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조선의 첫 사제>, 이충렬
정아야,
낯선 사람이나 별로 친하지 않은 타인에게 너의 내밀한 속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있니?
며칠 전에는 서소문 성지에 다녀왔어. 성지 순례나 성지 역사박물관을 둘러보려는 계획은 아니었어. 가뜩이나 요즘 집중도 잘되지 않아서 작업 진도가 나가지 않는데, 날씨가 갑자기 다시 덥고 습해져서 집에 있을 수가 없겠더라고. 집 근처 카페에서 시원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기분전환을 하고 작업에 다시 돌입할 수도 있었겠지만 조금 멀리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문득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 안에 도서관이 있다는 게 생각이 났어. 책을 빌릴 수는 없고 안에서 읽기만 할 수 있는데 공간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교회서적, 예술, 인문, 역사, 문학, 아동도서 등 생각보다는 많은 책이 구비되어 있다고 들었거든. 어떤 책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뭔가 특별한 느낌이 들 것 같기도 해서 눈여겨보았었어. 물론 인터넷에서. 코로나도 시작되기 전에 한참 전에, 서소문 성지에 가보고 싶어서 찾아갔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공사 중이어서 가림벽이 크게 쳐져 있었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앞에 있는 건물 위로 올라가 건물과 건물을 연결해 주는 트여있는 복도식 공간에서 가림벽이 쳐져 있던 그 안을 넘겨다봤던 기억이 있는 곳이야. 결국 그전에도 후에도 안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거지.
서소문 성지 근처에는 한국에서 아름다운 성당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약현 성당이 있어. 서소문 성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박해 시대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 그 정신을 본받기 위해서 지어진 성당이야. 붉은 벽돌에 서양식 건물이고 명동 성당과 닮았는데, 작고 아담해. 내부에는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오는 빛이 정말로 아름다운 곳이야. 그래서 더 따뜻해 보이는 곳이기도 하고. 언젠가 너도 이곳에서 하는 혼배 성사에 다녀와서는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얘기하기도 했었어.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회사에 취업하고 나서야 세례를 받았던 너는 가톨릭이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신앙이라든지 믿음이라든지 성당이라든지 크게 관심을 갖지는 않았었지. 내가 성당에서 매주 미사를 드리고 성당 친구들과 어울리고 봉사하며 시간을 보내는 걸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어도 나와 함께 성당에 가지 않았던 것과 같은 결이야. 우리가 함께하지 않았던 몇 안 되는 활동 중에 하나. 그래서 그때 나와 함께, 아니 내가 세례를 받고 나서도 넌 세례를 받지 않았던 거고. 그런 너였기에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려도 좋겠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았어. 마음이 따뜻해져 왔고. 물론 약현 성당이 너무 예뻐서 그 예쁜 공간에 있는 신부가 너무나도 돋보여서 그런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성당에서 하는 결혼식은 미사이기 때문에 일반 예식장에서 하는 예식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신자가 아닌 하객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거든. 그래서 너의 그 마음이 하늘로 조금 더 열린 걸 거라는 생각을 해서 더 기뻤던 것 같아. 약현 성당에서의 혼배 미사는 그동안 여러 번 참석했지만, 혼배 미사가 끝나고 서소문 성지를 둘러볼 생각은 해 보지 못했어. 둘 중의 하나였겠지, 혼배 미사에서 오랜만에 만나게 된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조금 더 즐겁고 반가운 시간을 이어서 보냈거나, 혼배 미사 하는 동안 많은 사람 틈에서 벌써 기운이 빠져버려 더 이상의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고 빨리 집에 돌아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느리지만 나름 신속하게 그곳을 빠져나왔거나.
도서관은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 안에 있었어. 서소문 성지는 집에서 한참이 걸리는 곳이야. 전철역에서 내려서도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거리이고, 버스를 타도 지도상으로는 그렇게 가까운 정거장이 아니어서 어떻게 갈까 고민하다가 일단 전철을 탔어. 여러 번 환승을 해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전철을 갈아타야 하는 곳에서 내려서 버스로 환승을 했어. 요즘에는 환승 시스템이 이렇게 잘 되어 있는데, 예전에는 환승이라는 게 없었다잖아. 우리 어렸을 때는 한 번 버스를 탈 때마다 한 번의 요금을 냈고, 내려서 전철을 타거나 다른 버스를 타더라도 그만큼의 요금을 또 지불했다면서 불편하기도 했고 차비도 많이 들었다고 엄마가 얘기하던 게 기억나. 그래도 그때는 교통비가 이렇게 비싸지는 않았겠지? 너무나도 당연하게 어떤 시스템을 사용하며 자란 세대는 그전 세대의 놀람도 불평도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아. 당연하니까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도 있겠지만. 전철 안은 냉방이 풀로 가동되어서 소름이 오소소 돋기도 했는데 버스는 쨍쨍한 태양 빛 때문인지 아무리 냉방이 풀로 가동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적당히 따스한 기운까지 받을 수 있어서 왠지 여행을 가고 있는 듯한 착각에 잠시 빠지기도 했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너무 덥고 습해서 그 기분이 바로 사라져 버리기는 했지만. 지도 앱에서 가라는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건물 사이로 어떤 통로가 보였고 그 통로 건너편에 ‘서소문 성지’라고 쓰여 있는 듯한 그런 표지판이 살짝 보이더라. 그쪽으로 발을 옮겨 걸어갔는데 바로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 표지판이 내 눈앞에 우뚝 솟아났어. 지도에서는 이렇게 가까운 길을 잡아내지 못했던 것 같아. 아무리 기계가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손으로 직접 했을 때 더 좋고 세밀한 게 있는 것처럼, 초행길에는 지도 앱이 유용하다고 하더라도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지름길까지는 잡아내지 못할 거라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지. 어찌나 반갑던지, 하느님 감사합니다!
나의 목적지는 도서관이었잖아. 도서관은 역사박물관 지하 1층에 있다고 했어.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 표지판을 따라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진입 광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중앙에 커다란 조형물이 있었어. 붉은색에 뾰족뾰족하니 형틀 같기도 한 모양으로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고, 아래에는 순교자들을 동여맸을 굵은 밧줄 같아 보이는 그런 조형물. 가까이 다가가서 설명을 읽어보니 [순교자의 칼]이라는 작품이더라. 제목만 읽었을 때, 칼이라는 단어로 나이프를 생각했는데 ‘조선시대 죄인들의 목에 씌웠던 칼을 형상화하여 중첩 배열함으로써...’ 이런 설명을 읽으며 아.. 목에 씌웠던 형틀을 칼이라고 했었지, 깨달음과 동시에 이 조형물이 엄청 무겁고 숨 막히게 다가왔어. 어깨를 짓눌르고 있었겠지, 칼이. 난 입구 광장에서부터 압도당했던 것 같아. 유리문을 통과해서는 자연스럽게 내부에 있는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었어. ‘순교자의 길’을 의미하는 작품들이 하나씩 이어져 있었는데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 몸을 찌르는 듯하고 가슴이 쪼그라드는 듯한 그런 이상한 느낌이 들더라. 작품을 보고 작품 설명을 읽고 그 옆에 있는 묵상거리를 읽으면서 다시 작품을 보고, 그렇게 천천히 한 걸음씩 안으로 들어가니까 이 ‘순교자의 길’ 작품들만 보았는데도 온몸에 힘이 다 빠지는 것 같았어. 작품 하나하나 그 앞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시켰나 봐. 순교는 곧 죽음을 의미하지. 산 자들에게 순교자라는 말을 쓰지 않잖아.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순교가 ‘모든 압박과 박해를 물리치고 자기가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일’이라고 쓰여있어. 이건 사랑일 거야. 사랑이 아니라면 어떻게 목숨까지 바칠 수 있겠어.
[순교의 길] 끝에는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어.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정수기도 있었고 의자도 있었고. 텀블러를 꺼내서 물을 꿀꺽꿀꺽 마셨을 거야. 평소에는 물을 그렇게 많이 마시는 일도, 꿀꺽꿀꺽 소리 내어 마시는 일도 없지만 갑자기 목이 탔거든. 그러고 나서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어. 미안한 마음도 올라왔고. 나의 사랑은...? 나의 순교는...? 나는...?
의자 뒤로는 유리창이 있었고 그 유리창을 통해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가 있었어. 아래에는 사람 형상을 한 조형물들이 듬성듬성 서 있었어. 벽을 바라보는 형상도 있었고, 서로 가까이 있는 형상도 있었고, 벽에 거의 머리를 기대고 있는 그런 형상도 있었어. 우리 인간과 비슷한 크기려니 짐작되는 그런 형상들이었어. 어쩌면 그보다 더 클지도 모르겠고. 그 조형물 사이를 한 관람객이 천천히 거닐었는데 그걸 보면서 소름이 끼쳤어. 산 자와 죽은 자들이 같은 공기를 통해 위층에 있는 나에게로 한꺼번에 올라오는 것같이 느껴졌거든. 한숨을 크게 쉬고, 깊은숨을 얇고 길게 오랫동안 내뱉었어. 호흡을 조절할 필요가 있었어. 진정할 필요도 있었어. 모든 기운을 다 빼고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지. 삶과 죽음은 무엇이며 사랑은 또 무엇이길래 하는 생각들로 복잡해진 머리는 정리가 되지 않았어. 휴우, 하며 또다시 한숨을 내쉬고 일어서는데 앞에 도서관이 있더라. 나의 원래 목적지였던 도서관.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어. 동선을 따라서 아래층으로 아까 그 사람 형상의 조형물이 있었던 아래층으로 이끌리듯이 내려가야만 했어. 그렇게 지하 1층, 2층, 3층까지 내려갔고, 천천히 둘러보고 읽고 느끼고 머무르고를 반복했어. 모든 공간에는 순교가 있었고 사랑이 있었고 아픔과 고통과 희망이 있었어. 마지막으로 성 정하상 기념 경당에 잠시 머물렀어. 너를 생각하며 기도했어. 너는 어느 경계에 있을까. 나의 정아.
밖은 여전히 덥고 습했어. 그래도 구름이 해를 조금씩 덮고 있었고 확실히 지난주보다는 해가 조금이라도 짧아진 것 같아. 가을을 떠 올릴 수 있는 뭉게구름들이 뭉게뭉게 퍼져있는 하늘이야. 아름다웠어. 이제는 조금씩 이런 자연의 모습도 내 눈에 들어온다. 슬프게...
박물관이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지하로 이루어져 있다면, 박물관 위, 지상 1층은 공원으로 꾸며져 있었어. 나중에 찾아보니까 지상 서소문 역사공원으로 시작해서 박물관 내부로 이동하는 관람 경로가 있었더라고. 다음에는 그 경로대로 천천히 이동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공원 한구석에는 [노숙자 예수]라는 유명한 작품이 있어.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낮은 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노숙인의 모습으로 표현한 작품인데, 처음에는 신성모독이라고 비난과 항의를 받았대. 그런데 교황청에서 바티칸 인근에서 얼어 죽은 노숙인을 기리기 위해 이 작품을 설치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히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직접 축복하면서 관심을 받아 세계 각지에 설치된 거라고 했어. 노숙자 예수님의 얼굴은 담요로 가려져 있어. 비쭉 튀어나온 발등에는 못 박혔던 흔적이 선명히 보여.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큰 고통이 전해지는 것만 같아.
정아야, 아픈 이들을 바라보던 예수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순교자들의 넋을 만나는 예수님은 어떨까. 죽어서 하늘로 올라간 이들을 예수님은 어떻게 위로하실까. 모든 죽음은 예수님을 만나는 길이 맞을까.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돌아서는데 뒤쪽에 누군가 있는 게 보였어. 나처럼 노숙자 예수님을 뵈러 온 사람이겠거니 하며 무심히 터벅터벅 지나가는데 그 사람이 나를 불렀어. 글라라 선생님, 하면서. 내 세례명으로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그 옛날 주일학교 학생들밖에 없을 텐데. 중고등부 주일학교를 다닌 학생들은 대학에 입학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습관처럼 선생님이라고 부르곤 했어. 어느 나라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멀리 해외로 이민 간 학생이더라. 1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기억이 바로 나는 게 신기했어.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갑자기 한국에 들어왔어요. 할머니는 혼자서 오랫동안 아프셨던 것 같아요. 자식들이 다 외국으로 떠나고 당신은 가지 않겠다고 홀로 남으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이 외로우셨을 것 같아요. 할머니도 가톨릭 신자셨는데 제 신앙의 모태가 되었어요. 저도 거의 성인이 되어 이민을 나간 거라 그전까지는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할머니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런데 왠지 모르게 허망하게 돌아가신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파요. 부모님도 원망스럽고 나 자신도 한심스럽고 무엇이든지 탓하고만 싶어 져요. 하지만 하느님께로 가셨을 테니까 너무 슬퍼하지는 않으려고요. 몇 년에 한 번씩은 한국에 왔었는데 최근에는 코로나도 있고 해서 거의 못 왔었거든요. 제가 올 때마다 서소문 성지가 공사 중이었어요. 할머니는 다른 성당 할머니들이랑 종종 오셨었나 봐요. 전철이 공짜라서 좋다면서 전철로 통하는 성지들을 할머니들이랑 운동 삼아 다니신다고 하셨거든요. 할머니랑 함께 와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요. 할머니가 보고 싶어요.
다 커버린 이 아이는 나에게 기대지도 못하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고 그냥 흐르는 눈물을 크게 뚝뚝 흘리면서 서 있었어. 고작 몇 년 동안 주일학교에서 선생도 아니면서 선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했을 뿐인데, 나와 따로 인연을 맺고 연락하고 지낸 사이도 아니었는데, 10년이나 넘게 지나서 둘 다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는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을 나이인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나에게 털어놓았어. 갑자기, 아무런 연고도 없이. 노숙자 예수님 옆에서. 우리가 여태껏 그랬듯이 앞으로도 거의 만나기 힘든 사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일지도 몰라. 나도 하마터면 너의 이야기를 할 뻔했어. 같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을지도 몰라.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흘렀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그 순간만큼은 단 하나의 시간이었을 거야.
도서관은 다음에 다시 들러야겠어. 하지만 다음번에 온다고 하더라도 또다시 난 이끌리듯이 도서관보다는 작품들과 순교에 머무르게 될 것 같아. 삶과 죽음을 생각하면서. 너를 기억하면서.
미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