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마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았지만, 그 마음에 이름이 붙여진 것은 최근입니다.
상담 센터에서 선생님과 상담을 한 첫날, 제가 심각한 ‘애정결핍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때에 애착관계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제 마음 기저에 불안이 폭탄처럼 늘 장착되어 있다는 것이었죠.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불화로 불안정한 삶을 살았던 어린아이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애정결핍과 미해결형 트라우마가 결합한 유형 중에서도 ‘불안형’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괜찮다가도, 상처에 관련된 부분에 이야기가 미치기만 해도 평정심을 잃고 동요하거나 불안한 모습이 곧바로 튀어나옵니다. 마음에 깊게 갈라진 틈을 안고 살고 있기 때문이라더군요.
저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나니, 그동안 저의 마음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과 제 행동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토록 사랑을 받고 싶어 하면서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높은 성벽을 세우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다가도, 누군가와 교제를 시작하면 그 사람에게 과도하게 의존했습니다.
결혼하면 안정될 것 같지만 따끈따끈한 신혼이 지나고 나니 다시 예전의 불안정함이 도지더군요. 결국 미해결인 제 안의 상처 자체는 낫지 않았기 때문에 애정이 조금 식으면 부모처럼 남편도 저를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삶이 무너지고 가라앉고 우울 속에 허우적댔습니다.
미세한 표정,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제 마음은 쉽게 흔들렸습니다. 그것이 방아쇠가 되어 일상적인 스트레스까지 폭발하는 경우가 빈번해졌습니다. 미해결인 마음의 상처가 터지면 평소의 밝음과 침착함은 사라지고 저조차도 어찌해야 할지 몰라 혼란에 빠져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아무리 외부의 자극을 차단해 봐도,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자극까지 막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마음의 상처가 사람을 예민하게 만드는 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불쾌한 자극이 막을 사이도 없이 생겨나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내면의 자극을 멈추는 방법이 절실했습니다. 머릿속에서 계속 샘솟는 걱정과 생각들을 멈추는 버튼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제게 글쓰기가 찾아왔습니다. 이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딱 1년이 되었네요. 쉼 없이 제 머릿속을 맴돌던 감정과 생각들이 이제는 활자로 형상화되어 제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형체를 모를 때는 쓰나미고 토네이도로 몰아치던 것들이, 글에 쏟아내고 다듬고 정리하다 보니 제가 알아봐 주길 바라고 있던 ‘오래된 슬픔’들 이었습니다.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흔들립니다. 아직도 불안 버튼이 눌리는 날이면 몸이 굳고 호흡이 가빠집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그런 날일수록 더욱더 글 앞으로 달려갑니다.
제3자의 시선으로 저를 바라봐 주고 거품이 잔뜩 끼어있는 감정에서 알맹이를 꺼내어보는 것.
그것이 제가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제가 글을 만난 이유입니다.
제가 사는 날 동안 평생 안고 가야할 숙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죽는날까지 해결이 되지 않을수도 있겠죠. 그러나 글을 쓰며 매일 희망을 만납니다. 나의 상태를 알아채고 스스로 다독일 줄 알게되니 전처럼 동굴로 파고들지 않습니다.
이렇게 빈도가 줄어들고 정도가 약해지면서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는 정도만 되어도 참 좋겠습니다.
요즘 나에게 있어 글쓰기란 엉엉 우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왕이면 온 힘을 다해 남김없이 잘 울고 싶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남은 일을 해낼 수 있도록.
그리고 어디선가 혼자 우는 사람이 없는지도 돌아보고 싶다.
누구도 혼자 울지 않았으면 한다.
마음에 없는 소리 p.315 / 김지연 /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