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초대장

by 유리사탕

습기가 사무실을 먹고 있었다.


을지로 4가의 빌딩은 비가 오면 늙는다. 벽 틈새로 물이 스며들고, 복도 천장에서 방울이 떨어지고, 창틀을 타고 가느다란 줄기가 흘렀다.


책상 위 사진들을 내려다보았다.


호텔 로비. 중년 남자. 아내가 아닌 젊은 여자와 팔짱. 망원렌즈 화질이 좋아서 왼손 약지의 결혼반지까지 찍혔다. 사진을 봉투에 밀어넣고, 한심하다는 말은 삼켰다.

사설탐정에게 도덕적 판단은 사치야.


봉투를 의뢰인 파일 위에 올렸다. 보수 삼백만 원. 월세와 공과금을 빼면 남는 건 얼마 되지 않지만, 이번 달은 넘길수 있다. 아래층에서는 프린터 돌아가는 소리가 올라왔다.


'HS 조사사무소'. 여섯 평짜리 방이었다. 책상 하나, 의자 둘, 서류 캐비닛 하나. 그것이 전부인 방. 경찰을 그만둔 지 3년, 탐정을 시작한 지 2년 반. 의뢰는 사무실만큼 소소했다. 불륜. 실종자. 간혹 보험 사기.


사실대로 말하면 경찰은 쫓겨난 거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시선이 캐비닛 아래로 갔다. 맨 아래 서랍. 열쇠구멍에 녹이 슨 서랍. 3년째 열지 않았다. 거기 넣어둔 것들은 묻혀 있어야 한다.


커피잔을 들었다. 차가웠다. 언제 식었는지 모를 커피. 복도 어디선가 형광등이 지지직거렸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손이 멈췄다.


또각. 또각. 구두 굽이 리놀륨 바닥을 두드렸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목적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의 보폭.


문 앞에서 멈췄다.


소리 없이 서랍을 열었다. 손가락이 호신용 스프레이의 플라스틱 몸통을 감았다. 한때 권총이 있던 자리. 반납하고 남은 건 이 초라한 것뿐이었다.


노크 세 번. 균일한 간격.


"한서진 탐정님?"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예약제입니다. 연락처는 문 옆에—"


"배달입니다."


기척을 읽었다. 한 명. 체중은 왼발에 실려 있고 호흡은 고르다.


일어서서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었다.


형광등 하나가 미친 듯이 깜빡이는 복도. 바닥에 검은색 상자 하나. 정사각형, 한 변이 삼십 센티미터쯤. 무광 표면 위에 금색 글씨로 세 글자. 'H.S.J.'


복도 양쪽을 살폈다. 왼쪽 끝, 비상구 문이 천천히 닫히고 있었다. 달려가 잡아당겼다. 계단 아래로 발소리의 잔향만 남아 있었고, 시멘트 냄새와 축축한 공기가 올라왔다. 3층 어딘가에서 수도꼭지 잠그는 소리가 울렸다.


노크하고 대답까지 했는데. 문 여니 없다. 오 초 만에 비상구까지? 훈련받은 놈이다.


상자를 사무실로 가져왔다.


폭발물? 아니. 우편함에 넣으면 될 걸 뭐 하러 5층까지 올라와. 이 시간에 여기 있는 걸 알고 있었다는 건데.


뚜껑을 열었다.


검은 벨벳 안감. 안에 세 가지.


봉투. 아이보리색 용지에 금색 문양. 뜯자 두꺼운 종이의 결이 손끝에 걸렸다. 카드 한 장.


-- 당신을 특별한 72시간에 초대합니다.

-- 2025년 3월 7일, 목포 여객선터미널에서 출발.

-- 모든 비용은 부담됩니다.

-- 보상: 5억 원.

-- 참석 여부 회신 불필요. 나타나지 않으면 초대는 취소됩니다.


목포행 KTX 티켓. 3월 7일 오전 8시, 용산역 출발. 전자 발권이 아닌 실물 티켓이었다. 누군가 직접 창구에 서서 발권한 것이다.


세 번째.


사진 한 장이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그 위에 콘크리트 건물 하나. 자연 속에 억지로 박아 넣은 것 같은 직선의 구조물.


율도.


사진을 내려놓았다. 캐비닛 서랍이 안쪽에서 밀려 나오는 것 같았다. 바다의 짠기. 콘크리트에 밴 습기. 배수구에서 올라오던 녹물. 사무실 천장 어딘가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까부터.


카드를 뒤집었다.


앞면은 초대. 뒷면은 달랐다. 금색 잉크로 한 줄.


"우리는 당신의 죄를 알고 있습니다."


시선이 캐비닛 맨 아래 서랍에 붙었다. 열쇠구멍의 녹. 3년. 그 안에 잠든 것들. 공식 보고서에서 빠진 사진들, 혈흔 채취 기록, 지하실 도면.


창밖에서 빗소리가 굵어졌다.


*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


원룸 침대에 누워 천장의 얼룩을 세었다. 비 샌 자국 셋, 곰팡이 하나. 옆집에서 TV 소리가 벽을 타고 들어왔다. 뉴스인지 드라마인지 구분이 안 갔다. 천장 위에 3년 전의 장면들이 돌아갔다.


해경 보트의 엔진 소리를 뚫고 들려오던 파도. 안개 사이로 드러나는 섬의 윤곽. 절벽 위의 콘크리트 구조물은 먼 바다에서 보면 바위 위에 올라앉은 관처럼 보였다. 파트너였던 박진우가 난간에 기대어 말했다.


"저런 데 누가 리조트를 짓나. 사람을 숨기기엔 딱이겠지만."


농담이었다. 사흘 뒤에야 아닌 걸 알았다. 배 밑으로 갈매기가 하나 지나갔던 것도 기억한다. 쓸데없이.


몸을 돌려 벽을 향했다. 한번 열린 서랍은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실종자 다섯 명.


김나현, 27세, 간호조무사.

이동수, 34세, 화물차 기사.

정미라, 45세, 주부.

오승환, 52세, 퇴직 공무원.

한세영, 19세, 대학 신입생.


기억 속에서 그들은 실종 신고서의 증명사진이었다. 전부 웃고 있었다. 해경이 태풍 뒤 이틀 만에 섬에 상륙했을 때, 리조트는 비어 있었다. 식당 테이블에 먹다 남은 식사가 말라붙어 있었고, 로비에 누가 벗어둔 슬리퍼 한 짝이 놓여 있었다.


공식 결론은 조난사고.


서진이 발견한 것들은 달랐다. 리조트 지하의 잠긴 방. 콘크리트 벽에 파인 손톱자국. 맨손으로 긁은 것이다. 손가락 끝이 터질 때까지. 배수구에서 수거한 소량의 혈흔.


그것을 보고서에 넣었어야 했다.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강기태 경감의 얼굴이 떠올랐다. 당시 팀장.


"서진아."


강기태가 자판기 커피를 홀짝이다 내려놓았다. 종이컵 바닥에 뭐가 남았는지 들여다보는 시늉을 했다.


"이 건은 건드리면 안 돼."


"팀장님, 지하실 벽에—"


"점심 뭐 먹었어?"


뜬금없었다. 강기태가 창밖을 봤다.


"그 섬이 누구 거였는지 알지?"


JK그룹 선대 회장의 사유지.


"나도 한때는." 말을 멈추고 종이컵을 구겼다. "됐고. 윗선에서 내려왔어."


반박하려 했다. 혈흔 분석만이라도. 하지만 강기태의 눈에서 읽은 건 명령이 아니었다.


증거를 봉인했다. 혈흔 샘플은 '오염'으로 폐기. 지하실 자국은 보고서에서 삭제. 복도 형광등이 눈을 찔렀다. 사건은 조난사고로 종결되었다.


한 달 뒤, 사표를 냈다.

두 달 뒤, 강기태가 명예퇴직했다. 퇴직금이 비정상적으로 많았다는 건 훨씬 뒤에야 들었다.

세 달 뒤, 을지로에 사무실을 열었다. 인수인계할 후배도 없었다.


3년. 율도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올리면 닫아둔 것들이 쏟아질 것 같았다.


*


사흘이 지났다.


초대장과 티켓을 상자에 도로 넣어 책상 밑에 밀어두었다. 보지 않으려 했다. 사흘 동안 일을 했다. 보험 사기 건 하나, 가출 미성년자 추적 하나. 가출 건 의뢰인이 어머니였는데, 전화기 너머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자판기 커피를 사 올 때마다 책상 아래로 시선이 내려갔다.


그리고 캐비닛 맨 아래 서랍. 두 개가 겹쳐 보였다. 상자 속 초대장. 캐비닛 속 파일. 같은 데를 가리키고 있잖아.


율도.


새벽. 평소보다 한 시간 먼저 눈을 떴다.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보았다. 밤새 내린 비가 그치고 새벽 공기가 창틀 사이로 밀려들었다.


갈 거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함정이면 어쩔 건데. 3년간 목에 걸린 걸 삼키든 뱉든, 어떻게든 해야지.


가방을 꾸렸다. 옷 두 벌. 세면도구. 칫솔을 찾다가 세면대 뒤에 떨어진 걸 발견했다. 노트북. 소형 녹음기와 카메라. 충전기는 어디 뒀더라. 침대 밑에 있었다. 그리고 캐비닛 아래 서랍에서 꺼낸 것. 3년 전 복사해둔 율도 사건 파일.


열쇠를 돌릴 때 녹이 손끝에 묻었다. 서랍이 열리는 소리가 삐걱거렸다.


사무실 문을 잠갔다. 복도에 아무도 없었다. 당연하지. 새벽인데.


카드 뒷면의 글씨가 떠올랐다.


"우리는 당신의 죄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

월, 수, 금 연재