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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라라 소소

일상의 얼음땡 -'

- 라라 소소 46

by Chiara 라라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살던 동네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작은 공터의 풀밭 중앙에 떡하니 놓여 있었는데 고인돌처럼 생겨서 그 모양만으로도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아지트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기어 올라가서 누워있기도 하고, 가에 앉아 발을 아래로 늘여놓고 달랑거리며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아래에서는 바위 한쪽에 얼굴을 묻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할 수 있었고, 바위 주변을 뛰어다니며 ‘술래잡기’와 ‘얼음땡’을 하며 놀기도 했다. 놀자고 약속한 적은 없어도 동네 아이들은 오후 시간이면 바위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저녁때까지 어울려 놀았다. 다만 바위 주변으로는 숨을 데가 별로 없어 숨바꼭질을 하려면 다른 곳으로 우르르 몰려가곤 했던 기억도 남아 있다.


해를 가려주거나 그늘이 될 만한 게 없어 봄, 여름, 가을에는 뜨거운 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놀았는데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햇볕이 덥고 지치기보다 맑고 투명하고 따뜻하게만 느껴진다. 아무리 눈이 부셔 얼굴이 찡그려져도 나는 종종 하늘을 바라보며 햇살을 만끽한다. 콧등에는 땀방울이 하나 도로록.




얼마나 큰 바위였을까.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조막만 한 아이들 여럿이 모여 오르내리고 뛰놀던 바위였으니 작지는 않았을 거다. 그 바위를 떠올리면 거대한 기운이 느껴진다. 지금의 나라면, 성인의 몸이라면, 혼자 딱 누울 정도의 크기일지도 모르겠다. 고인돌이 선사시대의 무덤이었던 것처럼 딱 그만큼의 크기. 어쩌면 딱 그만큼 지금 내게 필요한 바위일지도, 나에게 고인돌이 필요한 걸지도 몰라.




학교에 들어가면서 아이들은 바위에서 놀이터로 터전을 옮겼다. 어쩌면 아이들이 언니 오빠들 눈치를 보느라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놀 수 없어져 바위로 공간을 옮긴 걸지도 모르겠다. 윗동네의 작은 놀이터에는 초등학생들이, 아랫동네 놀이터에는 중학생들이, 그 중간 즈음과 동네 가장자리에 있던 야트막한 뒷산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머무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우리에게는 바위만이 안전하고 재미있게 마음껏 놀 수 있는 장소라는 걸 어린 마음에도 확연히 알 수 있어 우리는 의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바위에 모였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숨바꼭질’과 ‘얼음땡’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몸이 아무리 근질거리고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이면 안 된다는 규칙이 바로 그거다. 규칙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술래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움직여도 상관이 없어서 그렇다. 몸을 움직이는 걸 술래가 발견하면 나는 곧 술래가 되어 버린다. 술래가 되면 많이 움직여야 하고 넓게 살펴봐야 하고 장난치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을 감당해야만 한다. 술래를 약 올리는 친구들도 많이 있다. 술래는 한 명이고 나머지는 다수여서 몸과 마음의 순발력이 따르지 않으면 에너지만 낭비하고 계속 술래로 남아 있을 확률도 높아진다. 술래가 되지 않으려면 움직이지 않는 게 최선이다.


막 뛰어다니며 도망가다가 술래가 나를 잡을 것 같으면 ‘얼음’을 외친다. 얼어버리면 잡히지 않았다는 안심과 동시에 움직이면 안 된다는 긴장이 한꺼번에 나를 옥죄어 온다. 다른 친구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무도 위험을 무릅쓰고 내 얼음을 풀어주러 다가오지 않을 것 같은 마음에 불안해진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얼음인 상태로 술래가 바뀔 때까지 오래도록 고요히 머무르고 싶은 마음도 든다. 얼음이 되기 전에는 술래가 나에게 집중하며 나를 따라와 주었으면 싶다가도 막상 나에게 다가오면 몸이 굳어 버리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 얼음 상태. 술래 근처에서 용기를 내어 나를 녹여준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다가도 ‘땡’을 하며 바로 뛰어가 버리면 술래가 무서워 나는 또다시 얼음이 되어 버린다. 신나고 두렵고 긴장되고 재미있고 안심되고 고맙고 원망스러운 마음을 모두 느낄 수 있는 놀이, 그게 얼음땡이다.




아이였을 때는 얼음땡이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여러 가지 몸의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놀이였는데, 다 크고 나니 얼음땡은 내 몸에 단단히 자리 잡힌 일상임을 어느 날 깨닫게 되었다. 문제는 얼음이 되어도 바로 땡을 해줄 사람이 가까이에 없다는 거, 그리고 땡을 받아도 얼음이 오랫동안 녹지 않는다는 거.


나이가 들면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조금 더 지혜로워지고 조금 더 성숙해질 줄 알았다. 믿음이 깊어지고 신앙인으로의 삶에 익숙해지면 조금 더 인정 많고 조금 더 선하며 조금 더 넓게 모든 걸 다정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마음만 더 복잡해지고 망설여지는 순간들이 늘어난다. 더불어 당황스럽게도 생각보다 더 빈번히 얼음이 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차가 나를 향해 달려오는 직접적으로 위험한 순간에서부터 타인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무조건 주장하는 상대와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답답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소소하면서도 굵직하고 다양한 얼음이 존재한다. 내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을 때도 멈칫하게 되고, 나와 의견이 다르거나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도 주저하게 된다. 얼음.


몸이 움직이지 못하고 멈춰 버리는 얼음. 마음이 단단해져 버리는 얼음. 몸과 마음이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갈 길을 잃어버리는 얼음. 생각이 너무 많아 정리가 되지 않고 안에만 머물러 있는 얼음.


결국 얼음은 지체하게 만들고 멀어지게 만들고 상처를 남기며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어떤 이는 이 얼음이 차갑다고 느끼고 또 다른 이는 이 얼음 상태가 진지함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얼음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나 자신만이 알고 있는 얼음이다. 그렇게 땡이 미치지 못한 채로 또다시 얼음이 되고 그 얼음은 보다 커지고 보다 단단해져 어쩔 줄 모르는 상황 안에서 나는 그저 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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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참 더웠다.


밖에 나가든 집에 있든 어디에서든 땀이 줄줄 흘렀다. 외출할 때 윗옷 안에는 보통 민소매를 입는다. 그 옷이 땀에 흠뻑 젖을 때도 있었고 안 입는 게 조금이라도 더위를 피하는 방법인 것만 같아 윗옷만 입으면 몸에서 땀이 물처럼 줄줄 흐르는 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더위에 땀이 쉴 새 없이 흐르면서도 얼음 또한 함께 멈추지 않았다. 더위와 땡은 상관이 없었다. 얼음이 나를 시원하게라도 만들어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말, 마음만 굳게 먹으면 된다는 말, 의지가 약해서 그런다는 말, 좋게 생각하자는 말,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는 말, 참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참으라는 말, 이해의 범위가 다른데 이해하라는 말, 이해할 생각은 안 하면서 이해해 달라는 말.


얼음이 되고 싶어.


선풍기를 틀지 않고 밤에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새벽에는 싸늘한 기운도 느낀다. 그 기운으로 발치에 있던 이불을 끌어올려 온몸을 덮어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는 요즘이다. 낮의 햇볕은 여전히 따갑고 땀도 송골송골 맺히지만, 눈살을 찌푸리며 조금 더 오래 햇살을 만끽하고 싶어 진다. 얼음에 지쳐있는 나를 맑고 투명하게 비추고 있는 하늘이 보인다. 가을로 조금은 다가가고 있는 듯한 그런 파랑과 하양에 안심한 마음이 조금은 생긴다.


나에게 ‘땡’ 하러 오는 이가 아무도 없다면 내가 움직여야지 도리가 있나. 술래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움직여야지. 주위를 살피며 내 마음도 쓰다듬어야지. 그리고 어디에선가 따뜻한 이를 발견한다면 ‘땡’ 해달라고 해야겠다. 한 번 더 ‘땡’, 또 한 번 더 ‘땡’, 세 번은 해 달라고 매달려야겠다.


나도 당신이 ‘얼음’의 순간이 되면 곁에 있다가 당신이 원하고 필요할 때 ‘땡’ 해 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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