 여자들은 전부 평범한 주민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대니의 울음소리를 똑같이 따라한다. 어느 누구도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마치 여기, 호르가 안에선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3. 호르가: 포폴락일까, 포투예보일까?
다시 포폴락에게로 돌아가 보자. 비유하자면, 포폴락은 시브와 루빈과 모든 경전을 잃어버린 상황의 호르가나 마찬가지이다. 전통대로 만들어진 거인을 이끌어 줄 지도자도 없고, 거인을 만드는 전통의 근거이자 상대인 포투예보도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폴락은 여전히 살아 있다. 노끈과 천으로 엮인 사람들이 아직 남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붙잡고 있기에, 포폴락은 죽을 수 없다.
애초에 그의 형제 포투예보의 간접사인은 ‘지도자의 상실’이었으나 직접사인은 그로 인해 ‘허술하게 마무리된 옆구리’이다. 지도자가 없다 해서 포폴락이 곧바로 죽는단 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실제로 포폴락은 죽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지도자는 사라졌지만, 사람들을 엮은 노끈과 천이 새로운 지도자가 되어 포폴락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포폴락의 전통, 거인을 만들기로 한 목적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저 다리가 있기에 걷고, 목이 있기에 소리 내어 노래하며, 죽지 않았기에 걸을 뿐이다. 그리고 포폴락은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잠깐의 휴식과 이어지는 이동, 그리고 끊임없는 노래. 그게 포폴락의 새로운 목적이다.
반대로 호르가를 거인 도시에 비유해 보자. 이들은 포폴락과 포투예보 중 어디에 더 가까울까? 아마 포폴락일 것이다. 호르가의 주민들은 지켜보는 이가 없더라도 전통을 따르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포폴락처럼 눈에 보이는 노끈과 천으로 직접 연결된 건 아니지만,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더욱 튼튼한 노끈과 천으로 서로를 묶고 있다. 바로 소속감, 혹은 집단의 광기이다.
호르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인 뉴욕과 런던에서 몇 년을 보낸 ‘펠레’와 ‘잉마르’도 여전히 호르가의 영향력 하에 있으며, 애초에 호르가로부터의 자유를 원하지도 않는다. 호르가의 인물들은 72세가 넘으면 죽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어느 누구도 산 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예언에 반발하지 않는다. 운이 나쁘다면 그 제물이 바로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거인의 무게를 지탱하던 포폴락의 남자들처럼, 호르가의 주민들은 서로를 엮어 주는 소속감과 광기 안에서 집단을 유지시킨다.
호르가는 포폴락이다. 걷고 파괴하고 노래하는 포폴락처럼, 호르가는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노래하듯 비명을 지른다. 지도자를 잃고 구성원들이 다치거나 죽더라도 호르가는 이제까지 나아온 방향대로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자를 수 없는 노끈과 천이 그들을 엮어 두고 있기 때문이다.
4. 맺는말: 거인 앞에 선 사람의 선택
‘언덕에, 두 도시’의 두 등장인물인 ‘믹’과 ‘저드’는 소설의 후반부에서 드디어 포폴락을 마주한다. 두 사람과 함께 있던 노부부는 겁에 질려 도망치고 비명을 지르다가 짓밟혀 죽지만, 이미 거인의 모습에 압도된 믹과 저드는 경외에 차선 그 모습을 올려다볼 뿐이다. 결국 저드도 포폴락에게 밟혀 살해당하고, 운 좋게 살아남은 믹은 도망치는 대신 포폴락에게로 뛰어들어 거인의 일부가 된다. 믹의 행동은 애인인 저드를 잃은 충격이나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오로지 거인을 향한 순수한 경외감과 신앙심에서 나온 행동이다. 포폴락은 믹에게 이미 신이고 세상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결국 믹은 포폴락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포폴락에게 완전하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미드소마’의 엔딩 장면에서 대니의 모습도 이와 비슷하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사랑한다고 믿었던 애인을 손수 사지로 밀어 넣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대니는 잠시나마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나, 머지않아 환한 웃음을 얼굴 가득 떠올리며 영화를 마무리 짓는다. 이로써 마을의 전통을 완전하게 받아들인 대니는 포폴락에 받아들여진 믹과 마찬가지로 마을의 완벽한 일부가 될 것이다.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기에 ‘언덕에, 두 도시’와 ‘미드소마’의 내용은 상당히 끔찍하게 느껴질 것이다. 포폴락의 전통은 도시의 담합을 도모하는 것에서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으로 변질되어 버리고, 호르가의 전통은 처음부터 광기에 절여져 있었으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 이 끔찍한 거인들을 마주했을 때 저항하거나 반발하는 외부인들은 전부 살해당한다. 참으로 두려운 거인들이 아닐 수가 없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가장 두려운 것은 포폴락과 호르가가 아니라, 이들 거인 앞에 섰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이들의 선택이다. 둘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사회에서 다소 소외된 위치에 있긴 하지만, 두 사람 다 고향에서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무난한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 이토록 평범해 보였던 이들이 어떠한 두려움이나 분노도 없이,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 거인을 그저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게, 역설적이게도 두 작품의 가장 두려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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