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만 돌아왔다.

- 라라 소소 116

by Chiara 라라

보통 일요일 저녁 미사를 드린 후에는 부모님 집에 간다. 늦지 않게 바로 가면 식사를 하고 계실 때가 많고, 회합이나 다른 일정이 있어서 시간을 조금 더 보내고 들어가면 식사가 끝나고 수원 오빠네 집으로 갈 준비를 하고 계시거나 이미 출발해서 집에 부모님의 온기가 남아있는 걸 느끼면서 빨래가 널어져 있는 모습을 마주하곤 한다. 이번 명절은 금요일 밤에 부모님께서 서울집으로 오시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수원집에서 장을 봤고 그중 명절에 사용할 재료들을 몇몇 개 가지고 오셨기 때문이다. 오빠네 식구들이 명절 전날에 온다고 했는데 그때 차에 싣고 오면 되지 무겁고 수고스럽게 이렇게 들고 가냐고 말씀을 드렸지만, 명절 전날은 너무 늦고 주말이 끼어 있으니 조금씩 천천히 준비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사실 그때부터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부모님께서 수원집으로 출발하실 정도의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엄마, 아버지께서는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냉장고에는 과일 및 다른 재료들이 가득 들어 있었고, 부엌과 그 옆으로 이어지는 베란다에는 몇몇은 손질되어있었고 다른 몇몇은 손질 중이거나 손질해야 할 음식 재료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자주 쓰지 않는 주방 기구들도 여러 개 꺼내진 게 눈에 띄었다. 내가 먹을 저녁상을 차려서 늘 그렇듯이 거실에 앉아서 먹는데, 엄마가 눈을 티브이와 손 쪽 위아래로 분주히 움직이며 밤을 까고 계셨다. 일주일에 한 번 뉴스와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는 나는, 밥을 먹으며 티브이를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엄마는 분명, 내일 아침부터 부지런히 저 많은 재료들을 다듬고 음식 만들 준비를 하고 밑 간을 하고 명절 음식을 만들 것이다. 쌍둥이 조카들이 어렸을 때가 더 나았던 게 아닌가 싶다. 수원집에서 명절을 보낼 때는 차례는 지내지 않았고, 당일에 식구들 먹을 음식을 지금보다는 훨씬 적게 만들었고 쉬었고 수원행궁을 가거나 가까운 카페에 갔었다. 형식적인 제사와 차례, 누구를 위한 걸까. 엄마는 식구들 먹이려고 만드는 거라고 했지만, 그러면 차례도 제사도 지내지 않고 그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기일에 미사를 드리며 기억하는 것처럼, 친조부모님의 기일과 명절에도 형식이 아니라 기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맞는 거 아닐까. 어쩌면 친조부모님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고 친가에 대한 애정이 티끌만큼도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엄마도 시부모님을 알지 못한다. 부모님 결혼 전에 돌아가셨으니까.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차를 만들어서 부모님께 드리고 티브이를 다시 보면서 천천히 말씀드렸다. 오늘 여기에서 자겠다고.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부모님께서 아침 식사를 하시고 치우는 소리를 들으며 방에서 나와 씻었다. 커피를 내리고 주섬주섬 전을 부칠 준비를 한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전 부치는 전기 프라이팬을 꺼내어 설치하고 밀가루와 쟁반과 그릇과 수저와 필요한 걸 내 손에 닿기 편하게 이리저리 배열하며 놓는다. 전을 담을 대나무 바구니에 두툼한 티슈를 깔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낀다. 반죽을 적당히 쥐고 모양을 만들어서 밀가루를 입히고 계란물에 퐁당 담근다. 밑간 한 고기와 재료들의 반죽은 엄마가 미리 만들어 놓으셨다. 표고버섯 전을 시작으로, 동그랑땡을 이어 부친다. 아침 먹고 천천히 출발하면 차가 막혀도 점심때에는 도착할 거라 생각했다. 11시가 넘었다. 12시가 지난다. 엄마가 맛보라고 작은 접시에 잡채를 담아 주었다. 1시다.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잡채를 먹어서 배가 고프지는 않다.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다.


그 전후로도 몇 번의 교통사고가 있었지만 대학생 때 차에 직접 치인 사건 이후로 다리와 허리 통증을 평생 동반하고 있다. 의자 없이 맨바닥에 앉아 있으면 허리 통증이 먼저 올라오고 고관절부터 슬관절까지 통증이 아래로 내려간다. 다리와 허리 자세를 자주 바꿔 주어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일어나려고 하면 끙 소리가 절로 나오고 손으로 지지해 주지 않으면 그나마 제대로 서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정상인처럼 보이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왜 병원을 안 가니, 치료를 받으렴, 약을 먹고 운동을 하는 게 좋겠다, 수많은 충고와 조언을 들었다. 다양한 검사를 받았고 의사들은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다. 한방과 양방뿐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치료를 받아 보았는데도 통증은 여전했다. 그 뒤로는 병원에 가지 않는다. 치료를 받지 않는다. 아프면 찜질하고 손이나 기구로 마사지를 한다. 고통에 대처하는 자세, 참는 건 익숙하다.


오색꼬치 전, 연근 전을 부친다. 내가 전을 부치는 동안 엄마는 더 분주히 다른 음식들을 만드신다. 2시가 넘어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이번에는 진한 블랙에 오트밀크를 넣고 라테를 만들어서 다시 전 앞에 앉았다. 두부 전을 부친다. 녹두전을 부칠 때 둥이 조카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뛰어 들어왔다. 3시가 넘은 시각이다. 수원집에서 가져온 동태를 꺼내어 제대로 녹았는지 확인한다. 조금 덜 녹았는데 만들던 전을 마무리하고 동태 전을 마저 부쳤다. 깻잎 전을 만들려 했는데, 깻잎을 사러 나가야 해서 제일 좋아하는 깻잎 전은 포기하고, 남겨둔 반죽으로 동그랑땡을 더 만들었다. 그리고 정말로 마지막, 남은 계란물로 계란말이를 만든다. 나는 잘 못 말아서 엄마가 말아 주었다. 화를 삭이며 조카들하고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카들은 남아 쌍둥이다. 부엌에서 할머니가 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남아기 때문에 더 자주 성과 역할과 편견에 대해서 다루려 나는 다분히 노력한다. 하지만 늘 조심스럽고 나 때문에 소리가 커지곤 한다. 명절이니까 나는 분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늘 내가 문제니까 나만 가만히 있으면 소리가 커질 일이 줄어든다.


어느 정도 음식 준비가 정리되었다. 엄마는 저녁 식사 준비를 바로 하려고 하셨다. 나는 토할 것 같았다. 오빠네 식구들은 서울에 도착해서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먹고 시간을 보내다 왔다고 했다. 가만히 이렇게 있을 수 없었다. 다이소에 물건 바꿀 게 있어서 엄마를 설득해서 조카들과 함께 밖에 나왔다. 바람을 쐬니 좀 괜찮아졌다. 둥이 조카들과 있으면 늘 밝아지고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게임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대화를 나누며 전철 한 정거장이 넘는 거리를 걸었다. 돌아올 때는 두 정거장 전철을 타고 왔다. 식구들 저녁 식사로 엄마는 코다리조림과 낙지볶음을 만들고 갈비탕을 끓이셨다. 엄마는 가만히 앉아서 쉬는 법이 없다. 오빠와 새언니는 저녁을 먹고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설거지를 하고 조카들을 각자 씻기고 같이 놀다가 책을 읽어주고 재웠다. 엄마는 여전히 무언가를 조곤조곤하고 계셨다. 수원집에 보낼 물건이 있어서 짐을 싸러 집에 가야 했다. 더 있기에도 너무 힘들었다. 조금이나마 나 혼자의 시간이 필요했다. 11시 넘어서 부모님 집을 나섰다. 엄마를 꽉 한번 안고 고생했다고, 일찍 주무시라고 말하고는 나왔다.


피곤하고 졸려도 나 혼자의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나는 바로 쓰러져 버리는 사람이다. 정신이 무너져 버린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서 미지근한 물로 떨면서 샤워를 하고 감차집을 먹으며 책을 펼치고 꾸벅꾸벅 졸면서 먹고 읽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짐을 정리하고 싸고 나니 몇 시간 자지 못하고 또 일어나서 부모님 집으로 가야 했다.


캐리어를 끌고 바람을 가르며 서둘러 갔다. 오빠는 자고 있었고, 엄마는 부엌에 있었다. 새언니와 조카들은 거실에 있었고 조카들은 신나서 레고를 갖고 놀고 있었다. 아버지는 샤워를 하고 계셨다. 조카들 옷 입으라고 얘기하고, 차례상을 차릴 상을 두 개 꺼냈다. 조카들의 도움은 필요 없지만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다. 접시에 음식을 담을 때도, 차례상을 차릴 때도 조카들에게 소소한 걸 시켰다. 함께하는 마음을 길러주고 싶다.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누구를 위한 차례일까. 설거지를 하는 동안 첫 번째 차례 절을 했다고 한다. 나는 몰랐다. 형식적으로 세 번의 절이 끝났다. 정말 형식적이었다. 아버지의 부모님이다. 하루 종일 몇 날 며칠을 준비해서 차린 차례상인데 몇 분만에 끝나버렸다. 준비한 정성이 조금이라도 보답되는 느낌이 아니고 허무만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세뱃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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