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Anne with an "E"], CBC
정아야,
가끔은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 오늘이 그런 날이었어.
평소에는 이동할 때 책을 읽지. 전철에서도 버스에서도 기차에서도 변함없이 손에 들고 있는 책을 읽어. 읽던 책의 뒷 내용이 궁금해서 눈이 가기도 하지만 습관적으로 읽는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거야. 오늘은 버스를 탔는데 문득 창밖을 내다보았어. 그리고 오래오래 쳐다보았어. 비가 떨어질 듯 흐린 구름이 하늘에 잔뜩 펼쳐져 있었거든.
앉아 있거나 서서 이동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는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집중해서 바라보기도 하고, 멍하니 쳐다보기도 하는데 교통수단 안에서는 그런 게 잘되지 않아.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사람과 사물에 정신이 빼앗겨서 더 이상 밖을 보지 않게 되었나 봐. 나도 움직이고 사물도 움직이고, 움직임 속에서의 그 마주침이 때론 길기도 하고 어떨 땐 짧기도 하고, 그 안에서 어지러움을 느낄 때가 많아. 사람들은 바빠.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거나 핸드폰을 두드리며 빠르게 무언가를 쓰고 있어. 카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걸 수도 있고,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보면서 상대와 소통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그저 짧은 영상을 보거나 사진을 훌훌 넘기고 있을 때도 많을 거야. 우연히 앞에 있는 사람이나 지나가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게 되면 서로 어색해하고 민망한 표정을 지어. 낯선 이에게는 미소를 지어 보이는 사람도 고개를 끄덕이며 짧은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아무도 없어. 나부터가 그런 마주침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표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는걸.
버스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 오히려 한산했지. 자리는 군데군데 비어있는 곳이 더 많았고 그나마 있는 사람들은 창가 쪽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어. 나도 천천히 버스 뒤쪽으로 가서 텅 비어있는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에서 창가로 다가가 앉았어. 다리가 조금 올라갔고,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어. 손에 들고 있던 책과 핸드폰과 손수건도 가방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고. 자세를 잡고 책을 펼치려고 손을 갖다 대는데 그냥 창가로 시선이 간 거야. 위에서 말한 것처럼 구름이나 날씨 때문일 수도 있고, 머리가 약간 복잡해서일지도 몰라. 미세한 두통이 올라오려고 머리 안쪽을 새침하게 자극하고 있어서 같기도 해. 그렇게 밖을 바라보면서 몇 정거장을 지나갔어. 정거장에는 버스 안만큼이나 사람이 없었고, 사람이 없으니까 정거장에 삐죽이 서 있는 이곳이 버스 정거장이라는 것을 알리는 표지판이나 버스가 오고 있다는 신호를 보여주는 버스 안내 전광판이 눈에 바로 들어오더라. 버스를 기다릴 때는 올려다보아야 하는 전광판인데 버스에서 쳐다보니 내려다보는 시선이 되어서 왠지 새삼스러웠어.
어떤 정거장에는 얼굴이 하얀 여자아이가 원피스를 입고 있었어. 초등학교에는 들어가지 않았을 것같이 작았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표현할 줄 알고, 폴짝폴짝 잘 뛸 것 같은 나이 정도로 그렇게 어리지는 않아 보이는 아이였어. 아이를 둘러싸고 어른들이 있었어. 같이 있던 어른들은 가족이겠지 아마도.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모두가 여름이라는 걸 확연히 알려주는 한결같은 시원한 차림새였어. 어른들은 버스 안내 전광판을 바라보며 도착 예정 버스를 흘끗거리기도 했는데 불안한 듯 설레는 듯해서 어떤 표정인지는 나는 잘 구분해 낼 수가 없더라. 아무도 아이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어. 오직 나만이 아이를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건 그 아이도 금세 눈치를 챘지. 아이의 원피스는 앞이 모두 단추로 되어있는 옷이었는데 마지막 단추와 치마 끝이 벌어지니까 원피스 안으로 빨간색 반바지가 보였어. 나와 눈이 마주친 게 부끄러웠던 건지, 아니면 낯선 이의 시선에 기분이 좋아졌던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어른들의 무관심에 심심했던 건지, 아이는 이가 다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으면서 치마를 들어 올려 얼굴을 가렸어. 몸을 꼬기도 하고 치마를 올렸다 내렸다 하기도 하는 아이를 보며 부모는 이 아이의 습관을 알고서 원피스 안에 반바지를 입힌 걸까 문득 궁금해졌어. 혹시 대부분의 미취학 아동의 습성일까. 원피스 안에 바지까지 입으면 덥지는 않을까. 어쩌면 나랑 까꿍 놀이를 하려고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 우리가 좋아했던 <빨간 머리 앤>이 사실은 앤의 일생 중에 어린 시절만 나온 한 권에 불과했다는 걸 알고서 우리가 얼마나 놀랐던지. 내가 10권짜리 <그린게이블즈 빨간 머리 앤>을 찾아서 너에게 보여주고, 나 이 책 살 거라면서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조금씩 모아두고 드디어 내 책이 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너는 10권을 언제 다 읽냐고 하면서 읽고 나서 얘기해 달라고 했고, 나는 한 권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세상에 앤이 이렇게 자라고 있어! 이런 얘기가 나와! 연애라니! 결혼이라니!라고 흥분하면서 너에게 얘기해 주었었다. 넌 읽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어린 시절 앤을 생각하며 나와 같이 호들갑을 떨어 주었어. 이게 대학 다닐 때의 일이니까 우리는 20대가 되어서도 앤을 생각하며 그 이야기에서 순수함을 한참이나 찾고 다녔었나 봐. 나 아직도 이 책들, 가지고 있어. 이사할 때마다 책이 많아서 골치가 아프기도 하고, 다 가지고 갈 수는 없어서 때마다 조금씩 정리하기도 하지만 이 책들만큼은 버리지 못하고 우리의 어린 시절과 20대의 추억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 애니메이션을 보려고 주말 아침마다 누가 깨우지 않아도 일찍 일어나서 TV를 켜기도 하고, 어린이용으로 나온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책도 여러 권 읽었는데 신기하게도 앤의 그 발랄한 모습은 읽을 때마다 다 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아. 커서 읽은 10권짜리 책의 앤도 느낌이 새롭기는 마찬가지였어. 어렸을 때 앤과 네가 조금은 닮았다고 생각하며 말을 꺼내면, 오히려 너는 나의 엉뚱한 모습이 앤과 더 닮았다고 우기곤 했었어. 그래, 어쩌면 너와는 다이애나가 더 잘 어울렸을지도 모르겠다. 버스정류장에서 아이의 순수한 모습을 보며 앤 생각이 났던 것 같아. 앤은 이 아이의 새하얀 얼굴을 분명히 부러워했을 텐데.
넥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에 [빨간 머리 앤]이 있어. 영어 제목은 [그린게이블즈의 앤]도 아니고 [빨간 머리 앤]도 아닌, [Anne with an “E”]야. 너무 재미있지 않아? 앤이 자기의 이름을 소개할 때마다 꼭 뒤에 “E”를 붙여 달라고 얘기하잖아. 원제목을 알고 나서 제목을 지은 이가 너무 멋있다는 생각마저 들더라. 보통은 책을 좋아하면 영화도 기대되고, 또 기대한 만큼 여러 번 보고 또 보고 그러거든. <작은 아씨들>도 그랬고, <오만과 편견>도 그랬어. 고전인 만큼 지금까지도 많은 출판사에서 다양한 형태로 책이 번역되어 나오고 있고, 영화도 여러 편 제작되었어. 앞으로도 새로운 버전으로 꾸준히 나올 것 같아서 계속 기대하고 있어. 그런데 <빨간 머리 앤>은 왠지 보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처음 넥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에 나온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기대하는 마음으로 예고편을 몇 번이고 봤었거든. 어쩌면 그 예고편을 통해서 넥플릭스만의 아니, 새로 구성된 그 모습이 원작과 너무 다르고 너무 환상적인 것 같아서 망설여졌던 것 같기도 해. 또 우리의 어린 시절과 20대 초반의 모습이 많이 겹치는 책이어서 영상보다는 그저 책으로만 품에 안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그렇게 몇 년이 지났는데, 오늘 내가 버스에서 책을 읽지 않고 창밖을 내다본 것처럼 우연히, 마음이 동해서, 어쩌면 아무런 생각 없이, 그렇게 평소와는 다르게 [빨간 머리 앤 Anne with an “E”] 시즌 1, 1화를 마우스로 클릭했던 거야. 시즌 1을 다 보고, 며칠 전에 시즌 2로 넘어왔어. 앤의 모습은 아직도 적응 안 될 때가 많아. 또 책의 내용을 기본으로 하고는 있지만 영상이다 보니 더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부분도 있고, 각색된 부분도 있어. 우리가 어린 시절에 봤던 그런 어린이용 드라마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우리가 본 드라마는 정말로 어린아이들의 정서였다고 생각하거든. 이 시리즈는 어른의 시선이야. 내가 지금 어른이어서 그렇게 어둡게 바라보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이기에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계속 보는 거겠지. 삶은 쉬운 게 아니고,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은 늘 공존하고, 어둠은 트라우마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지워지기 힘들다는 걸 아니까. 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때였다면 아마도 앞 몇 편만 보고 나서 너에게 별로라고 말했을 것 같아. 그리고 더 이상 보는 걸 그만두었겠지.
버스정류장에 있던 얼굴이 하얀 아이와 그 식구들은 내가 있는 버스에 올라타지 않았어. 어른들은 아이에게처럼 내가 탄 버스에도 무심했고, 그래서 내가 그들을 유심히 살펴볼 수 있었을 거야. 그 정류장에서 다른 사람이 탔는지 아닌지는 기억나지 않아. 아이를 살펴보고 있었으니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유심히 관심을 보이며 살펴보면 아무리 짧은 시간이더라도 소홀해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점. 소홀해지지 않아서 다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더라도 표현하지 않을 수는 있지. 우리가 커 가면서 조금씩 서로에게 조심스러워졌던 것처럼 말이야. 어렸을 때는 이 아이처럼 부끄러우면 치마로 얼굴을 가리기도 했을 거고, 화가 나면 앤처럼 거칠게 말로 표현하기도 했을 거고, 소소하더라도 뭐든지 얘기하고 공유하려고 노력했을 우리였는데, 언젠가부터 조금씩 너와 나를 구별하기 시작했네.
버스는 그렇게 출발했고 광장시장을 지나갔어. 내가 앉아 있는 창문으로는 시장 입구에 크게 쓰여 있는 광장시장이라는 간판이 보이지는 않아. 시장은 반대쪽에 있었거든. 다만 내 눈앞 창밖으로 보이는 높은 울타리가 눈길을 끌었을 뿐이야. 예전에는 부실한 가림막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공사를 할 때 구획이나 관리의 용도로, 또 안전상의 이유로, 공사하는 구간을 빙 둘러서 높은 가설울타리나 가림벽을 설치하곤 하더라. 꼭 필요한 일이지. 그 높은 울타리가 눈에 띄었다기보다는 울타리 표면에 그려져 있던 그림이 눈에 들어왔어. 그 그림이 광장시장이었거든. 여러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서울의 관광명소였어. 광장시장, 남산타워, 경복궁 등등. 단순히 공사장을 구획하는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렇게 그림을 그려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애쓴 게 느껴졌어. 미관상으로도 좋았고 서울에 이런 명소들이 있었지, 하면서 생각이 머물기도 했어. 그걸 보고 광장시장을 지나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광장시장에는 네가 좋아하는 찹쌀 꽈배기 가게가 있어. 넌 그 가게 꽈배기도 좋아하고 단팥이 들어있는 팥 도너츠도 좋아했잖아. 그게 떠올라서 무조건 내려야겠다고 생각했지. 광장시장이 지나가도 내릴 거라는 결심을 했는데, 창에서 고개를 돌려 뒷문을 보았을 때 문은 이미 열려있었고 단 한 사람만이 내리고 있었어. 나는 순발력이 없어. 잡는 것도, 막는 것도, 뛰는 것도, 또 튀는 행동도 하지 못하잖아. 놀랐지만 놀란 표정도 짓지 않고 어떤 놀람의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어. 내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생각하지도 않고 내렸어. 목적지가 분명히 있었는데도 말이야. 그런데 그거 알아 정아야? 나 결국, 광장시장에는 들어가지 못했어. 내린 버스정류장에서 한참 멀어진 광장시장을 바라만 보다가 그냥 다시 내가 가야 할 길로 갔어. 원래의 목적지로.
내가 내민 봉지를 들여다보며 기뻐하고 소리 지르면서 찹쌀 꽈배기랑 팥 도너츠를 맛있게 먹을 네가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어.
미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