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는 무구하다

- 라라 소소 118

by Chiara 라라


호두라는 이름의 반려견을 알고 있다. 호두는 우리 엄마의 친구의 손주의 이모할머니의 반려견이다. 나는 엄마 친구의 손주를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고, 호두는 그 아이의 집에 종종 머무르곤 한다. 호두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막 들어갔을 때 아이와 식구가 되었다. 아주 어린 강아지였다. 걸을 때도 뒤뚱거렸고 이제 막 달리기를 배우는 듯한 자세로 바닥을 뛰어다녔는데 발톱 때문에 타다 타다닥하는 소리가 호두의 걸음을 따라다니곤 했다. 아이와 함께 호두가 성장하는 걸 보고 싶었으나, 호두는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혼자 사시는 아이의 이모할머니 집으로 가게 되었다. 아이는 어려서인지 호두의 이사를 많이 슬퍼하지 않았다. 어쩌면 어린아이가 더 어리고 약한 생명체를 돌보아야 한다는 게 은근한 부담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 호두는 해맑았다. 누구에게든지 꼬리를 흔들었고 반가워하며 다정했다. 아이의 이모할머니 집에서 호두를 본 적이 없으니 잘은 모르겠지만 호두는 그 집에 가서도 슬퍼하지 않고 타닥 타다닥 소리를 내며 뛰어다녔을 것이다. 조금 더 넓고 조금 더 편안한 집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호두를 그리워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였을까. 다시 만나면 호두를 보내지 않으려고 하면 어쩌나 걱정해서였을까. 호두를 다시 보내고 싶지 않았어도 때 쓰거나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텐데. 아이는 호두를, 호두는 아이를, 서로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얼굴과 표정은 여전히 아기였지만 전체적으로 조금 커졌다. 털이 복슬복슬해서 몸이 보이지 않았는데 안아 올리려고 몸을 만졌을 때 무겁고 두툼해진 몸이 느껴졌다. 호두는 꼬리를 흔들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시선을 놓치지 않고 똑바로 올려다보며 만져달라고 빙글빙글 돌았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오는 동안에도 문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이렇게 꾸밈없이 맑고 깨끗하고 순박하게 나에게 다가와 주는 생명체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아마도 없겠지. 호두는 무구하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변함없이 따뜻하고 다정하게 다가갈 것이다. 그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건지 궁금하기도 하다. 인간이라는 생명체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마음일지도 모르고, 나조차 감히 지닐 수 없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다음에 만난 호두는 여전히 아기의 얼굴과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더 이상 커지지는 않았고 살은 조금 더 찐 것 같았다.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눈은 반가워하고 있지만 몸을 편안히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 못한다는 거였다. 아이의 말에 따르면 호두는 비만 판정을 받았고, 비만으로 인해서 관절에 무리가 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뛸 수 없다고 아이는 무심한 듯 툭하고 말했다. 아이는 이제 자기 친구들과 더 많이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다. 호두는 아이보다 더 빠르게 성견이 되어가고 있다. 받침대를 이용하지 않으면 소파에 올라갈 수 없고 내려오지도 못한다. 식사를 조절해야 하니 배가 고파도 밥을 많이 먹지 못한다. 산책은 하지만 마음껏 뛰어다닐 수도 없다. 타닥 타다닥 소리를 들으며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의 마음은 사라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양말을 좋아하던 호두는 여전하다. 양말을 물고 흔들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내가 쳐다보고 있으면 살며시 나에게 다가온다.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따뜻하게 바라봐 준다.


바로 전날만 해도 세상에서 유일하게 다정한 호두가 있었는데, 단 하루 만에 아무도 반기는 이가 없다. 아이만 특별한 표정 없이 문을 열고 인사를 한다. 호두가 없는 집은 고요하다. 날은 풀리고 있고 봄으로 가고 있지만 갑자기 얄궂은 겨울이 나에게 다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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