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

by 유리알구슬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암흑이었으나,

나의 국민학교 6학년은 눈이 부셨다.

지금 생각해도 반짝반짝 빛났던

나의 6학년 그 시절.


아마도 그 이유는

그때 나를 향해

아낌없는 지지와 용기를 주셨던

선생님 덕분이리라.


내게 칭찬과 애정을 아끼지 않으셨던 분.

대학생이 되어서 찾아간 유일한 선생님.

그분이 나의 6학년 담임선생님이시다.


사는 게 힘에 겨워

잠시 기억 저 편으로 미뤄두었는데,

정말 우연히, 선물처럼,

이 분을 다시 만났다.

여기서!!!



로봇청소기.jpg


업무와 관련하여

관내 초등학교 교장선생님들을 취합하다가

문득 선생님 생각이 났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선생님 성함을 검색해 보았는데,

작년 8월에 정년퇴임을 하신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런데, 선생님 성함의 연관검색어로

저 책이 뜨는 것이다.

설마설마하며 책을 검색했는데....

와.... 동화 작가가 되셨다니...!!!!




30년 전, 그 당시에도

내 눈에 비친 선생님의 모습은

매우 특별했다.

선생님의 모든 것이 좋았고

그대로 닮고 싶었다.

선생님과

한 번이라도 더 눈을 마주치고 싶어

얼마나 몸을 곧추세웠는지 모른다.


선생님께서는 수업시간에

본인이 습작으로 쓰신 이야기를

우리에게 읽어주셨다.

선생님이 직접 쓰신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정말 행복했다.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나였으면 했고,

이야기 속 물건들의 의미를 알아맞혔을 때는,

마치 선생님과 통하기라도 한 듯

온 얼굴로 뿌듯함을 내비치곤 했다.


선생님은 그림도 잘 그리셨다.

교실 선생님 책상 옆엔 항상

하얀 도화지가 끼워진 커다란 이젤이 놓여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모두 돌아간 교실에서

이젤 앞에 앉아 수채화를 그리시던 모습은

아마 나만 훔쳐본 선생님의 우아한 모습이리라.


당시 일주일에 두 번씩 검사받았던 일기장에

선생님께서는 늘 정성스레 댓글을 달아주셨다.

지금이야 한 반에 20명 남짓이지만,

당시 50명이 넘는 아이들의 일기장에

하나하나 손글씨로 댓글을 달아주신 것은

지금 생각해도 감동이다.




선생님의 책 목차를 보다가

눈에 확 들어온 동화 제목이 있었다.


'푸른 유리구슬 속의 아이들'


푸른 유리구슬!

털보 아저씨가 간직하던 푸른 유리구슬!


내 기억이 맞다면,

저 이야기는 분명,

30년 전 교실에서 선생님이 읽어주시던

그 이야기다!


혹시 방금 선생님이 읽어준 이 이야기에서

'구슬'이 뜻하는 게 뭔지 아는 사람?


선생님의 저 질문에

나는 상기된 얼굴로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며 작게 속삭였다.


동심.... 이요.


나의 대답을 들으신 선생님께서는

환한 미소를 내게 보여주셨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바를

정확히 알아챈 제자에게 보내는

애틋함과 고마움이지 않았을까... 싶다.


30년 전 교실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다니...


그때 선생님과 교실의 풍경이

새록새록 내 마음에 피어오르며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제 보니 나의 필명이 '유리알구슬'인 것도

나의 무의식 속에 저 이야기가 있었나 싶어

괜히 뭉클하기도 하다.




글을 쓰는 지금,

내게 선생님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내게 글을 써보라고 권유하신 분이

바로, 이 분이시기 때문이다.


어른처럼 쓰려하지 말고,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하지 말고,

그저 지금 네 나이에만 쓸 수 있는

그것을 글에 담아봐.

너는 소질이 있어.


지금 다시 읽으면 너무 창피하긴 하지만,

6학년 그 시절,

나름 야심 차게 썼던 몇 편의 창작동화(?)들이 있다.

일기장에 마치 연재하듯 썼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참 재미있다며 나를 독려하셨다.


그러면서 내게 해주신 저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게 플레이된다.


마흔이 넘어서야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나로서는,

선생님의 저 말씀에

이제라도 응답한 듯하여

감회가 남다르다.


암흑 같은 긴 터널을 지나느라

아스라이 사라져 버린 줄로만 알았던

어린 날의 나의 꿈.


티 없이 맑았고

해맑게 웃었던

어린 날 나의 순수.


그때 내게 꿈을 심어주셨던

젊은 날의 선생님은 은퇴하셨지만,

이제는 선배 문인으로

내게 다시 용기를 주신다.


계속 써보자.

뭐가 됐든 써보자.


누구처럼 써보려 하지 말고,

누구한테 잘 보이려 하지도 말고,

지금 내 나이에만 쓸 수 있는

그것을 담아보자.


들리는가, 어린 날의 무전이.

그렇다면...

응답하라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