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에서 막 꺼내온 젖은 빨래는
잔뜩 구겨져있다.
물속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돌려지다가
탈수되어 나온 옷들은
최소한의 물기만 머금은 채
쪼그라져 있다.
이 빨래들을 건조대에 널기 위해
보통의 경우
허공에 대고 옷가지를 마구 털어댄다.
그러면 오그라져 있던 천들이
기지개를 켜듯 몸을 늘린다.
그러나 여전히 우글거리는 잔주름들이
보기 싫게 구겨져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잔주름을 펴기 위해
또 다른 절차를 거친다.
허공에 대고 탈탈 털어댄 옷들을
커다란 보자기 위에
가지런히 펴서
차곡차곡 쌓은 후,
다시 그 위에
또 다른 보자기를 덮고
그 위에 올라가 발바닥으로
꾸욱꾸욱 밟는다.
이쪽 모서리에서 저쪽 모서리까지
차근차근 잘근잘근
조신하지만 힘을 실어
꾸욱꾸욱 밟아준다.
그렇게 몇 분을 밟아준 뒤,
보자기를 걷어보면
놀랍게도 풀 먹인 한지마냥
손에 베일 듯 빳빳해진 옷가지를 만날 수 있다.
이 상태 그대로 말리기만 하면
웬만한 옷들은
새 옷처럼 입을 수 있다.
특히 다림질이 곤란한 티셔츠나
린넨셔츠들의 경우,
이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다.
행여나 빨래 망에서 발견하지 못해
그대로 말라버려
쪼그라진 채로
뻑뻑하게 굳어버린 옷들의 경우에도,
다시 헹굼과 탈수를 통해
약간의 물기를 머금게 한 후,
위의 방법을 반복하면
보기 싫은 주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마음이 심하게 구겨지는 날들이 있다.
세탁기에서 이리 튀고 저리 튀는 빨래처럼,
마음의 중심이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고
팔랑대는 귀를 펄럭이며
갈대처럼 휘청이다가
영혼이 탈탈 털리고 나니,
보기 싫게 비틀어지고
엉켜버리고 말았다.
잔뜩 구겨진 내 마음.
나도 쳐다보고 싶지 않은
보기 싫은 주름들이
너무 속상하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을
허공에 대고
탈탈 털어주는 이들이 있다.
이건 원래 너의 모습이 아니라고.
잠시 세탁기에 들어갔다 왔을 뿐이라고.
격렬하게 나를 흔들어대는
우레와 같은 목청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러나
아직 남아있는 잔주름에
후줄근해진 마음을 가눌길 없어
다시 바닥에 쭈그러든다.
그때,
나를 집어 들어
보자기 위로 한껏 펼쳐놓고
잘근잘근 조곤조곤
주름을 펴주는 이들이 있다.
마음이 혼탁하여
중심을 잡지 못하고
내 마음이 우글우글
주름을 잡고 있을 때마다,
걱정과 애정을 담아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단호하게
때로는 친절하게
때로는 매섭게
나의 크고 작은 주름들을
단정하게 펴주는 이들이
내 곁에 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흔들렸다.
나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호기롭게 내밀었던 내 모습이
보기 좋게 우그러졌다.
하마터면 구겨진 채로
세탁망 속에 버려진
신세가 될 뻔했는데,
이들이 나를 잡아끌어
탁탁 털고
곱게곱게 펴주었다.
이들이 있어
나는 다시
나의 길로 돌아올 수 있다.
이들이 있어
나는 다시
단정하게 개켜진 마음을
입을 수 있다.
그늘에서 구겨진 채로
덜 말린 걸레 냄새를 풍기며
잊힐 뻔한
길 잃은 내 마음을
그들은 언제나 기꺼이
꺼내어 주었다.
너무 말라 펴지기 힘들 때는,
다시 세탁기에 헹구듯
내 마음에 물을 가득 채워
한껏 쏟아내게도 했다.
그때는 참 아프고 힘들기도 했지만,
그것이 나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었음을
이젠 안다.
돌아보면
나의 삶의 길목마다
이런 이들 덕분에
나의 마음이
따스한 볕에서
기분 좋게 말려졌다.
너무나 고마운 나의 사람들.
돈이 아무리 많다 한들
돈으로
이런 이들을 살 수 있으랴.
돈으로
이런 마음을 살 수 있으랴.
이들과 함께
인생길을 걷고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나 또한 그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