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곰곰이 그리고 유심히

- 라라 소소 112

by Chiara 라라

재주가 많으시네요,

처음 대면한 주임님이 회의가 끝나고 말을 건네셨다.


감사합니다, 하며 웃어도 될 일이었는데

내가 말이 많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잘하는 거에 대해서는 표현해도 괜찮다.'




회의가 있어 평소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아침에 몸이 너무 찌뿌둥했다. 일어나야 하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생생한 꿈에 시달리기도 했고 무언가 불편했던 잠자리였어서 정신이 차려지지 않았다. 잠을 깨려고 옆에 있던 책을 펼쳐 들었을 때 쓰여있던 말, 아니 내가 이해하며 마음에 새긴 내용이다.


다시 한번 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잘하는 거에 대해서는 표현해도 괜찮다.'




자화상을 통해 내 마음을 살펴보는 미술 치료에 관련된 책을 아침에 종종 펼쳐본다. 그림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고 심리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예술 치료 중에는 특히 미술 치료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어서이다.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하루를 시작할 때 조금의 위로와 어제보다 한수푼 더만큼의 용기를 얻고 싶어서이다. 사실은 이게 주된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밤늦게, 새벽 가까이에 잠이 들 때 하루를 보낸 나의 부족함이 자꾸만 떠오른다.

잠에서 깨어 콕콕 쑤시는 몸과 몽롱한 정신을 현실로 되돌리면서도 나만 너무 느리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모든 게 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벌어지는 주관적인 생각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건 쉽지 않다.

이렇게 해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듯, 밤낮없이 틈틈이 비관적이다. 이런 나 자신을 그렇게까지 싫어하지는 않다는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가끔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내가 객관화되기도 한다. 전면에서는 아니라고 과장되게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 후에 혼자 남아 눈동자를 위아래 양 옆으로 굴리며 되돌려 생각해 본다. 곱씹어 보면 맞는 구석이 있기도 하니까. 객관과 주관이 각자의 길을 허공에서 구불구불 돌아다니다가 슬며시 마주치는 그 순간의 자그마한 구석. 구석이어도 순간이어도 고개를 끄덕이며 약간의 미소를 짓는 나.


긍정형의 인간이었다.

거절할 줄 몰라서 수락하고 수긍하는 인간이었다.

잘 웃고 밝은 쪽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낼 줄 아는 인간이었다.


끄덕임과 미소는 찰나여도 과거의 나를 소환하는 중요한 의식이다.


지금의 나를 싫어하지 않는 만큼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굳이 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과거와 지금의 나는 모두 소중하다(고 이론에서 배운 대로 우선 이를 머릿속에 단단히 심어 놓고, 몸과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까지 시간을 흘려보내도록 해 보자).




'재주'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무엇을 잘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과 슬기'인데 내가 가진 건 무엇을 잘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과 슬기라기보다는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이다. 호기심에서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다가가는 용기가 과거에 있었고 그 용기 덕분에 지금 이곳저곳 조금씩 발 딛고 있는 공간이 생겼다. 잘하지는 않지만 하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관심이 나에게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게 타인의 입에서 재주라는 표현으로 일컬어진다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하나하나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서 조금 더 곰곰이 그리고 유심히 살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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