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의 순간

- 라라 소소 121

by Chiara 라라

공원 풀밭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곳곳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녁 9시에 알람이 울렸다. 아픈 이들을 기억하며 기도를 바쳤다.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일부가 나와 같은 지향으로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이 온라인 독서 모임에 올라왔다. 읽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나처럼 그 책을 읽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명동 성당 성모 동산 앞에서 사람들이 촛불을 바라보며 서 있다. 그들 사이에 나도 함께 서 있는다. 각자 마음속에 있는 말을 예수님께 건네고, 원하는 바를 성모님께 함께 기도해 달라고 청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 따로 떨어져 있는 시간도 자주 필요하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당신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약간 애틋하기까지 하다. 조금 그립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움은 내가 하루를 살아가게 도와준다. 당신들이 나로 인해 지치게 될까 봐 걱정하는 마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


애틋한 마음과 그리움이 차곡차곡 쌓이면 함께함이 떠오른다.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누군가 내민 손을 덥석 잡기도 한다. 어디에도 누구의 손이 없으면 고개를 조심스럽게 갸웃거리며 내가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허공을 멍하니 바라본다. 나의 손은 내밀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허공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손을 맞잡기 위해 존재한다는 듯이.




‘따로 또 같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 아름다운 말이다.




새로운 거에 호기심이 많이 생기는 사람. 호기심에 비해 새로운 걸 행하는 데는 더딘 사람. 결과적으로 겁이 많고 느린 사람.


호기심이 많은데 그 호기심이 사람이나 인간관계와 관련된 부분이면 나도 모르게 주저하게 된다. 주저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고 시간이 지나다 보면 더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워지고, 그렇다면 안녕. 새로움은 도전이다.


혼자 할 수 있는 새로움에 대해서는 주저함이 별로 없다. 나 혼자 할 수 있으니까, 어찌 됐든 관계를 굳이 맺지 않아도 되니까, 서로 노력하고 그걸 맞춰가는 긴장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니까,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알아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늘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유. 안주하는 게 아니라는 아주 좋은 핑곗거리.




같은 장소에서 각자의 일을 하는 것

다른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는 것


나는 당신을 모르고 당신도 나를 모른다.

나는 어쩌면 당신들을 알고 있고 당신들도 어쩌면 나를 알고 있다.


친밀함이 자연스럽게 서서히 스며드는, 하지만 인식이라는 애씀을 하려 하지는 않는 타인이 그리운 지인보다 편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그게 바로 ‘따로 또 같이’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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