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덕분입니다.

by 유리알구슬


아침햇살이 거리의 나무들 위로 내린다.

난 아침마다 그 장면을 마주할 때면 하루를 시작하는 설렘으로 가슴이 가득 찬다.


설령, 힘들고 고달픈 하루가 예상되는 날일지라도, 그 장면을 마주한 아침이면,

'그래도 살아볼 만한 하루 일거야...'라는 희망이 생긴다.

나는 나뭇가지들 사이로 난 하늘을 쳐다보는 것도 좋아한다.

길 양옆으로 늘어선 나무에서 뻗은 가지들이 공중에서 만난 모습을 올려다보면,

마치 하늘색 캔버스에 나뭇가지들이 스케치를 해놓은 것 같다.

같은 나뭇가지임에도, 그 사이로 보이는 하늘의 모양은 늘 다르다.

내가 보는 각도와 위치, 혹은 내 마음에 따라,

다각형의 조각이었다가, 붓으로 점을 찍은 듯도 했다가, 어떤 날은 하트 모양으로도 보이고,

어떤 날은 하늘에 보석이 흩뿌려진 듯도 하다.


오늘 아침은 유독 햇살이 좋다. 차창 밖으로 가로수를 보는 맛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그런데 오늘은 유독 나뭇잎의 뒷면이 눈에 들어온다.

햇살은 받아 반짝이는 잎사귀 뒷면은 그림자가 져 어둡다.

햇빛을 받는 물체의 뒷면에 그림자가 생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진대,

오늘따라 자꾸만 그림자에 마음이 쓰인다.

거리에 줄지어 선 나무들을 계속 바라본다.

동쪽에 떠오르는 해가 나무들을 향해 보내는 빛이 찬란할수록 반대편의 어둠이 도드라진다.

처음에는 빛나는 부분만 집중했기에 그림자가 조금 쓸쓸해 보였다.

그런데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햇빛을 받는 쪽이 더 찬란하게 빛나 보이는 까닭은

그림자 덕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명암의 차이가 전체적인 나무의 자태를 더 수려하고 아름답게 만들고 있었다.

그림자 하나 없이 앞뒤가 온통 빛나기만 하면, 처음엔 눈이 가지만,

오래도록 바라보고 감탄할 매력은 떨어진다. 아니, 오히려 그 빛남은 반감된다.




대학시절, 인생의 큰 굴곡이 대학입시였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마저도 입시에 성공(?) 한 친구들은 곧 그런 그림자쯤은 훌훌 털어버리고 밝은 빛으로 나아갔다.


난 내 삶의 그림자를 매우 싫어했다. 엄마의 부재가 가져다준 내 안의 깊은 쓴 뿌리를 증오했고,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는 어린 시절의 결핍은 감추고만 싶은 나의 최대 약점이었다.


그러나 내 삶의 짙은 그림자가 오히려 나를 더 성숙하게 했음을 안다. 이런 나의 그림자가 다른 이를 위로할 수 있음도 깨달았다. 그리고 내 삶의 어두운 면이 있었기에, 지금 내게 주어진 현실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것인지 여실히 느낀다.


인생에 모범답안은 없다. 비록 내 마음에 다 들지는 않더라도, 나의 그림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진정한 '나'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과거의 그 순간, 그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하고 생각하고 말했던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그렇게 나의 그림자를 내 삶으로 끌어안아보자.

버리고만 싶었던 나의 그림자가 오히려 나를 더욱 빛나게 해 줄 것이다.



너무 추운 계절에는 여름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아진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냉혹한 시간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고, 맑은 아침이 밝아오면 바람도 흐름을 바꿔 따스한 날씨가 찾아올 것이다.

우리 마음도 이처럼 늘 변화하기 마련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 서간문, <테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