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에게 - 25

<아마도 너라면>, 코비 야마다 글, 가브리엘라 버루시 그림

by Chiara 라라

정아야,

민주가 아기를 가졌어.


지난주에 공군 웨딩홀에서 결혼식이 있었거든. 군인들은 일반 예식장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예식장이 따로 있는 것 같아. 내가 갔던 공군 웨딩홀에서 조금 떨어져서는 해군 웨딩홀도 있었어. 전철역 근처는 아니었고 지도상으로 전철역에서 약간 떨어져 있었는데 걸어서 10분이라고 나와 있었어. 날씨가 오랜만에 그다지 덥지 않아서 산책 삼아서 걸었는데 낯선 곳이어서 그랬는지 생각보다는 도착하는데 오래 걸렸어. 우리가 늘 막냉이라고 불렀던 수현이 있잖아. 수현이가 결혼했어. 막냉이도 이제 벌써 서른이 다 되어가더라고. 한 해가 지나가는 건 빠르다는 생각이 들어도, 내 나이는 생각을 잘하지 않게 되는데 훌쩍 커버린 상대를 바라보니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 세월이 지나고 농담 삼아 웃으면서 하는 말처럼,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된 거야.


민주가 배가 불룩해서 결혼식에 왔어. 언니, 잘 지냈어요? 물어보는데 얼굴은 편안해 보였고 모든 것이 순탄해 보였어. 민주의 임신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배가 이렇게 많이 나와 있을 줄은 몰라서 약간 당황스럽기도 했어. 출산 예정일까지 딱 38일이 남았다고 하더라. 만삭인 거지. 주위에서 만삭의 임신부들은 이동을 힘들어하던데 민주는 그렇지 않아 보였어. 오히려 수현이 결혼식에 온 걸 기뻐하는 눈치였어. 수현이를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초기에 입덧이 심해서 아무것도 못 먹고 움직이기조차 힘들어서 일을 많이 쉬었는데 또 그 시기가 지나니까 이제는 살도 많이 찌고 회사도 최근까지 잘 다녔다고 하더라고. 원래 마른 체형의 사람은 임신을 해도 그렇게 살이 많이 찌는 것 같지 않아. 아니, 살이 찐다고 하더라도 눈에 보일 정도는 아닌 것 같고, 보통은 배만 불룩하게 튀어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민주처럼. 나름의 불편함이 있겠지만 타인에게 그러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건 그녀의 평범함에서 드러나는 매력을 보여주는 걸 거야.


수현이는 여전히 하얗고 동그란 얼굴에 처음 만났을 때의 아기 같았던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게 느껴져. 요즘에는 고등학생만 되어도 성인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수현이는 그때도 다른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어려 보였어. 얼굴이 하얀 것도 살이 통통한 모습도 커다란 눈을 껌뻑이며 이를 다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 모습도 모두가 수현이를 더 어리게 보이는데 한몫 단단히 했을 거야. 친구들보다는 언니, 오빠들을 좋아했고 이미 성숙한 또래들 사이에서는 적응을 잘하지 못하고 어색해했었지. 나이 차이가 많은 언니가 있어서 윗사람을 더 편안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 언니가 수현이보다 열 살 이상이 많았던 것 같아. 부모님은 출퇴근에 늘 바쁘셔서 언니가 수현이를 거의 키우다시피 했다는 말을 들었었거든. 그럼에도 언니와 수현이는 그렇게 가까운 사이처럼 보이지는 않았어. 늘 밝게 웃던 수현이었지만 어쩌다 가족들 이야기가 나오면 표정이 굳으면서 언니나 식구들에 대해서 더 깊이 얘기하는 걸 꺼려했어. 나도 굳이 물어보지 않았지. 그래도 대화를 나눈 시간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도 하나씩 늘었는데 그런 여러 가지 불편함의 이유로 수현이는 빨리 성인이 되고 싶어 했고, 성인이 되면 바로 독립을 하고 싶어 했어. 부모님이 바쁘셨다면 언니와 애착 관계가 형성되었을 법도 한데 그건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무언가가 수현이와 언니 사이에 존재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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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현이는 대학에 가지 못했어.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던 학교마저도 지난 입시들과는 다르게 사람이 몰리는 바람에 대기자 리스트에 올랐었는데, 그마저도 연락이 오지 않았거든. 입시에 실패한 수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한정적이었어. 아르바이트로밖에 일을 구할 수 없게 되었는데 기본 시급도 겨우 주는 그런 편의점에서 일을 시작했지. 수현이는 방글방글 잘 웃어서 손님들에게 친절했지만 어려 보이는 수현이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은 널려있었어. 편의점 사장도 수현이를 단지 일개 아르바이트생으로만 취급해서 일 분이라도 더 부려 먹으려고 안달복달했지. 어느 편의점에서는 저녁 마감이 지나고 새벽이 되면 유통기한이 임박한 음식들은 아르바이트생이나 직원들에게 주기도 한다는데 여기 사장은 지독해서 폐기처분을 할망정 삼각김밥 하나도 못 먹게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는 것 같더라고. 믿음.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어린 마음으로 가득했던 수현이에게 믿음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는데, 주변에 아무도 수현이에게 믿음을 주지 않았고, 수현이도 믿을 사람이 없었던 거야. 빨리 졸업하고 독립하겠다는 수현이의 목표와 결심은 점점 멀어져만 갔어. 그때부터 조금씩 수현이의 미소를 보는 날이 줄어들었어.


일 년 뒤에 수현이는 2년제 대학에 들어갔어. 전액 장학금을 핑계로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갔어.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일 년 동안 모은 돈으로 입학금과 기숙사 비용을 스스로 지불하고 뿌듯해했어. 수현이는 이제야 제대로 어른이 된 것 같다고 말하면서 오랜만에 방긋 웃었는데 예전과는 조금 다른 그런 미소여서 그런 수현이를 보며 나는 마음이 조금 아프기도 했어. 수현이는 재수를 해서 들어간 학교였지만 거기에는 동기들보다 5살이나 많은 언니도 있었어. 수현이와는 4살 차이가 나는 언니였지. 그 언니가 바로 민주야. 민주는 활발하거나 나서거나 동생들을 리드하려는 그런 욕심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어. 5살 연상의 연륜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민주만의 재능이라고 해야 할까. 5살이나 어린 동기들 속에 자연스럽게 이질감 없이 속해 있었고, 교수님들께도 특별한 인상을 주지는 않았어. 수현이는 그런 스며듦을 잘하지 못했는데, 위에서도 얘기했다시피 또래 친구들보다는 언니나 오빠들에게 더 편하게 다가가는 아이였거든. 공부에 큰 의미를 두고 들어간 학교도 아니어서 수현이는 그 2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 민주는 겉도는 수현이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어주기도 하고 소리 없이 옆에 있어 주기도 했대.


2년제 대학의 수업은 만만치 않았어. 2년 동안 교양 및 전공 공부를 해야 하고, 사회에 나갈 준비까지 해야 하니까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분량이 늘 따라다니게 되는 거야. 민주는 늦게 대학에 들어온 만큼 하고자 하는 사람이었고, 수현이는 그런 민주를 보면서 오히려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나 보더라고. 수현이는 2년 동안 기숙사에서 나가지 않았어. 따로 방을 구할 돈이 없었던 거야. 수업이 끝나면 학교 앞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었지만, 그 돈으로는 교재를 사고 식사를 하고 조금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어. 언니가 종종 용돈을 보내주기도 했는데 마음이 불편해서 그 돈은 다 통장에 모아놨다고 하더라. 나 같으면 그냥 고맙습니다, 하면서, 급하고 필요한데 썼을 것 같은데 수현이는 그러지 않았어. 내 눈에 한없이 아기 같아 보여도 마음은 깊고 생각도 많았던 거야. 2년이 무난하면서도 치열하게 지나가고 수현이도 민주도 직장을 구한 채 졸업할 수 있었어. 문제는 수현이가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는 거야.


민주는 수현이에게 자기 방에서 같이 지내자고 말했어. 방이 좁기는 하지만 둘이 지낼 만은 할 거라고. 가족이 없었던 민주에게 수현이는 가족이 되었고, 가족이 있었지만 믿음이 없었던 수현이에게 민주는 믿음과 안정을 주었어. 그렇게 타인이었던 각각의 두 명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며 하나가 되어갔던 거야. 수현이와 민주의 모습 속에서 너와 나의 모습이 비치기도 해. 그래서 난 이들을 마음으로 품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수현이는 결혼식이 끝나고 부모님과 언니와 함께 손님들에게 인사를 다녔어. 예의 바른 미소를 함박 띠고서 한 명 한 명에게 진심으로 인사를 했지. 신기하게도 언니와 수현이는 많이 닮았는데 부모님과는 다른 느낌이었어. 언니 손에서 자란 게 이런 데서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 부모님과 함께 다니면서 하는 인사가 서로에게 대면대면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수현이의 성숙함이 한층 더 묻어 나왔어. 인사하는 수현이를 끝까지 눈으로 좇고 있었던 건 민주의 시선이야. 민주는 배를 쓰다듬기도 하고, 다독이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미소를 띠고 있었어. 배 속에 있는 아이에 대한 미소이기도 하고 수현이에 대한 미소이기도 할 거야.


여자아이라고 했어. 민주 배 속에 있는 여자아이를 생각하니 우리가 떠올랐고, 쌍둥이를 뱃속에 담고 묵묵히 걸어 다녔을 엄마가 그려졌어. 민주의 편안한 미소를 엄마에게 씌워 보려고 했지만, 난 도무지 그 당시 엄마에게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어. 엄마의 얼굴은 초조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을 것만 같아. 그래도 가끔은 우리의 발차기를 느낄 때면 희미한 미소를 지었을 거야. 병원에서 우리들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을 때도 신기해했을 거야. 엄마 혼자서 모든 걸 껴안기로 결심하고 나서는 무서움과 두려움이 있었을 거고, 또 약간의 따뜻함과 애틋함도 있었을 거야. 시원함도 느꼈을지 모르겠어. 수현이가 대학에 갔을 때처럼 이제 당당하게 성인이 된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르겠고. 그 어린 엄마를 안아주고 토닥토닥 감싸주고 싶어졌어. 지금은 차마 하지 못할 것 같은데, 그래도 언젠가는 엄마한테 고맙다고 말할래. 어쨌든 우리가 이 세상에 나와서 함께 할 수 있었던 그 모든 건 엄마의 용기 덕분이었을 테니까.


너와 함께한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그 모든 기억으로 나는 행복해질 수 있어. 앞으로는 나 혼자서 어떨지, 어떻게 해야 할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미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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