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 소소 117
과학소설을 읽어보면 우월한 유전자만 선별해서 원하는 아이를 만드는 장면이 종종 나오곤 한다. 그런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 속에서 평범한 길을 걸으며 태어난 아이는 괴물로 인식되고 만다.
불평등과 공정하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J가 이런 말을 했다.
삶은 공평하지 않아요. 태어나면서부터 불공평의 시작이에요. 내가 태어날 때부터 다리의 사용이 편하지 않아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라 어디를 가든지 이동에는 불편이 동반하죠. 저상 버스를 타도 나 때문에 출발 시간이 지연되니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됩니다. 주위의 눈치를 보게 될 수밖에 없어요. 엘리베이터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면 그다음에는 바로 바닥에 돌출된 턱에 부딪히거든요. 만약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삶을 영위하는데 크게 차이가 없다는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다리를 사용하는 데서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휠체어 이동에 있어서는 불편을 느끼지 않았겠죠.
우월한 유전자에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장애가 될 만한 유전자가 절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런 선택은 하지 않는다. 아이의 삶을 위해서라는 표면적인 이유가 있지만, 그건 양육자가 편하고 싶다는 변명의 일종이 아닐까.
비장애인이 더 많은 세상이다. 장애인은 괴물이 아닌데, 소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군가는 괴물로 취급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수의 당연함과 소수를 생각하지 않는 무심함. 무심함의 세계화에 내가 말없이 또 지각없이 동조하고 있는 건 아닐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